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도시락을 준비하며

by 봄에 핀 코스모스

제이가 회사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때가 있었다. 점심을 함께 먹는 동료들이 있는데 각자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매번 밖에 나가서 사 먹는 것보다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제이의 도시락 반찬은 전날 우리가 저녁으로 먹은 메뉴였다. 제이는 다음 날 도시락으로 싸갈 분량까지 고려해서 저녁을 준비했다. 가끔씩 남은 반찬이 없을 때는 김이나 참치 캔을 도시락 보자기에 넣어 갈 때도 있었다. 동료들이 각자 반찬을 꺼내놓을 때 제이가 참치 캔을 꺼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무슨 반찬을 준비해오는 걸까.

“뭐 다이어트한다고 과일 위주로만 싸오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대충 준비해오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제이가 말한 ‘대충’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아무튼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준비하다 보니 고3 수험생 자녀에게 들려 보내는 도시락처럼 그럴싸하게 차려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좀 더 생각해보니 도대체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제이의 도시락 동료 중 한 명이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글쎄, 그 동료의 남편이 매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아내의 도시락을 챙겨준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침 식사까지 차려서 먹인다고 하니 과연 다른 동료들이 혀를 내두를 만했다. 그런데도 정작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당사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오히려 조금은 귀찮을 때도 있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니, 그것도 그 나름대로 혀를 내두를 만한 일인 것 같았다.

산책을 하다가 제이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나는 괜히 마음이 뜨끔했다.

“그 사람 남편은 백수야?”

“아니, 무슨 외국계 회사 다닌대.”

“어차피 오래 하지도 못할 걸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다른 동료들도 그러긴 하더라. 그래도 정성이 대단하지 않아?”

그 남편이라는 사람은 원래가 아침잠이 없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일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아내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침 식사까지 차린다는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매일 아침마다 아내의 회사까지 차로 바래다준다고 한다. 월급을 준다고 해도 하기 힘든 일들을 자진해서 척척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즐겁다는 표정으로.

“글쎄, 그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로부터 얼마 후 화요일이었다. 그날따라 제이는 유난히 고단해 보였다. 산책을 다녀오자마자 퀭한 눈을 비비며 먼저 침실에 들었다. 오늘 하루 너무 피곤해서 혼났다며 도시락 준비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해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침실에 들어가 보니 벌써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내일 제이의 점심 반찬은 참치 캔이 될 것이다. 낮게 코를 골며 잠든 제이를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아내의 도시락을 싸 보았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재료로 쓸 게 달걀 몇 개와 풋고추밖에 없었다. 아쉬운 대로 계란말이를 했는데 그나마 조금 태우고 말았다. 나머지는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으로 구색을 맞춰 반찬 통에 담았다. 내용물이 빈약한 만큼 보기라도 좋게 담아 보려고 신경을 썼다. 도시락을 싸면서 도시락을 먹을 제이를 생각했다. 잠시 후에는 어머니 생각도 났다. 아내와 어머니. 이날 이때까지 내게 도시락을 싸준 사람은 그 두 사람이 전부였다.

매일 나보다 훨씬 더 먼 출근길을 준비하느라 제이는 아침마다 여유가 없다. 제이가 새벽같이 일어나서는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자고 있을 때가 많다. 침실로 들어와서 나를 깨우며 식탁 위에 간식 싸 뒀으니 꼭 가져가라는 말을 남기고 제이는 바쁘게 집을 나선다. 간식은 대개 과일이나 샌드위치, 요구르트 같은 것들이다. 가끔씩 제이는 아침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미안한 일이 많은 쪽이 오히려 상대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되는 것이 부부일까. 아내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동안 줄곧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침실에서는 여전히 아내의 낮은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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