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작동 중

by 봄에 핀 코스모스

우리 동네에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대문 앞에 화분을 내다 놓는 집들이 있다. 실내에만 두면 화분들이 볕을 충분히 쬐지 못할까 봐 그런 수고를 하는 것일 텐데,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주인의 마음 씀씀이 덕분에 바깥으로 나와 햇볕을 쬐고 있는 화분들은 꼭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 같다. 화분들이 놓여있는 집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잠시 내 손을 놓고 쪼르르 화분 곁으로 달려가서 감탄하고 있는 제이의 모습 역시, 천진난만한 아이 같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아기자기한 화분들이 나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눈에 띄는 경고문이 있다.

‘화분을 훔쳐가지 마세요’

‘주인 있습니다’

‘CCTV 작동 중’

문장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화분을 도둑맞을 것을 두려워하는 주인의 염려를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런 경고문을 한번 보고 나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아이들처럼 보이던 화분들은, 이제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버려진 헨젤과 그레텔처럼 안타깝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도둑맞을 것을 염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화분들에게 햇볕 구경을 시켜주고 싶기도 하여 결국 이런 경고문을 써야만 했을 주인의 애절함이 안쓰럽기도 하다. 제이의 얼굴에도 어느새 그늘이 드리워진다.

“정말 남의 집 화분을 훔쳐 가버리는 사람이 있는 걸까?”

“있으니까 저런 걸 써 뒀겠지.”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의 집 화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가버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지 나 역시 알 길이 없긴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일일이 그들을 붙잡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겁니까’ 하고 설명을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령 설명을 듣는다고 한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물론 다들 비슷한 전형 과정을 거쳐서 입사를 한 사람들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서로 공통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방심하고 있다가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깜짝깜짝 놀라는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제이는 이런 방면에 있어서는 꽤나 방심한 채 살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씩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퇴근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오늘 당신이 본 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야, 하고 안심시켜보려 하지만 번번이 역효과만 나는 것 같다. (정말 사람이란 말이야?!)


“글쎄 어떤 직원이 전년도 원천징수 영수증을 떼 달라고 하면서 자기 연봉을 팔천 만원인 것처럼 보이게 숫자를 바꿔달라고 하는 거 있지.”

“음…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건 엄연히 위조잖아. 어떻게 태연하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어?”

“뭐,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나는 누군가에게 공문서 위조를 부탁할 만한 위인이 못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있는 편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결국 나 역시 가끔씩은 누군가에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할 것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나도 가끔씩은 누군가에게 귀신이 되는 것이다.

귀신이 되는 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며 살아가는 곳이 이 세상이라면 얼마나 지루할까. 놀랄 일도 없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도 없고, 새로운 일도 없는 세상. 차라리 가끔씩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귀신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세상이 훨씬 스릴 있고 역동적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의 화분을 함부로 집어가는 식으로 전해주는 놀라움보다는 차라리 좀 지루해도 평화로운 세상이 낫다. 모두가 서로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반경 안에서 움직이든 간에 자신의 움직임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줘도 이미 무서운 귀신들을 너무 많이 목격한 제이를 안심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얼마 전에는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결혼한 여직원들에게, 부부 싸움했을 때 가장 손쉽게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며, 그럴 때는 집안에서 나체로 돌아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도 아직 이런 귀신이 출몰한다니 정말 믿기 어렵다.

아침마다 출근한다고 집을 나서는 제이를 볼 때마다, 매일 아침 집 앞에 화분들을 내다 놓는 주인과 같은 심정이 되곤 한다.

CCTV 작동 중입니다. 귀신은 속도를 줄이거나 부디 다른 길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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