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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작자 Jan 07. 2023

가성비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퇴사일기


어제 저녁 집에서 2정거장 거리의 카페에서 재택근무를 하던 중 메일함에서 친절한 면접 불합격 메일과 맞닥뜨렸다. 이미 엊그제 최근 본 면접에 대한 설문 목적의 메일을 받은 터라 곧 결과가 오겠구나 했다. 

면접일은 12월 22일 목요일이었고 나는 반차를 냈었다. 

 

그리고 어제 1월 5일, 연말 office closing때문이었는지 2주 만에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지원했던 회사는 임상시험 CRO업계에서 글로벌 Top 10에 드는 큰 회사였고 최근 현 회사의 동료와 후배 그리고 이전 회사의 후배가 입사한 곳이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큰 글로벌 COR 회사(타국가 및 한국 지사의 규모)의 면접을 2번 정도 봤고, 작은 규모의 회사(여기서는 한국 지사의 규모)도 2번 봤다.

 

2주 전, 1년만에 약 1시간가량의 TEAMS프로그램을 이용해 화상면접을 보고 역시나 면접은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회사에 출근을 했다. 하필 그날은 팀의 첫 저녁 회식 날이었다. 거창하게 붙은 'Year End Party'라는 이름과는 다소 갭이 있었지만 입사 후 첫 외식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 예약이 잡혀 있었다. 나는 면접이 끝나자마자 회사에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생각보다 긴 면접이 끝나고 허기진 배로 지하철을 탔다. 

 

화상 면접 시 3분의 면접관이 있었고 한 분은 이사님이라고 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게 설정하여서 면접 시작부터 끝까지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쌩얼로 재택 중일 수도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나머지 2분은 CRA Manager 분들이었고 각각 담당하는 외국 제약회사의 임상시험만을 진행하는 Dedi team 이었다. 나름 면접 시 대답하지 못한 부분은 없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마치 합격이라도 된 마냥 면접 끝 무렵 필질문들을 했고 그들은 면접 내내 나를 "후보자님"이라고 불렀다. 

 

지원자라는 말은 꽤 들어봤는데 "후보자님"은 처음 들어서 조금 낯설었다.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말실수들이 떠올라 적어본다. 

 

-현제 맡은 과제(임상시험)가 4개이고 중간에 Qualification Visit(Pre-Site Visit이라고도 함)을 2개 기관(병원) 진행하였고 4개 과제가 최대치인거 같다. 

-> 알고 보니 한 Team은 한 CRA가 5개 과제를 맡기도 한다.

 

-자기 소개 시 간호사 O년, CRC(연구간호사) O년 O개월 업무 경력이 있다.

-> 본업 관련된 경력이라고 어필하였는데 사실은 나이 많음을 어필한 거 같다.

 

-이전 회사에서 팀장 Promotion에 지원했다가 진급 대신에 새로운 직급(LCRA)을 받고 딱히 뭐가 없었다 & 결국 외부에서 들어온 팀장님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 몇 년 뒤에 커리어는 CRA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 

-> 약간 팀장자리를 넘보았다가 경력 부족으로 떨어졌으나 큰 회사에서 경력 쌓고 다시 돌아가려는 큰 그림을 갖고 있다고 보였겠다.

 

계속 생각하면 스스로가 부끄러워져서 여기까지 만 적기로 한다. 사실 합격했으면 대수롭지 않았을 말들이지만 나는 "불 합 격" 했으므로 만약에 다음에 면접을 다시 보게 된다면 저런 말들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시 돌아가서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본다. 나는 이 업계에서 한 마디로 가성비가 좋지 않다고 여겨진다.

 

우선 작년으로 돌아가 보면 2개의 큰 회사에서 모두 불합격하였는데 한 곳의 피드백은 CRA년차에 비해 담당해온 연구가(이전 회사에서 Global보다 Local 연구를 주로 했고 주로 3, 4상 임상시험을 많이 했음) 경력을 뒷받침하기에 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또 육아를 하면서 외근과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었다. 

 

내가 CEO라도 연봉은 Junior CRA 보다 많이 줘야 하고 아이가 있어 응급변수가 있는 나보다는 싱글에 적정한 경력(1~3년)의 CRA를 적정한 연봉에 채용하는 것이 가성비가 있을 거 같다. 

작년에는 이렇게까지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 살 더 먹었다고 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보게 된다.

 

2개의 작은 회사는 한국지사의 CRA가 한자리 수에서 열댓 명 사이였는데 그들은 모두 나를 채용하고 싶어했다. 단 내가 부른 연봉에서 약 4, 5백 정도는 내려간 숫자로 말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회사는 작년 마지막 면접을 본 곳 이자 내가 부른 연봉에 가까우면서 Sign on Bonus로 연봉의 약 12%를 주는 현 회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가치는 연봉으로 매겨진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에서 약 1년여 동안 있었고 나는 다시 나의 가치(연봉)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리고 추가된 내 커리어의 방향성까지.

 

원래 면접 결과가 안 좋으면 사람이 한동안 생각이 많고 그렇다. 어제는 결과를 알게 되어서 후련한 마음도 있었고 오히려 이직한다고 말함으로써 생기는 복잡한 모든 일에 대한 고민이 한 순간 사라져 다행이라고 조금은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의 결론은 나라는 사람이 아닌, 만 5년 3개월차 CRA(Clinical Research Associate)로서 나를 팔려면 이런 문구를 써야 할 거 같다. 

 

"가성비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도  보시면 가심비는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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