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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공학도 Jan 21. 2024

[글감] 쉑쉑버거와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고,

모처럼 Shake Shack에 가서 주문을 하고 앉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다 내 앞에 놓인 진동벨이 문득 눈에 띄었다.



오호, 참신한데. 기다림의 미학이라.

이 여섯 글자의 단어. 꽤나 인상 깊었는지 그날동안 한참 머리에 남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림을 반기지 않는다. 특히나 빨리빨리의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한 뼘만 한 작은 스마트폰으로 바로바로 정보를 볼 수 있는 요즘 시대에선 더더 더욱. 그렇다면 기다림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P40. "이런 압박감과 불안도 어느 정도는 개인적인 문제이며 개인적인 이유에서 생긴 증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산업 시대에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무엇보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보다 결과에 더 치우친 우리의 관심이다."


사람들이 기다림을 반기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기다림 뒤에 내가 보고 싶거나 얻고 싶은 무언가가 현재의 과정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다림의 과정이 그 후에 얻을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거나 최소한 동등하다면 기다림이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에리히 프롬은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문화에서는 삶을 사랑하는 자세를 경험하기 힘들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곧 진동벨의 부름을 받고 나올 햄버거와 셰이크에 앞서 그 과정들. 예를 들면 들려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혹은 혼자 가게의 사람들을 두리번두리번.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버는 나의 노동과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도움들, 그리고 가끔의 어려움들을 극복했음에 감사하기. 매장에서 내가 평소 좋아하는 음악이 들려오는 것과 약간은 긴장이 풀어진 듯한 금요일 오후의 분위기 등등 보다 햄버거를 중요시한다면 삶을 사랑하는 자세를 경험하기 힘든 것일까...?


PS. 에리히 프롬은 '생명체는 더 완벽하고 완전하게 성장할 수는 있어도 자기 안에 담기지 않은 것으로 자라날 수는 없다'라고 썼는데 이 문장은 나름의 위로와 경고를 동시에 주는 것 같은데. 언제나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게 귀결된다. '부지런히 채우자. 부디 쥐어짜지 않고 넘쳐흐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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