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직한, 무척 가깝게 지내던 선배가 있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번 주 금요일에 연차휴가를 쓰게 되었다고 했더니 선배는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 아까운 연차휴가를 왜 금요일에 쓰냐는 것이었다. 아니,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연차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포함해서 좀 길게 쉬고자 하는 게 직장인의 당연한 셈법 아닌가요? 그러자 그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조용히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아, 너 아직 결혼 안 했지?”
“그거랑 연차휴가랑 무슨 관곈데요?”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휴가 쓴다고 해 봐라. 분명 마누라는 자기도 휴가를 쓸 테니 주말까지 껴서 어디 가까운 데 바람이라도 쐬러 다녀오자고 성화를 부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처럼만의 휴가를 망치게 되고 만다. 선배의 이야기는 대충 그랬다. 아내와 교외에 다녀오는 게 휴가를 망치는 건가. 선배는 두말할 것 없다는 듯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 같은 연차휴가를 썼는데 그런 날까지 종일 마누라하고 같이 붙어있을 순 없다는 것이 선배의 주장이었다.
“아내 하고 종일 같이 있는 게 뭐가 어때서요?”
“부부는 붙어있으면 필연적으로 싸우게 된다.”
“아니,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고도 같이 살 수 있는 게 부부지. 너도 결혼하면 다 알게 된다.”
마치 도인 같은 얼굴로 그렇게 대답한 선배는 담배를 피우려다 말고 서둘러 덧붙였다.
“아니다, 굳이 알 필요 없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넌 행여 결혼 같은 건 하지 마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연차휴가는 모름지기 수요일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수요일은 주말하고 앞뒤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주말 껴서 어디 가자 이런 소리가 애초에 나올 수가 없어 안전하다. 그래서 애들 학교 가고 마누라까지 회사 가고 나면 그날 하루는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다. 이거야 말로 사막 같은 결혼생활의 오아시스가 아니고 뭐겠느냐. 직장인에게 휴가란 응당 그래야 되는 거지. 선배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 선배에게 있어서 수요일의 연차휴가는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은 물론, 가정생활의 존립 자체에도 도움을 주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나서 연차휴가를 쓸 때마다 가끔씩 그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시험 삼아 한두 번 수요일에 연차휴가를 써봤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틀 일하고 하루 쉬고 다시 이틀 일하면 주말이 되는 흐름은 확실히 매력이 있었다. 권투선수도 똑같이 네 대를 맞더라도 연속으로 맞는 것보다는 두 대 맞고 한번 쉬고 다시 두 대 맞는 편이 훨씬 견딜만할 것이다. 물론 맞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그게 쉽지가 않다. 어쩌면 정해진 룰에 따라 타격할 수 있는 부위와 타격해서는 안 되는 부위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보면 권투가 훨씬 신사적일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가 산책을 하는 건 늘 평일 저녁 아니면 주말이기 때문에 평일 낮에 동네가 어떤 모습인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우리가 산책을 할 때쯤이면 동네는 대개 땀을 닦으며 벽에 기대앉은 채 쉬고 있거나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평일에 휴가를 내고 혼자 동네를 걷다 보면 새로운 모습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를테면 언제나 불이 꺼진 채 텅 빈 모습으로만 보아 왔던 카센터 겸 세차장에서 파란색 스포츠카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맞고 있는 광경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항상 뭔가 걱정거리가 있는 듯 어두워 보이던 세차장 사장님도 밝은 햇볕 아래에서 스포츠카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마주 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저녁에는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조용히 엎드려 있지만 낮에는 싱싱한 활어 같은 동네라는 걸 깨닫게 될 때마다 어쩐지 안심이 된다.
참, 앞에서 등장한 그 선배는 그 후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결혼 반대론을 펼치곤 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데 해놓고 후회하는 것보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주말부부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지만 가능한 아주 귀한 거다 등등. 하지만 나중에 내가 결혼하게 되자 토요일 아침부터 그 먼 길을 달려와서 직접 축하를 해주고 축의금도 상당히 많이 내고 갔다. 요즘도 가끔씩 만나 술잔을 기울일 때면 그 선배는 꼭 아내의 안부를 묻고 우리 두 사람을 격려해준다.
말리기엔 이미 늦어버렸기 때문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