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저녁은 언제나 피곤하다. 주말 내내 거실 바닥에 등을 딱 붙인 채 지내다가 갑자기 몸을 움직였으니 피곤할 수밖에. 게다가 상사는 왜 그리 기운이 넘치는지 아침부터 자리로 불러놓고 이것저것 일거리를 던져준다. 심지어는 잃었던 기억력까지 회복하며 몇 주 전에 지시했던 업무의 진행상황까지 챙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퇴근할 때쯤 되면 기운이 쭉 빠진다.
제이는 나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우선 직장이 너무 멀어서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쳐버린다. 분당에 있는 제이의 직장은 우리 집에서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러니까 하루에 세 시간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셈이다. 세상에, 세 시간이면 여기서 홍콩까지도 갈 수 있다. 체력도 그렇게 훌륭한 편이 아니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제이는 손가락으로 툭 밀면 픽 하고 쓰러져버릴 것 같다. 눈 밑은 늘 거무뎅뎅하다.
“여보, 나 동네에서 토스트 가게 같은 거 할까 봐.”
눈 밑이 거무뎅뎅한 제이가 중얼거렸다.
“당신은 손이 너무 느려서 안 될 것 같은데.”
“막상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쎄. 근데 토스트 가게가 잘 될까?”
“우리 동네가 나름 대학가잖아. 학생들이 많이 사 먹지 않을까?”
“물론 맛이 있다면야.”
그때 우리는 이제 막 토스트 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벽을 온통 빨간색으로 칠한 가게 안에는, 빨간 앞치마를 입은 점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의 동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
며칠 뒤에 다시 그 앞을 지나가면서 보니 가게가 있던 곳은 이 빠진 자리처럼 텅 비어있었다. 바닥에는 전선이 어지럽게 흩어져있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의자 하나가 넘어져있었다. 제이와 나는 토스트 가게의 행방에 대해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어디 다른 데로 옮겼나 봐.”
“어쩌면 장사를 접은 건 지도 모르지.”
“잘 되는 것 같았는데 왜?”
“잘 안 됐는지도 모르지.”
다시 며칠이 지나자 토스트 가게가 있던 자리에 어느새 생과일주스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벽에는 온통 과일 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점원들은 수박 무늬 앞치마를 입고 카운터 뒤에 서서 행인들을 살피고 있었다.
“잘 될까?”
“글쎄. 이 거리만 해도 벌써 주스 가게가 몇 군데 되니까.”
제이와 나는 생과일주스 가게의 전망에 대해 나름대로 추측해보았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리 두 사람 모두 줄곧 월급쟁이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가게를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벌써 몇 년째 저녁마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있던 가게가 없어지거나 없던 가게가 새로 생기면 금방 알아보게 된다. 늘 보이던 가게가 갑자기 사라져서 텅 비어 있는 것을 볼 때면 마치 얼굴만 알고 지내던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동네로 훌쩍 이사를 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가버릴 줄 알았으면 서로 인사라도 하고 지낼 걸, 하는 마음에 괜히 아쉬워진다. 어쩌면 사라져 버린 가게에 대해서라기보다는 그 가게 앞을 거닐던 시간이 ‘확실히’ 과거가 되어 버렸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한때 여기 이런 가게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동네에 있는 모든 가게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붙들어 매 두고 싶다.
가끔씩 제이는 우리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구상을 이야기하곤 한다. 아이템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뀐다. 지난겨울에 포르투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한동안 에그타르트에 심취해있었다.
요식업에 대한 제이의 구상은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인 것 같다. 그런데 딱 한번 제이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반찬가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누구누구네 반찬가게’ 이런 식으로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면 잘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의견을 물었다. 아무리 봐도 표정이 진지한 게 가볍게 대답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매일 먹는 입장에서 내 의견을 말하자면, 반찬가게는 정말 안 될 것 같은데.”
다행히 제이는 그 뒤로 더는 반찬가게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