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씨 Apr 09. 2024

아줌마 가드닝의 세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식물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창문 앞에 화분 두 개 놓고 시작했던 나의 가드닝은 슬금슬금 범위를 넓혀 거실 창가를 빼곡히 메웠다.

매일 새로운 식물 검색하고 예쁜 토분을 둘러보고 잎 영양제를 알아보다 보니 꿈까지 식물 꿈을 꾼다. 커다란 알로카시아를 갑자기 들이게 된다든지, 베고니아 유묘를 들이게 된다는지 하는 꿈이다. 평소 갖고 싶은 식물들이 베란다에서 싱싱하게 자라는 꿈을 꾸면 잠에서 깨고 나서도 입꼬리가 한참 들려 올라가 있다.

그렇다. 나는 식물 키우는 일을 사랑해 버린 것이었다.


성인이 되 새로운 취미를 갖는 건 사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관성처럼 하루를 살기 때문이다. 또, 삶이 바빠서 뭔갈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일상에 뭐 하나를 더 끼워 넣을 틈이 잘 안 난다. 특히 어린아이를 돌볼 땐 새로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지속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섣불리 시도했다가 맛볼 실패가 두렵기도 하다. 이미 너무 잘 아는 쓴맛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지니까.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시작할 때 더 망설여지고 오래 시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실내 가드닝은 그 좁은 틈을 뚫고 나의 삶에 들어온 아주 오랜만의 취미다. 6년 전 요가를 시작한 뒤로는 삶에 다른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식물에 대해 생각다. 지금도 식물들 앞에 앉아 글을 쓴다. 타자를 치면서 수시로 고개를 들어 식물을 들여다보면서. 오른손 옆엔 영양제를 탄 분무기가 상시대기 중이다. 기분 날 때마다 잎에 칙칙 뿌려준다.


식물은 이런 내 정성을 즉각 알아차려주는 아주 친절한 존재다. 식물등을 켜주고 서큘레이터를 돌리고 영양제를 얹어주는 내 행동에 매일 반응한다. 잎이 조금씩 커지고, 색은 점점 짙어지며, 끊임없이 새순을 낸다.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아이비는 조그맣고 말라비틀어진 애였는데 우리 집에 오고부터 커다란 잎을 쭉쭉 낸다.

새순이 계속 올라오는 하트 아이비

키우기 어렵다는 칼라데아 오나타도, 알로카시아 프라이덱도 돌돌 말린 새 잎을 연신 내고 있다.

돌돌 말린 새 잎이 펴지는 중인 프라이덱

온실 없이 실내습도에 적응을 한 것이다. 식물도, 나도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


요즘 시간 날 때마다 화원에 가서 새로 들어온 식물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오늘은 단골 화원에서  소엽 백복륜 아이비를 데려왔다.

작은 잎에 복잡한 무늬가 새겨진 이 멋진 아이비는 당분간 제일 바람이 잘 불고 해잘 드는 상석을 차지할 전망이다. 서큘레이터를 틀어주니 줄기가 연약하게 흔들린다. 나는 홀린 듯이 그 흔들림을 바라보고, 살짝 쓰다듬어 보고, 그 가냘픔에 흠칫 놀라며 손을 거둔다.


자신의 뜻대로 살면서 나의 손길에 따라 반응하기도 하는 멋진 생물이 우리 집에 머물러 준다는 사실매번 놀랍다. 식물은 돌봄의 영역에 속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일과는 전연 다르다. 식물을 돌볼 때는 나의 부족함과 미욱함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며칠 물을 말리더라도 식물은 거실에 제 나름대로 적응하여 창을 따라 줄기를 뻗고, 잎 방향을 바꾸고, 새 잎을 내거나 헌 잎을 떨어뜨린다.


매일 아침 일어나 식물의 달라짐을 바라보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밤새 준비한 한 조각의 경이를 아침마다 식물이 준다. 나는 그것이 기껍다. 아침을 기대하게 된다.

아줌마라서 식물 좋아하는 거지, 아줌마라서 꽃 좋아하지 하면서 아이가 놀릴 때도 나는 의연하다. 식물은 정말 멋진 존재임이 틀림없으므로. 아이를 사랑할 땐 얘가 혹시나 잘못 자랄까 늘 두려운 마음이 먼저였지만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엔 한점 그늘이 없다. 식물은 나의 적당한 관심 속에서 스스로의 생을 멋대로 뻗쳐나간다. 나는 그토록 멋진 이를 매일 새로이 사랑하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