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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씨 Apr 22. 2024

나의 반려였던 그를 기리며

사슴벌레가 죽었다.


뒷산에서  온 여러 마리의 사슴벌레 중, 아이들이 특별히 고른 아이였다. 커다란 집게를 덜걱거리는 수컷 옆에서 얼음이 된 것처럼 웅크리고 있던, 암컷 중에서도 아주 작은 였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듯 잘 오므려지지도 않는 뿔과 가느다란 발 가끔 꼼지락거렸다. 반들반들한 등만이 햇빛을 반사하여 빛났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을 사들였다. 바크와, 놀이목과, 먹이통과, 색색의 곤충용 젤리 같은 것들을.

사람들은 커피컵 같은 데에 키워도 된다고, 좁은 곳에서 별로 움직이지 않고 자라야 오래 산다고 조언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숲에서처럼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최소한 더 안전하고 평안하길 바랐다. 마트에서 큰 사이즈의 리빙박스를 샀다. 뚜껑에 직접 구멍을 뚫고, 깨끗한 상토를 깔고, 바크를 섞고, 미지근한 물을 부어 다져주었다. 매일 다른 맛의 젤리를 까 놓았다. 흙이 마르는 것 같으면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었고, 한 달에 한 번씩 흙을 갈아주었다.


나는 나의 사슴벌레가 입맛이 까다로운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시종일관 조용히 흙 속을 기어 다니기만 하는 사슴벌레에게 취향이 있다는 것, 그걸 내가 알아차렸다는 것이 좋았다. 사슴벌레는 특정 브랜드의 곤충 젤리만 먹었고, 새로 산 브랜드의 젤리는 전혀 먹지 않아서 스무 개 넘는 알록달록한 젤리가 찬장에 그대로 남았다. 원래 먹던 것을 사서 넣어주니 허겁지겁 머리를 박고 먹었다.


나는 그가 아주 오래 살 줄 알았다. 특별히 환경을 조성해주지도 않았는데 고맙게도 겨울잠을 자 주었기 때문이다. 겨울잠을 자면 수명이 그만큼 길어진다고들 했다. 인터넷에서, 집에서 키운 사슴벌레가 5년을 산 사례도 더러 읽었다. 나는 그 아이가 오래 살길 바라서 짝짓기도 시키지 않았다. 위협적인 수컷이 없는 불투명한 리빙박스 안에서 느릿느릿 흙을 헤치고, 젤리색 오줌을 싸고, 제 몸의 5배가 넘는 놀이목을 굴리고 다니며 3년이 넘는 시간을 내 옆에서 채워갔다.


마지막 모습이 생각난다.


몇 주째 기운이 없는 듯 흙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고요한 밤이면 사박사박 발소리를 내며 놀이목 위를 기어 다녔던 사슴벌레였는데. 안방의 어둑한 구석을 차지한 리빙박스는 낮이고 밤이고 조용했다. 새로 까 준 곤충젤리는 며칠 째 그냥 말라갔다. 억지로 끄집어내 젤리를 가져다대줘도 몇 입 먹다 말았다. 마치 나의 애씀에 예의 차리듯이.

하지만 며칠 전, 리빙박스의 뚜껑을 열었을 때 사슴벌레는 아주 오랜만에 밖에 나와있었다. 놀이목에 올라가 있던 사슴벌레는 나를 확인하려는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몸을 곧추세워 아주 고개를 번쩍 든 모습이 기운차보였다. 간만에 본 생활반응이라서 너무 반가웠다. 아, 얘가 앞으로 더 살겠구나 싶었.

그렇게 나는 안일해졌다.

그 후로 사슴벌레가 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도.


아니,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의 인연이 때가 다했다는 것을. 뚜껑을 다시 열면 그 애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거란걸 나는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저 새 젤리를 까주고, 흙에 물을 뿌려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시간을 견뎠는지도 모른다.


나의 사슴벌레는 왼쪽 발이 없었다. 나 때문이었다.

키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며칠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심성 없이 흙을 뒤지다 그만 잠들어있던 사슴벌레 몸 위로 무거운 놀이석을 떨어뜨렸다. 놀라서 황급히 들어본 사슴벌레는 힘겹게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왼쪽 앞발의 발가락 부분이 떨어져 나간 채로.

그 부분은 끝끝내 재생되지 않았다.


사슴벌레는 나를 원망했을까.


나는 끝끝내 그의 마음을 모르는 채로다.


오늘 사슴벌레의 흙을 갈아주려 퍼내다, 나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그 아이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벌써 죽은 지 한참 지난 것 같다. 바싹 마른 몸이 흙에 쓸려 떨어져 나간 거다. 나는 흙을 내팽개치고 둘째 아이에게 달려가 작은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둘째는 영문도 모르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흩어진 흙을 보고 사태를 파악한 첫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사슴벌레 죽었어, 하고.

이렇게 짧게 살다 갈 줄 몰랐어. 더 같이 놀아줄걸, 하고 울었다.


나는 어쩐지 오래 눈물이 나지 않았다. 저녁 준비를 해야 해서 마음 한 켠이 바빴던 탓일 거다. 리빙박스 뚜껑을 덮고는 아직 울고 있던 큰애를 짧게 위로했다. 그리고 저녁을 차렸다. 부글부글 끓이고 탁탁 썰고 촤락촤락 헹궜다. 소리가 있고 냄새가 있고 맛이 있는 행동을 하고 나니 나는 사슴벌레가 죽었다는 것을, 그것도 온전치 못한 몸으로 리빙박스에 누워있다는 것을

잊었다.


하지만 수업이 모두 마치고 혼자 앉아있는 이 밤.

결락을 깨닫는다.

사슴벌레크기만큼의 결락을.

그 결락 사이로 바람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락에선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나왔던 문장이 떠오른다.

"방금지 따뜻한 피가 돌았던 듯 생생한 적막에 싸인 조그만 몸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 끊어진 생명이 내 가슴을 부리로 찔러 열고 들어오려 한다고 느낀다. 심장 안쪽까지 파고들어 와, 그게 고동치는 한 그곳에서 살아가려 한다."


나는 나와 몇 번이고 계절을 보낸 존재를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너무 쉽게 들이고, 너무 쉽게 떠나보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연들에게 그러했듯이.

후회와 슬픔이 충분하지 않은 채로 시간에 삼켜졌던 것들이 세찬 비에 진흙을 벗듯 그 형체를 드러낸다.

충분히 흐르지 않았던 눈물과 회한이 사정없이 몸을 찔러댄다.

이제야.

그가 떠난 지 사흘이나 지나서야.


창밖엔 때 모르는 비가 흘러내리고, 뼈에 스미는 한기에 나는 어깨를 떤다. 봄이 왔다는데, 봄이 왔다는데 왜 이렇게 추울꼬. 다시는 보지 못할 검고 반짝였던 그 눈을 생각하며 밖으로 나선다. 어둡다. 한치 불빛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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