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만 되면 벌써 한 주가 다 지나간 것 같다. 사무실에서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날이 수요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어, 벌써 이번 주도 다 갔네, 하며 한숨을 쉬곤 한다. 이번 주까지 완료해야 하는 업무 중에 수요일이 되어서도 아직 못한 게 있으면 자연스럽게 다음 주로 미루고 싶어 진다.
생각해보면 정말 뻔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한 주의 반이나 남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주로 업무를 넘겨 버리려고 하다니.
다행히 회사에는 직원들이 절대 뻔뻔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상사가 있게 마련이다. 그는 직원들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 하마터면 다음 주로 넘겨버릴 뻔 한 업무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실제로 업무가 미뤄지는 일은 많지 않다. 단지 남은 이틀 동안 직원들의 퇴근시간이 미뤄질 뿐.
사회학자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일주일 중 가장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요일은 수요일이라고 한다. 예전에 어느 주간지에서 본 내용인데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수긍이 간다.
사람의 인생을 일주일에 비유한다면 지금 나는 무슨 요일을 살고 있는 걸까?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무리인 것 같고 어림잡아 80세까지는 살게 될 거라고 가정해보자. 이걸 일주일에 대입하면 대충 각 요일마다 11년쯤 되는 셈이다. 그런 식으로 계산해보면 삼십 대의 마지막에 와있는 나는 지금 수요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의 어디쯤을 걷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중년으로 접어들고 있는 사람들이 좀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골목을 서성이고 있는 수요일 밤이라. 정말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유독 수요일에 비가 더 자주 내린다는 점도 수요일을 우울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비 오는 수요일>이라는 노래까지 있는 걸 보면 수요일은 왠지 맑은 날보다는 비 오는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다섯 손가락’이 원곡을 부르고 성시경이 리메이크한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라는 노래에서도 역시 비가 내리는 수요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슬픈 영화에서처럼 비 내리는 거리에서 무거운 코트 깃을 올려 세우며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하고 노래하는 이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의 ‘시린 눈물’을 씻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수요일은 그런 날인 것이다. 뭔가 좀 우울하고,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쳐있을 것 같은.
기상청에 문의해보면 최근 10년 동안의 각 요일 별 강우량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뜩이나 점점 변덕스러워지는 날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기상청 관계자들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그러지 말아야지. 빨간 장미를 건네주지 못할 망정.
비가 오면 아무래도 산책을 나가기 귀찮아진다. 아무리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지만 빗물에 바짓가랑이를 적셔가면서까지 동네를 돌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 날에는 일찌감치 설거지를 끝내고 서재에 앉아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게 된다. 비 오는 수요일이면 떠오르는 슬픈 기억이랄까 그런 것도 없으면서 괜히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그렇게 자세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정말로 감상적인 기분에 푹 빠지게 될 때가 있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비에 젖어버리게 된다고 할까.
서른일곱이 되던 해의 생일에도 비가 왔었는데, 그날도 수요일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나는 서재에 앉아 빌라 외벽을 타고 빗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서른일곱이라니. 하나부터 천천히 세어도 서른일곱까지는 채 삼십 초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인생 참 짧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정말이구나. 빗방울처럼 쉴 새 없이 흘러가버리는 게 시간이구나. 그런 우울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수요일이면 이제 고작 한 주의 절반일 뿐이다. 이번 주까지 하기로 계획한 업무들이 대부분 미진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성실하게 시간을 보내면 얼마든지 금요일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 벌써 한 주가 다 갔네, 하며 팔짱을 끼고 있기에는 너무 이르다.
지금 나는 수요일 밤을 걷고 있다. 수요일은 원래가 우울한 날이며 인생이 정말 짧은 거라며, 우산을 받쳐 들고 골목을 서성이고 있다. 월요일 아침에 계획했던 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벌써부터 다음 주로 미뤄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큰일이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누군가 빨리 골목으로 뛰쳐나가 내게 알려줘야 한다.
“이 사람아, 다음 주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