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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작자 Jul 03. 2023

혼자 있는 시간: 출장을 가장한 외박

퇴사일기

아주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어본다. 


서른 살이 되던 해, 4월, 홀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있다. 때는 첫 회사에 입사하기 일주일 전 주어진 자유시간, 두려움 보단 설렘으로 몇 주간 서점에서 여행 서적을 뒤적여 가며 싱가포르 여행을 계획했다. 오전형 인간이 아닌 나는 오후 비행기를 타고 애매한 시간에 창이공항에 도착했었다. 해가지고 도착해서 밖이 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subway를 타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찾아갔다. 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지라 주인아저씨는 친절히 걸어 나와 숙소까지 길을 안내해줬고 안주인은 한국말로 내가 묵을 방과 주방 시설등을 안내해 줬다. 어두운 거리에서 커져가던 막연한 두려움이 예약한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자 한결 가벼워졌던 게 기억난다.  


이보다 전에 제주도를 혼자 가본 적이 있다. 내 생일 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저녁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여름밤의 제주도는 서울의 밤에 익숙한 내게 불안할 만큼 깜깜했다. 그 시절 출퇴근을 하며 자주 운전을 한 덕분에 렌터카까지 빌려 첫 제주 여행을 시작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가긴 뭐해서 달모양 조명이 있는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고 다이어리를 썼다. 짧게 카페놀이를 마치고 숙소를 찾아가는 동안 나는 사실 많이 무서웠다. 라이트를 켜도 시커먼 제주의 밤에 혼자인 것이, 그리고 며칠간 혼자일 것이 두려웠다. 오직 내비게이션 성우의 목소리에 의지한 채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양손으로 운전대를 꼭 붙잡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짐을 풀 수 있었다. 


2023년 5월 어느 평일 나는 아주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다. 이전 혼자 갔던 여행들에 비하면 전혀 불안할 것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불안했다. 이번에 외근으로 대구의 한 병원에 2일 연속 방문하게 되어 대구 중앙역 근처에 숙소를 예약해서 온 공식적인 외박이었다. 아직 빛이 훤한 월요일 저녁이었고 숙소 근처의 음식점이며 술집에 사람들이 이제 막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름만 호텔인 대구의 한 숙박 업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방에 올라갔다. 이 10평 남짓한 공간에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어색한 기분을 덮어버리고자 얼마 전 보다 멈춘 넷플릭스 영화를 켜고 침대 이불 위에 어정쩡하게 누웠다. 더 볼 게 없어서 씻으러 갈 때는 사람소리가 좀 필요했기에 노트북으로 재즈 노래를 틀었다. 


결혼 후 집에서는 늘 거의 누군가와 같이 있었다. 아이, 남편, 엄마. 


회사를 나가도 외근을 나가도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산책을 혼자 나가도 어디에나 마주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때론 나를 분산시켰고 꺼내주었고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오늘 저녁은 아이 장난감을 들고 "랄라랄라랄라랄라랄라랄라라"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오랜만에 입을 닫아도 되는 날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날이었다.

 

엄마가 된 후 혼자 있는 시간이 가끔 있었지만 외박은 처음이었다. 정말 혼자가 되고 싶다기 보단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을 계속 생각하는 것처럼 혼자 있을 나를 생각한 적이 많다. 

만약에 내가 혼자 여행을 가면, 아니 여행이 아니더라도 혼자 어딘가에 있을 수 있게 되면,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이 오면 나는 꽤 홀가분한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씻고 침대에 누워 키보드를 치며 있자니 이게 다였나 싶다.

그날이 왔는데 고작 편의점에 가서 간식거리를 사고, 배달음식을 먹으면서, 남겨두었던 영화를 보는 것이 다였다. 단 아무 말도 없이 시간을 채웠다. 

체크인 시와 편의점에서 계산을 할 때 그리고 배달원과의 통화로 말이라는 것을 했지만 그날 밤 그 외에 내가 혼잣말을 했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이런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날이 될 거 같아 몇 자 적다 보니 또 그럴 듯 해지려고 꽤나 글이 길어졌다. 


오늘은 괜찮다.

말하지 않아도 되고, 반응하지 않아도 되고, 누워있어도 되고, 그저 이렇게 있어도 되는 날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고작 지극히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 아무것이었나 보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이었나 보다.


숙소에 막 도착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어쩌면 어색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또 출장을 가장한 외박을 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좀 더 익숙해져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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