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시간이 잘 간다. 출근해서 노트북 켜고 메일 확인하고 뭔가 좀 끄적거리다가 고개를 들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순식간에 서너 시간이 그냥 흘러가버린다. 점심 먹고 와서 전화 몇 통 받고 오전에 쓰던 보고서를 다시 좀 끄적거리다 무심코 시계를 보면 퇴근시간이 코앞에 와있다. 퇴근을 하는 기분이 괜히 찝찝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맞은편 정거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저쪽에서 내렸던 게 바로 조금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혹시 내 삶도 이렇게 훌쩍 흘러가버리는 건 아닐는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같은 길이의 시간이라고 해도 비슷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내용이 없어 단조로운 시간은 매우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내용이 풍부하고 여러 가지 사건들로 가득한 시간은 매우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까지는 금방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좀 알쏭달쏭하다. 단조로운 시간은 별다른 내용이 없기 때문에 무게가 없는 시간이다. 훅 불면 날아가버릴 정도로 가볍다. 그런 시간은 하루하루가 언뜻 느리게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십 년 이십 년은 금방금방 날아가버릴 수 있다. 무게가 없으니까 휙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사무실에 앉아서 5분마다 시계를 보며 시간 참 느리게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의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수도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인 걸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마의 산>은 대부분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이야기들.
“그 책 재미있어?”
힘겹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내게 제이가 물었다.
“아니, 힘들어. 진짜 산을 하나 오르고 있는 기분이야.”
“근데 왜 계속 읽어.”
“등산하는 사람들이 등산하는 거 하고 같지 뭐.”
제이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안 그래도 세상에는 힘든 일들이 많은데 굳이 독서까지 그렇게 힘들게 해야 돼?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벌써 이 년 정도 된 이야기지만, 제이는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을 당했다. 가깝게 지내던 동료에게 크게 배신을 당해 마음의 상처가 상당했다. 게다가 제이의 상사는 뱀 같은 사람, 혹은 사람 같은 뱀이나 마찬가지인 인물로 이틀이 멀다 하고 제이에게 독사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제이는 가끔 밥 먹다가도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그러다 당신 몸 상할라. 내일 출근하면 바로 사표 내.”
“그래도 다닐 거야.”
“왜 자꾸 고집부려?”
“난 계속 일을 하고 싶단 말이야.”
과일을 사러 동네 슈퍼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걷고 있던 제이가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잠자리에 든 제이의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 자국이 있었다. 나쁜 학생들에게 맞고 돌아와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처럼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제이는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보다 더 모진 일들도 견뎌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제이는 벌써부터 내일 출근할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며 투정을 부린다. 이게 다 월요병 때문이라며.
“당신은 월요병 같은 거 없어?”
“난 그런 거 없지.”
“자기는 진짜 대단해.”
“난 매일 출근하기 싫어하는 스타일이거든. 특별히 월요일만 그런 건 아니란 말이지.”
그러자 제이는 소녀처럼 웃었다.
토마스 만은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그 역시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음날 출근할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지곤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릴지도 모르는 인생을 안타까워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토마스 만이 마치 같은 팀 부장님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토마스 만 같은 부장님이라면 혹시 월요병을 완치할 묘안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이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마의 산>을 끝까지 다 올라가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