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부터 제이(아내의 이니셜 첫 글자)와 나는 함께 살았다. 상견례를 몇 달 앞두고부터 신혼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결혼하기 전에 집부터 구하게 된 것이다. 집이 구해진 마당에 굳이 따로 살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제이는 종로 토박이다. 어렸을 때부터 창덕궁 비원이 내려다보이는 동네에서 살았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다. 늘 하숙 아니면 자취였다. 제이를 만나고 있을 때는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집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툭하면 보일러가 고장 나서 저절로 꺼져버리곤 했다. 어쩌다 제대로 작동을 하는 날에도 우주선이 이륙하는 것처럼 굉음을 냈다. 가끔씩 구석에서 바퀴벌레가 기어 나오는가 하면 여름에는 선풍기마저 땀을 뻘뻘 흘리던 오래된 벽돌집이었다.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주말마다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때였다.
“우선은 자기 자취방에서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느 날 제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아직 내 자취방의 상황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소리려니 싶었다. 아니면 매주마다 이 집 저 집 발품을 팔러 다니는 내가 안쓰러워서 그랬을까. 이유야 뭐가 됐든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내 자취방이라면 우선 나부터가 내키지 않았다.
다행히 그로부터 얼마 후 우리 형편에 맞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빌라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은 내가 먼저 그리로 이사를 했다. 며칠 후 제이가 조그마한 짐 가방 하나를 끌고 우리 동네로 왔다. 나는 하객들 앞에서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처럼 골목의 이쪽 끝에 서서 제이를 맞았다. 저쪽에서부터 골목을 걸어오던 제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 골목에서 결혼식을 올린 셈이다.
실제로 결혼식을 한 건 그로부터 5개월 뒤였다. 그 며칠 전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그날도 저녁을 먹은 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하얀 달빛 아래로 5개월 전에 제이가 짐 가방을 끌고 걸어왔던 골목길이 따뜻하게 펼쳐져 있었다.
“금요일에는 내려가야 할 텐데 차표는 구했어?”
제이가 물었다.
결혼식은 내 고향인 경주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금요일에 집을 나선 우리는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경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에 결혼식을 끝내고 나서 다시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마치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다녀온 부부처럼 태연히 옷을 갈아 입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신혼여행은 일요일 출발이었다.
설거지를 끝낸 다음 우리는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갔다.
“여보, 하고 불러 봐.”
제이가 말했다.
“올여름부터 벌써 그렇게 부르고 있잖아.”
“내일은 정신없겠지?”
“좀 일찍 일어나는 게 좋겠지.”
내 외투 주머니 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제이의 손이 따뜻했다.
골목에 늘어선 빌라들은 집집마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벌써 토요일이 다 끝나버린 데 대해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어느 집 담벼락 뒤로 몸을 숨겼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코앞으로 다가와있었다. 제이와 나는 이제 막 각자의 삶을 정리하고 부부로써의 첫 발을 내디디려 하고 있었다. 아니, 각자의 삶을 정리했다기보다는 서로의 삶에 서로를 초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이의 삶에 내가, 나의 삶에 제이가 초대받은 것이다.
제이의 삶에 초대를 받아서 거실에 앉아 차도 한잔 대접받으면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집안 곳곳에 주인의 손때가 묻어있는 것이 느껴진다. 정성스럽게 잘 가꿔온 집이다. 전혀 낯설지 않고 어쩐지 아늑하기까지 하다. 내 삶에 초대를 받은 제이는 어떤 기분일까.
참, 나중에 물어보니 역시나 제이는 내 자취방 보일러가 그렇게나 고물인 데다 가끔씩은 바퀴벌레가 나오기도 한다는 건 전혀 몰랐던 것 같은 눈치였다. 어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