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저기 달 좀 봐

by 봄에 핀 코스모스

한 주를 시작한 지 고작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화요일만 되면 벌써 지쳐버릴 때가 있다. <첫날의 약속>이라는 이승환의 노래 중에 ‘월요일 아침 고쳐 매던 구두끈은 어때요?’라는 노랫말이 있다. 말하자면 화요일만 되면 내 구두끈은 형편없이 풀어져 버리는 것이다. 아예 고쳐 맬 생각조차 하지 않고 터덜터덜 퇴근길을 걷고 있기 일수다. 보통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출퇴근의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막연한 조급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화요일이 바로 그런 날이 되곤 한다. 게다가 주말까지 앞으로 사흘이나 더 남았다는 걸 떠올리면 마치 사막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것만 같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자마자 어깨에 짊어지고 온 어두운 기운들을 거실에 턱 내려놓는다. 그러면 토끼처럼 웃으며 달려 나온 제이의 얼굴도 순식간에 시무룩해지고 만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뭐가.”

이런 식으로 제이의 말을 싹둑싹둑 잘라먹다 보면 어느새 식탁에는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제이 역시 회사에서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왔을 텐데. 아니면 오늘 무슨 재미난 사건이 있어서 ‘이건 저녁에 꼭 남편한테 이야기해줘야지’ 했던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젓가락으로 밥알을 집어먹고 있는 제이에게 미안해진다. 정말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한다. 제이는 어른들이 부부싸움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친척 집에 놀러 온 아이처럼 눈치만 살피고 있다.

그런 날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한동안 말이 없다. 식탁 위에는 밥그릇이며 접시들이 눈치도 없이 입가에 양념 자국을 잔뜩 묻힌 채 누군가 자기네들을 씻겨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제이는 뭔가 슬픈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다. 이 모든 게 다 화요일 때문이다,라고 책임을 미루고 싶다. 하지만, 사실 이건 모두 다 내 책임이다. 화요일은 죄가 없다.

“여보, 좀 걷다 올까?”

“그러자.”

일단 집을 나서긴 했는데 어느 쪽으로 갈지 방향을 정하지 못한다. 산책을 나서면서 매번 목적지를 정해두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발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길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날에는 언제나 방향이 문제가 되곤 한다.

“어느 쪽으로 갈 건데?”

“글쎄… 이쪽으로 갈까?”

“왜?”

왜 나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런 질문이 되돌아오면 어쩐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린다. 산책을 나서기 전부터 미안하다고 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미안해.”

“뭐가?”

“괜히 투정 부려서.”

“아냐, 힘들어서 그런 건데 뭘.”

여느 때 같으면 제이의 손을 잡고 있었을 내 손은 제이의 손목 부근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좀처럼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자주 눈에 띄던 동네 고양이들도 이런 날에는 거짓말처럼 모습을 싹 감춰버린다. 고양이라도 한 마리 지나간다면 ‘어, 저기 또 고양이가 있네’라는 말이라도 해 볼 수 있을 텐데.

“여보, 저기 달 좀 봐.”

그때 문득 제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과연 둥그런 달이 노랗게 떠있다. 저녁 하늘에 낮게 걸쳐있는 달은 지상의 건물들과 대비되어 무척이나 거대해 보인다. 돌멩이를 던지면 맞힐 수 있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는 걸음을 멈춘 채, 이제 막 지평선을 떠나 승천을 준비하고 있는 거대한 달을 바라본다. 예부터 달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고 하더니 코앞에 가깝게 떠있는 노란 달은 확실히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여보, 소원 빌어”

어느새 예의 명랑한 목소리로 돌아온 제이가 말한다. 워낙 의심이 많아 종교도 갖지 못하는 내게 달에다 소원을 빌라니.

“당신은?”

“난 벌써 빌었지. 그러니까 당신도 빨리 빌어.”

달무리처럼 말간 얼굴로 제이가 나를 재촉한다. 나는 다시 한번 달을 올려다본다. 아직까지도 달을 보면 소원을 비는 아내의 맑은 마음에 내가 그늘을 드리우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으로 나 역시 달을 보며 소원을 빈 셈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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