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이름의 미정의 서사
지난달, 정신이 완전히 무너졌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여겼던 과거가 불쑥 되살아났고, 그 위에 덧씌워진 현실은 모래처럼 무너졌다. 인간관계도, 생활도, 내 미래에 대한 확신도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고, 그 순간의 나는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기력은 나를 잠식했고, 어떤 이유로도 다시 움직일 수 없었다.
며칠간 나는 모든 연락을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세상과 단절된 그 시간 동안 유일하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놀랍게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흐릿했다. 그래서 기억을 따라 거꾸로 걸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 시기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이 나는 그 맨 첫 순간부터 현재까지 모든 시기의 나를 추적해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매년, 매 계절, 어떤 사람과 함께였는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는지에 따라 나의 성격과 말투, 사고방식, 심지어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까지 달라졌다.
나는 현실적인 동시에 몽상가였고, 극단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다가도 극단적으로 자애적이었으며, 모두의 시선을 신경 쓰다가도 하루아침에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싶어 했다. 안정을 갈망하는 동시에, 변화가 없으면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허나 이 모든 모순은, 그저 나였다. 나는 그 모든 나에게 깊이 공감한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정의하려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혹은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야’ 같은 문장들로, 나를 특정한 테두리에 가두고, 그것이 ‘진짜 나’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묻고 싶어진다.
“정의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일정치 않음’은 혼란이 아니라 변화의 본질이고, 그 안에는 감각의 민감함, 삶에 대한 반응성, 그리고 적응력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더 이상 ‘일관된 나’를 찾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경험을 통해 ‘지금의 나’를 더 선명히 느끼고, 그 순간에 내 마음이 가장 빛나는 조건들을 기억하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어떤 특정한 정체성보다 그때그때의 나의 온도와 색깔, 그 흔들림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정의되지 않음’을 본질로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관계를 맺고 잃고, 공간을 바꾸고 감정을 겪으며 그때마다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삶이란 변치 않을 본질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나를 알아보고, 그때의 ‘가장 나다운 마음’을 지켜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일을 하고 싶다. 계속해서 변화하며, 그 안에서 나를 더 깊이 이해해 보는 것. 정의되지 않는 나를 받아들이며, ‘어떤 나일 때 가장 나답고 행복했는가’를 기억하고, 그때의 요소들을 놓치지 않도록 매일을 살아가는 것.
매일을 새로운 나 자신과 마주하며 바뀌어가는 것. 어쩌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아를 찾는 일’의 진짜 이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