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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ul 03. 2024

<138호>학생자치(自治) 열기

편집위원 야자수

위기의 학생자치, 무너지는 학생 사회, 무관심한 학내 분위기…


대학 학보사에서, 총학생회 정책토론회에서,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무수히 많이 본 단어다. 그러곤 항상 내는 결론은 ‘학생자치는 중요하다’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학생자치가 정말로 그렇게 중요한가? 절대적 명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정말 본인에게 중요한지 말이다. 어쩌면 해당 문장이 당위적 차원로서만 논의되고, 각자의 자리에서 납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관심해진 것은 아닐까.  


글 <학생자치열기>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글이다. 총 5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기존의 ‘학생자치 위기론’이 학생 사회를 읽어냄에 있어 어떤 한계를 지니는지 짚고, 학생 사회 내부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파트 2는 연세편집위원회 필진들이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학생자치를 하며 느낀 효능감과 절망감을 써 내려간 조각글 모음집이다. 파트 3은 1996년도의 연세대학교 여성자치연합의 발족문과 2001년도 「연세」의 글<타성에 젖은 자치회>를 살펴보며 그 때는 어떤 학생 사회의 위기를 맞이했고,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가고자 했는지 알아본다. 파트 4는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가 대학에서 수업하며 인문사회과학대학생의 글 읽기와 삶 읽기의 행태를 써 내려간 책<탈식민지 시대의 글 읽기와 삶 읽기1(1992)>을 소개하고, ‘자치’가 중요한 이유를 큰 흐름 위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파트 5에서는 너무나 많이 쓰여 무뎌진 단어 ‘자치’를 재정의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기획 <자치>를 위해 138호 편집위원들이 2024년 3월 총 3주에 걸쳐 읽고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 <학생자치 열기>에는 우리가 읽은 책과 글 그리고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모든 말을 그대로 담지 못했지만, 이는 그 말들이 무의미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면에 싣기 위해 필자의 의도대로 편집했음을 밝힌다. 연세지 138호의 시간이 생각의 물꼬를 틀 수 있길 바란다. 궁극적으로는 이 글을 통해 절대적 명제라고 여겨왔던 ‘그 문장’-학생자치는 중요하다-과 독자의 사이를 좁혀보려 한다.


파트1. 학생 사회 외부 구조 때문일까요, 내부 구조 때문일까요

이번 파트에서는 기존의 학생자치 위기론이 제시해온 ‘학생 사회 외부구조’에 기인해 학생 사회에 무관심해지게 된 개인이라는 해석 틀이 현 학생 사회를 읽어내는데 있어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 살펴보고, 현 학생 사회를 읽어내는 또 다른 해석 틀로 ‘학생 사회 내부구조의 한계’에 주목한다.


기존의 학생자치 위기론은 ▲학생회의 부재, ▲학내자치단체의 소멸, ▲개인의 무관심과 학내언론의 위기 정도로만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에 관해 기성 및 대학 언론은 ‘취업난’과 ‘개인주의 문화’라는 학생 사회의 외부 구조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 사회 내부의 구조적 한계는 학생자치 위기론에 기여한 바가 아예 없을까? 이에 <이대 학보>는 학생자치 위기론이 단순히 개인주의문화 때문이 아닌, 학생회의 구조적 한계으로부터 기인했음을 주목했다.[1] 해당 기사는1) 과 학생회와 교무회의의 단발적인 소통 2)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대표 중심의 학생회 3) 결정 권한이 없어 성취감을 얻지 못하는 집행부원을 학생회의 구조적 한계로 꼽았다. 학생회를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학생회를 하면서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면 이대학보에서 전문을 보고 오길. 이에 더해 필자는 학생자치단체의 연결 구조의 부재에 관한 두 가지 사례를 들어 학생 사회 내부의 구조적 한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필자가 몸 담아온 학내언론의 구조에 관한 것이며, 두 번째는 생활협동조합 학생위원회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자치단체가 독립된 개체가 아닌 다른 단체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그 연결이 학생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 언론출판협의회(이하 언협)는 교내 언론 단체들이 모여 결성된 언론 협의체로 연세편집위원회, 상경논총, 연희관 015B, 연세춘추, 연세교육방송국(이하 YBS), 문과대학 교지 문우편집위원회, 연세인터넷라디오방송국(이하 YIRB), The Yonsei Annals로 구성되어 있다. 언협이 언제 결성되었는지는 언협 내부에도 정확한 자료가 없으며, 인터넷 검색 기사로 확인했을 때 가장 오래된 기사가 1997년이었다. 주 사업은 총학생회 정책토론회 주관과 매 학기 언협지 발간이 있다. 이외에도 과거 언협에서는 언론사 입사에 관심있는 학생들을 모아 ‘기자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가장 최근인 2020년에는 연세편집위원회, 연희관 015B, 문우편집위원회, YIRB은 연세대학교 교내 청소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연세대학교 언론모임 ‘아코디언’을 결성해 각자의 교지 발행주기와 상관없이 온라인 발행을 통해 보도했다. 2004년도, 2005년도 언협 의장이었던 김고종호는 하나의 언론사가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홈페이지나 웹진을 만들어도 학생과 학내언론 사이의 소통에 한계를 느끼기 마련이라며, 각 언론단체에서 느끼고 있는 ‘학생들과의 소통에서의 한계’, ‘매체의 정체성 혼란’과 같은 문제를 언협을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등 학내언론 간의 소통을 강조했다.[2] 


어느 순간 이후부터 각 언론단체는 총학생회 정책토론회가 열릴 때만 모일 뿐, 학내여론을 적극적으로 듣고-형성하는 시도는 없어졌다. 필자가 2년간 연세편집위원회 소속으로 언협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바를 서술해 보자면, 현재 언론출판협의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언협지 발간’과 ‘총학생회 정책토론회’는 협업보다는 분업에 가까운 사업들이다. 각 언론 단위는 선본에게 할 질문을 각자 준비해오고, 언협지에 실릴 글은 모두 카카오톡 방에서 서류전송으로만 이뤄진다. 학내언론들끼리 각자의 고민을 나누기 보다는 관례적으로 해온 사업들만 -그것도 비대면으로- 이어 나가고 있다. 더욱이 독자와 시청자를 감각하기 어려운 실정에, 서로가 서로의 독자/시청자가 되어 응원과 비판을 해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물론 필자의 단발적인 경험일 수도 있겠으나, 위 기사에서 김고종호가 말한 것처럼 2005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걸 보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학내언론 간의 연계성의 부족은 2022, 2023년도 총학생회 선거 개표 과정의 우선 보도권에 관한 문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22년도 개표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가 YBS에게만 우선 보도권을 주어 문제를 빚었다.[3] 이후 2023년도 중선관위는 총학 개표 현장에 교내 모든 언론이 참관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리며, YBS에게 카카오톡 메세지로 가장 먼저 개표결과를 전달하기로 했다. 이에 연세춘추는 중선관위가 YBS에게 ‘우선 보도권’을 부여한 것이라며 보도권 침해를 지적한 기사를 냈다.[4] 결국 중선관위는 개표 직전에 학내언론의 참관을 허용했지만서도, 여전히 찝찝함은 남아 있다. 이 문제의 원인은 분명 중선관위의 미흡한 운영과 소통의 부재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선보도권’에 대해 YBS와 연세춘추가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이를 보였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연세춘추> 기사에 따르면, YBS는 “개표 보도 우선권을 보장받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중선관위와 소통했고, 이에 맞춰 생중계를 준비해 왔다”며, 결국 연세춘추와 YBS는 보도 시점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이유와 합의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연세춘추는 중선관위가 YBS에게 우선권을 줬다는 것에 항의하자, 중선관위는 ‘둘이 합의하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고, 이에 YBS와 연세춘추는 동시에 개표 결과 전달받을지 혹은 YBS 개표 방송 1분전 연세춘추에게 개표 결과 전달할지를 두고 끝끝내 합의를 하지 못했다. 후자의 경우, YBS는 보도 영상 제작에 있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일한 사건으로 보자면 중선관위의 미흡한 운영이 문제의 원인일 수 있겠으나, 큰 흐름에서 보자면 학내언론이 동일한 학내 의제를 두고 보도시점에 대해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학내언론의 연계성 부족을 읽어낼 수 있다. 


위 사례를 통해 학내언론 구조가 연결이 아닌 경쟁의 구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내언론에서 중요한 지점은 우선 보도권이 아닌, 서로의 학내 여론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특히 학내로 한정 짓는 이유는 학내언론의 주 목적은 지상파 방송과 달리 시청률과 돈이 아니며, 학생 사회위기라는 국면에서 학내언론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의무는 ‘학생 사회에 최대한 관심 갖게 하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단순히 같은 내용을 두고 누가 먼저 보도하느냐가 아닌,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보도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총학’이란 같은 의제를 두고도 해당 선본의 정치관은 무엇인지 혹은 어떤 소통 전략을 짤 것인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읽어내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각 언론 단체는 서로의 보도 역량과 한계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에 맞춰 각자만의 보도 전략을 짜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언협은 다른 학내언론을 이해할 수 있는 협의체로서 건강한 학내여론을 형성한다기보다는 분업화된 사업만 하고 있다.


두 번째 사례. 2009년, ‘쌩쌩(생협을 생협답게)’이라는 학생자치단체는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결성되었다. 이들의 시작은 단과대 오리엔테이션, 중앙운영위원회, 확대운영위원회같이 학생회 간부들이 앉아 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 생협 세미나를 진행한 것부터였다.[6] 왜 생협이라는 단체가 더 주목받아야 하는지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어 제21대 총여학생회 <일상, 울림>은 임기를 마치며, 후년도 총학과 총여 선본에 공동 공약 제안 공문을 발송하여 학생회 산하에 생협국을 설치하도록 제안했다.[7] 덕분에 후년도에 총학&총여&생활협동조합 학생위원회(이하 생학위)가 연합했고, 생협 조합원 대의원 총회에서 학생의 자리에 ‘공식적인 학생회’ 단위로서 참여하게 되었다.[8]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처음부터 ‘총’ 단위의 학생회가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쌩쌩과 21대 총여학생회는 꾸준히 다른 학생단체에 문을 두드렸고, 때로는 시간을 내어 설명을 해가는 노력을 들이며, 때로는 공문의 형태로 제안서를 내밀어 타 학생단체와 이어지고자 했다.[9] 


하지만 2021년도 생학위는 4명이라는 소규모의 회원과 인준 서류 미비로 인해 확대운영위원회(이하 확운위)에서 정식 인정을 받지 못하고 해임되었다.[10] <연세춘추>의 취재에 따르면, 당시 총학생회장 노은지 씨는 ‘기존에 생협과 학생 사이를 잇던 생학위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생협 학생 대의원이 메우고 있지만, 이 학생들조차 생협에 대한 큰 관심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한계점을 지적했다. 이후에 구성공고를 내었지만, 2022년 3월 확운위에서 추천인이 부족해 특별 자치 기구로 인준되지 못했다.[11] 그리고 현재까지 생학위는 새로 구성되지 않고 있다. 생활협동조합 부서 관계자 A 씨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며 “총학생회에서 기존 생학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생활협동조합의 의의와 역사를 공부하고, 그것을 일련의 활동으로 구현해 나가는 학생 단체가 사라진 것이다. 


학생자치 위기론은 단순히 학외문화구조(개인주의와 취업난) → 학내사안에 무관심해진 개인 → 학생회의 부재와 학생자치단체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학내사회구조의 한계(학생회 구조의 한계, 학생자치단체의 연결 부재)도 존재함을 위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이는 특정 의제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모여 활동하고,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듣고, 설득하고, 부딪히는 공간이 소멸하는 현상이다. 언협과 생학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연결’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협이 겪은 변화와 총학 산하로의 생학위의 업무 흡수는 ‘관성적 연결’로 변했다. 이는 주기적으로 구성원이 바뀌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대학생 개개인 입장에서는 입학하고 문제정의를 새로이 하기보다는 관례적으로 있어왔던 ‘업무’만 (‘선배들이 해온 것이니, 우리도 해야지-’라는 식으로) 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자치’가 어떤 행위가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 무너지는 학생 사회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 자치라는 단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면 추상적 수준에서만 논의되기 쉽다. 그래서인지 필진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도 많은 혼란을 빚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은 학생 사회에서도 유효하다. 이에 본 글은 독자들에게 ‘자치’라는 단어를 폭넓게 생각해 볼 단초들을 파트2, 3에서 던지며 ‘자치’의 개념이 다양하게 쓰이고 있음을 소개한다. 글 마무리에서는 ‘자치’를 재정의함으로써 우리네 학생 사회에서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정확히 바라보고, 그 문제를 풀어갈 우리만의 언어 가져보자고 제안한다.



파트2. 우리들의 自治 조각글

다양한 층위에서 학생 사회에 참여한 사례를 살펴보자. 총선거를 통해 뽑힌 선출직, 학생회 부원으로 일하는 임명직,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닌 학생이 어떻게 학교에 참여하고자 하는지 개인의 경험을 조각글로 담았다. 각 층위에서 마다 주목해야 할 관계가 다르니, 그것에 유의하여 읽길 바란다.  


#선출직(과 학생회장), 학생회-‘일반학우’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약돌 씀

2022년, 난 2학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아카라카, 연고전 등 연세인의 꽃이라 하는 것들은 기존보다 한 달가량이 밀렸는데, 늦게 피어도 꽃은 꽃이라 모두가 열광했다. 이때 난 인생에서 그만한 수의 인파가 뒤얽힌 광경을 처음 보았다. 당시 학우들은 2년의 단절에 지쳐 체념한 사람과 쌓여있던 흥분이 폭발한 사람으로 나뉘었다. 모두가 어떤 방향으로든 극에 달해있던 혼란의 시기였다.

현재 학생들은 새로운 자극보다 재수강권 횟수 같은 일상의 개선을 갈망하는 것 같다. 반면, 당시 우리는 새로운 자극에 혈안이었다. 일상의 불편함을 찾아 건의하기에는 비일상이 일상이었던 모순으로 대학생활을 보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서로 연결되지 못하면, 학생회는 안정만 추구하다 독재할 수 있다. 그냥 내가 캠퍼스에 발 디딘 지 얼마 안 된, 사실상 새내기라 유의미한 문제를 제기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학우들과 연결하고자, 카카오톡 오픈 톡방으로 ‘소통창구’를 만들었고 역대 회장에게 개인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임기 동안 소통창구로부터는 단 한 건의 건의도 들어오지 않았다. 매 행사의 기획, 인솔, 뒤풀이 등에 대한 피드백 구글폼도 아카라카 뒤풀이 피드백으로 얻은 5건의 응답 수가 가장 많이 받은 날이었다.

학생회가 단지 ’문화기획단‘이 되었다는 비판을 읽었다. 이런 무관심과 절망적인 참여율을 보여주는 학우들에게 학생회의 존재를 일깨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학우들의 무관심은 학생회가 이벤트, 행사 기획 같은 다소 오락적인 방식에 집착하게 했다. 큰 행사에서는 에브리타임의 비난과 다르게 ‘모두가 노는 행사 자리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학생회’라며 격려를 받았다. 회의감을 느꼈다.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그만한 목소리가 모여야 가능하고, 그 목소리는 내가 대표하는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여야 한다. 에브리타임의 신분, 소속, 학번 등 모든 게 불분명한 이들의 불만을 무슨 근거로 우리 학과 여론이라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불만은 왜 ‘게시’에서 ‘제기’까지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타성(他性)에 젖지 말라’니. ‘타성(他聲)‘이 들리지 않는다. 


#임명직(학생회 부원), 학생회 내부의 관계를 중심으로, 시후 씀

선출직은 지위만으로도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어디에 가서 ‘과대’ 혹은 ‘학생회장’ 등으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명직은 선출직 아래에 있는 자리로, ‘과 학생회 내 총무부’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기 어렵다. 즉 소속감을 제외하고는 지위를 통해 효능감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대신, 나는 ‘주체적인 기여’를 할 때에만 뿌듯함을 얻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효능감을 많이 느꼈다. 코로나19로 인해 드라마틱한 활동을 하지는 못했음에도 쉬는 시간에 계속 안건들을 논의했다. 그중 학생회 조직을 개편했을 때의 성취감을 잊을 수 없다. 우리 학교는 여타의 선출직은 간선제로, 1학년장만 입학 성적으로 선출했고 학생회 부서도 10개가 안 되었다. 임기 후반에 ‘1학년 장의 간선제 선출’과 ‘학생회 부서 14개로의 증편’을 추진하였고, 학생부장 선생님을 설득한 끝에 성공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학생이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자치에 한 발짝 다가갔던 소중한 경험이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대학교 과 학생회에 참여했으나 나에게는 이것이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기대와는 달리 시키는 일만을 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1학기 때는 학과 행사에서 사람들이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즐겨줄 때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2학기는 아니었다. 학과 행사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던 행사도 나의 주체성 없이 진행되어 그 어떠한 효능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는 내게 학생회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큰 좌절감을 준 경험이자 주체적이지 않은 것이 자치가 아님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선출/임명X (‘일반 학우’), 학생-학교 관계를 중심으로, 야자수 씀

고등학생 때는 지역 내 마을교육공동체이자 청소년 자치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효능감, 즉 내가 무언가를 하면 바뀐다는 감각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지역청소년센터’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민관학(지역주민, 지자체, 학교를 3주체로 둔다)의 협력으로 만들었기에 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 어른들도 길잡기 교사가 되어 활동한다는 점에서 ‘마을’의 형태를 띈다. 복잡한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그곳에서는 ‘하고 싶은 것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자’라는 교훈 아래 관내 청소년들은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했다. 옥상 영화제 열기, 북토크 기획하기, 아두이노로 뭐뭐 만들기, 등등.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학내 대소사에 무관심한 분위기 속 자치의 어려움을 느꼈다. 기숙사 내 식사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 ‘무악소셜주방’을 기획-홍보-진행하는 과정에서 ‘일개 학생’의 자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행정팀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진을 빼야 했다. 포스터를 붙이는 과정뿐만 아니라, 개인의 식재료/도구를 두면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경고를 받았고, 항상 힘들게 이고 다녀야 했다. ‘아 이곳은 대학이다…’라고 체념을 하면서도, ‘사립대학도 역시 학교가 아닌가? 학교 규칙을 학생들과 협의할 수 있는 여지는 하나도 없는가?’ 라는 질문이 들었다. 이후 무악학사 사생회가 14년도 이후부터 사라진 역사를 알게 되었고, 기숙사 내 소구점을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구조에 대해 갈증을 느꼈다.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닌 나는 거대한 대의로부터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내가 4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재미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음악동아리-글쓰기-말고도 더 다양한 형태로 말이다. ‘일개 학생들’이 모이는 소구점을 만들기 편하게 하는 ‘정치’의 과정이 꼭 필요함을 느꼈다.


파트3. 과거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몸부림 들여다보기

요즘에만 학생 사회가 유별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96년과 2001년의 연세대학교에도 무너지는 학생 사회와 자치에 대한 갈증이 존재했다. 언제부터 ‘학생회’와 ‘일반 학우’는 분리되어 존재했는지, 학생회는 왜 ‘학우들의 의견 대변’이 아닌 ‘문화기획단’으로서만 인식되는 것인지, 우리 대학교 선배들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번 파트에서는 과거의 글을 소개하며, 그 시절 대학생들이 던진 질문이 현재 우리와 어떤 지점에서 공명하는지 알아본다.


#이제는 우리가 나설 때이다, 총여의 한계를 넘어 자치질서로!, 일상자치저항문화 기획단, 1996. <이것은 선거정책자료집이 아닙니다: 너의 일상에 침을 뱉어라>, 양성평등 아카이브 여기모아[13](바로가기)

이 글은 이전(제9대)까지의 총여학생회라는 학생대표기구가 갖는 한계점에 대해 설명하고, 대의제가 아닌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단체의 발족을 알린다. 학내 여성의제에 관련해 활동하는 자치단체(학회, 동아리, 교지 등)을 조직화하여 ‘여성자치연합’을 만들었다. 기존의 학생대표기구는 ‘선거로 뽑힌 정부가 행정부 장관을 임명하여 구성하는 조직도’라면, 여성자치연합은 ‘학내 곳곳에 있는 거미줄들을 연결한 큰 덫’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시대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1996년 제10대 총여학생회 선거가 단일후보의 선본 자격 박탈로 인해 무산이 된다. 그 빈 자리를 메꾸고자, 학내 여성 의제를 다루는 소모임 (성정치위원회, 법대 여학생회, 법대 성연구모임, 사회대-이과대-공대의 여성학 모임 등)이 모여 <여성자치연합 10대 총여학생회 건설 준비위원회(여성자치연합)>을 설립했다. 비유해 보자면, “이제 비대위인데… 정치구조개혁을 곁들인”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듬해 선출된 제10대 총여학생회는 여성자치연합의 영향을 받아, 대의 민주주의 허상을 비판하고 자치질서 활성화를 목표로 학내 여성자치단체 간의 연대와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예산 자치제와 총여학생회실 공간 개방과 같은 정책을 실시했다. 

“왜 학우들의 권력이라는 것은 대의제를 통한 학생회라는 상위 기구로만 구현되는가? 우리는 권력을 다시 정의하는 데에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위에서 아래로만 향한 것은 아닐 것이다. (...) 현재의 권력 구조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 구조이며, 이렇게 하향식의 구조 속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억압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새로운 권력 구조의 창출이란, 이러한 구도를 뛰어넘어, 새로운 형태의 ‘권력(자발적인 권력, 타인을 배제하고 억압하지 않을 권력)’을 사고해야 한다. 일상적인 학교생활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부족함을 실제로 느끼고 있는 당사자가 나가서 싸울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야 한다(46쪽)”

2024년에는 상상도 못 할 급진적인 글이다!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총여학생회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학생 사회 대표 기구로 선출된 학생대표기구가 충분히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가? 계속되는 비대위 구성과 아슬아슬한 투표율, 그리고 뽑힌다고 한들 학생대표기구를 일상에서 감각하는 학생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비일상 속에서만 감각하게 돼버린 것은 아닐까. 학생회는 학생들을 대표한다는 명목하에 종종 ‘희생하는 일꾼’으로 여겨진다-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희생’이 아닐 수 없는 방법은 없는지 묻고 싶다. 과거 여성자치연합이 주장한 것처럼 ‘대의제’에 너무 기댄 나머지, 정작 많은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 채로 누군가 설정해 준 의제에 따라 학교생활을 보내는 건 아닐까.


# <타성에 젖은 자치회 구하기>, 송환석,  2001, 「연세」 56호 

타성. 오랫동안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지 않아 나태하게 굳어진 습성. 글쓴이는 무악학사에 살면서 많은 지점에서 따분함을 느낀다. 식당 밥은 맛없지만, 불평만 있을 뿐 그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모이지 못한다. 기숙사 내 소모임을 갖고 싶어도 제대로 된 소모임도 없다. 필자는 이런 불만에서 시작해, 사생 자치회가 어떤 지점에서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있는지 톺아본다.


기숙사 내부의 변화가 있을 때, 그 공간을 주로 사용하는 사생들의 여론 수렴 과정은 부재했다. 예컨대, 갑작스러운 밥값 인상에 사생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거나, 방학 동안 기숙사 이곳저곳에 내부 공사가 이뤄져 사생들의 사용 공간이 줄었다고 한다. 이에 관해 당시 사생 자치회장은 생활관 측에 강력하게 따졌지만, 생활관 행정실 측에서는 실제 이용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묵살했다고 한다. 동시에 자치회장은 본인이 정말 사생들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며 사생들의 무관심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생 자치회는 총학, 총여, 각 단대 학생회, 동아리 연합회 등과 같이 학생회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무악학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만, 당시 자치회장 마저 자치회를 ‘사생들 가운데에 있는 봉사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생 대상으로 자치회를 어떤 성격의 단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1위:오픈 하우스, 영화 상영 등 기숙사의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문화기획단(48%)

2위:사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학생회 (25%)

3위: 기숙사의 잡일들을 해주는 ‘학생 봉사 단체’(9%)


이런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총학생회 대표사업이 연고전일 수 없듯이 자치회의 대표사업이 오픈 하우스여서는 곤란하다”고 저자는 비판했다.


자치회와 사생들 간의 의사소통이 부족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생들조차 자신들의 무관심함을 인정했고(47%) 기숙사 구조상 자치회와 사생들이 대화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거나(26%) 자치회의 노력이 부족하다(27%)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자치회가 먼저 나서서 의사소통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사생회와 사생들 간의 의사소통 개선을 위해 1) 화장실 신문을 통한 사업설명과 피드백 창구 개설 2) 기숙사 내 소모임 활성화와 사생회의 지원 등을 제안했다. 기숙사 내 작은 구심점을 만들어야 사생회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사례로, 일전에 1학사 화이트보드를 통해 자율적으로 축구 소모임이 만들어졌는데, 이에 대해 사생회는 그 소모임에 먼저 다가가 지원해 줌으로써 사생회 존재의의에 대한 실제 사례를 만들어야 했다며 비판했다. 아마 그대로 방치했던 것 같다.


자치회장은 사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사생들 또한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 같다. 설령 내었더라도, 아마 웅얼거림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런 악순환은 2024년 지금도 유효하다. 학생 사회를 위해 팔 걷고 나선 대표자는 학생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 관례 행사만 해오는 것에 그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실의를 느끼곤 한다. 혹은 몇몇 대표자는 자신이 직접 의제를 설정해 공약으로 내놓기도 한다. 아예 멈춰 있는 학생 사회에서는 유의미한 시도일 수 있겠으나, 여기서 그치면 분명 ‘독재’가 될 것이다. 글의 제목대로 ‘타성에 젖은’ 학생회를 구하려면, 분명 학생들 본인도 타성에 젖으면 안 된다. 웅얼거림이 아닌 소리를 내어야 한다. 소리가 있어야 한다. 


파트4. 겉돌지 않고, 헛돌지 않는 治[14]

앞서 2024년 현재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자치 경험과 1996년도와 2001년도 기존 총여학생회와 사생 자치회의 한계를 통해 학생 사회의 위기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그들이 제안하는 ‘자치’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그렇다면 아직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남아있다. 그래서 자치를 하면 뭐가 좋을까? 학생자치가 정말 자신에게 중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 138호 연세편집위원회 편집위원들은 조한혜정의 「탈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1(1992)」를 발췌해 읽었다. 책의 구조가 특이한데, 저자는 그 당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수업 <문화이론>을 하고 있었고, 책에는 수업 내용과 학생들의 쪽글 내용, 수업에서 이뤄진 토론을 담고 있다. 저자가 이런 책의 구조(혹은 수업방식)를 선택한 이유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사회에 필요한 예비 지식인을 교육해내는 장소로 여겨지지만, 실은 많은 대학생들이 식민지성에 갇혀 텍스트를 읽어내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또한, 제목에는 책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데, 우선 “탈식민지 시대”에서 말하는 식민지란, 일제강점기와 같은 특정 시기가 아닌 대한민국 근대화 과정에서 지식인이 ‘명제적 지식에 중독’되어 ‘지식과 삶이 겉도는 현상’를 뜻하며, “지식인”이란 주로 인문사회과학대학생들을 지칭한다. 저자는 탈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들이 될 인문사회과학대학생들이 유명한 이론가들의 텍스트를 저자성/역사성/당파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글 읽기”를 하고, 자신의 위치성을 성찰하는 “삶 읽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비판적으로 사회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의 수업 철칙은 ‘우리’에 관한 글 중심으로 교재 삼을 것, 그리고 학생들은 매주 읽은 것을 자기 생각과 자기 말로 풀어내야 할 것이다. 책에 실제 강의계획서를 첨부했는데, 주로 수업에서는 서양학자들이 그들의 역사적 맥락에서 만들어낸 이론이 아닌, 우리말로 쓰인 소설 혹은 고전동화를 새로 써낸 글 등을 읽는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텍스트란 ‘보편적 진리’를 담은 것이 아닌 늘 역사성이 담기고, 저자에 따라 고쳐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수업 초반에 쪽글을 쓸 때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어색해하지만, 어느새 곧잘 개인적인 감상과 경험, 가족사, 어떤 식으로 책을 읽어왔는지 등을 자세히 써 내려간다. 궁극적으로, 이 수업과 책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를 풀어갈 언어를 갖고,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글 읽기와 삶 읽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네 학생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라고 생하니, ‘학생 사회 위기론’이 일정 부분 이해가 갔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수업을 듣고 과제 하는 것 이외에도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동아리에 들고, 관심 있는 분야의 의제를 공부하고 활동하기 위해 어떤 단체에 들어가고 등등의 대학 생활을 일궈 나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단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지 새로이 정의하고, 관련된 학생자치단체와 ‘친구’가 되어 함께 토론하고 해결해보려는 시도까지 이어 나가지 못한다. 언제 그리고 왜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업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묵묵히 해나간다. 혹은 당장 내 눈앞에 없는 자치단체라면 과거의 자치단체가 무슨 사업을 했는지도 모른 채,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지낸다. 무비판적으로 서양 이론 텍스트를 읽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겉돌고, 헛돌게 되는 것이다. 


파트5. 자치와 효능감

이상 138호 특집 기획을 준비하기 위해 학생회관 311호 편집실에서 편집위원들과 같이 읽은 책과 글들이다. 세미나를 진행하며 필자가 ‘자치예찬론’을 펼치자, 어떤 편집위원은 우스갯소리로 자치 질서가 “아나키즘 아니냐”고 했다. 실제로 겪어 보지 않아 어떤 그림일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익숙한 지금의 정치 구조체에서 벗어나 또 다른 정치 구조체를 상상하는 일은 무질서와 혼돈에 가깝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치’를 실현하는 것, 학생 사회 내 소구점을 많이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소구점을 연결하는 것은 ‘무너지는 학생 사회’라는 무수한 언설 속에서 기꺼이 해볼 수 있는 몸부림이 아닐까.

 

다시 제목<학생자치 열기>로 돌아와, ‘자치’란 무엇일까? 자치가 뭐길래, 학생자치가 망했다는 걸까.  사실 보통 글을 쓸 때는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 정의를 서론에 밝히고 들어가야 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먼저 정의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앞서 밝혔듯 ‘자치’라는 단어가 애초에 여러 층위에서 추상적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트 1>에서는, 그런 혼란 속에서 기존의 ‘학생자치 위기론’라는 틀은 학생 사회를 읽어내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짚었다. 그 틀이 제시하는 문제(학생회의 부재, 학생자치단체의 소멸, 개인의 무관심과 학내언론의 위기)와 원인(취업난과 개인주의)은 학생들에게 자치가 중요한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이는 자치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치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자치’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학생자치단체’라고 분류되는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자치’가 뭔지도 모른 채 관성적으로 하는 업무만 한다. 이는 남이 정해준 의제, 나의 문제의식이 없는 채로 진행되는 학생회 업무를 해온 편집위원들의 자치 조각글과 ‘타성에 젖어’ 관례 사업만 하는 언협과 기숙사 자치회의 문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는 새로이 문제 정의를 하지 않고 ‘자치’하지 않는 학생 사회는 훌륭한 ‘관료인’을 길러내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자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정의도 되지 않은 말에 기대어 현상을 해석하고 학생들을 설득하려 하니 계속 헛돌고 겉도는 것이다. 때문에 기존의 ‘학생자치 위기론’이라는 언설을 해체하고, 자치를 재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더 뾰족한 언어를 갖고 정확한 곳을 찔러야 한다. 이런 과정은 <파트4>에서 조한혜정이 주장했듯, 탈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응당 자신의 위치성을 성찰하고, 텍스트의 역사성을 인지한 채로 주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자치를 검색해 보자. 한자로는 스스로 자(自) 다스릴 치(治)이니, ‘자신에 관한 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다스리는 것’으로 정의하면 되나? 그럼 자기주도적으로 학업 활동하는 것과는 무엇이 다른가. 학생자치활동, 자치단체, 자치공간 등 많은 단어로 미뤄보아 학생들이 하는 활동을 ‘자치’라고 하면 되는 건가? 그렇다면 학생들이 자치공간에 들어가지 않고, 학생회에 속하지 않을 때는?


이 글에서의 ‘자치’는 공동체의 범위에서만 적용되는 단어로, 개인 삶의 태도로서 발현되는 ‘자기주도’와 다른 선상에 놓여 있음을 밝힌다. 즉,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자치를 하는 것은 아니며, 자치를 안 한다고 해서 개인의 삶이 실패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자치를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로 층위를 나눴다. 좁은 의미의 자치는 총선거로 뽑히는 것이 아닌 같은 의제를 두고 모인 학생 단체를 뜻한다. 대립항으로 대의제가 있다. 좁은 의미의 자치와 대의제의 원활한 구조는 넓은 의미의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또한, 필자는 넓은 의미의 자치를 1)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생활권역이 어디인지 인지하며 2)그 곳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 알고 3)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에 비롯해 참여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지금 당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당신의 준거집단은 학과가 될 수도, 단과대가 될 수도, 학과 단위로는 포섭할 수 없는 학내외 의제가 될 수도 있다. 그다음. 당신이 속한 집단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고, 그곳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가? 여기서 메커니즘이란 그 문제와 관련된 이해관계자가 누구이고, 그들과 자신이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총학생회 안건 상정 구조나 학생회와 학교가 협의하는 과정 인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최소한 학교에 어떤 요구를 하고싶을 때 어느 부서에 전화해야 하는지 아는 정도. 그리고 그 곳의 메커니즘을 이해했다면, 당신이 기꺼이 끼어들 자리를 찾는 거다. 학생회와 같은 대의제 기구뿐만 아니라 좁은 의미의 자치단체 등에 참여해 다양한 전략 세워나가자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도, 때로는 나와는 달리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설득해야 할 수도 있다. 누구를 만나든 많이 만나고-듣고-말하는 아주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자치 길잡이를 필자의 경험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앞서 계속 언급한 문제의식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필자는 스스로를 ‘학내언론인’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학내언론이 다양한 학내의제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런 거창한 문제의식을 갖고 들어왔다기보다는 학생회관 311호에 발붙이고 살아가다 보니 학내언론 구조에 대한 문제가 눈앞에 보인 케이스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언협이라는 학생자치단체를 내가 정의한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메커니즘 중 기꺼이 끼어들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필자의 경험에 불과하다.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자치해 나갈 수 있을 것!


왜 학생자치 -좁은 의미에서든, 넓은 의미에서든-가 중요한지에 대해 138호 편집위원들은 효능감에 주목했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학생회장을 했던 한 편집위원은 자치와 효능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나눠주었다. 본인 말로는 자기가 교실에서 학생회 서류작업으로 골머리를 싸고 있을 때, 창밖에서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며⋯

“자치 활동이라는 게 축구를 하는 것처럼 내가 살아가며 하는 것들 중 그냥 하나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했죠. 모든 거에 굳이 의미를 하나하나 부여하며 활동하는 건 아니니까. 그게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경험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축구가 왜 소중할까 생각해 봤을 때, 골 넣었고, 패스 성공했고, 그래서 점심시간에 축구 하는 습관이 생기고, 우승하지 않았지만 내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것에 효능감을 얻지 않나.”

이 말을 들은 다른 편집위원들은 박수를 치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효능감은 희대의 역작을 기획하고 실현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보다는 일상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일궈냈다는 경험을 꾸준히 축적해 나가는 것에 가깝다.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 글은 기존의 ‘학생자치 위기론’이 담아내지 못하는 학생자치를 포착했고, 재정의했다. 그리고 학생 사회의 위기는 단순히 학생회의 부재만이 아닌, 전반적으로 ‘자치’하지 못하는 상황을 제시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답답한 학생회장단, 관성적으로 해왔던 업무만 하는 학생자치단체와 그 속에서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원, 학생회가 자신을 대표한다고 느끼지 않는 학우들. 학교에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혹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보내는 대학생활. 어찌 보면 대학을 4년~6년이라는 ‘짧은’ 텀 동안 다니는 공간이자 떠나야 할 장소로 인식하기 때문에 治에 무관심해진 걸 수 있다. 대학생활에서의 자치는 졸업하고 나면 유야무야해지기 쉬운 성질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안 두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캠퍼스 밖을 넘어가는 순간 더더욱 ‘정치’와 ‘일반인’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개입해야 할지 막막할 거다. 오히려 대학이라는 장소는 육안으로 담기는 ‘사회’기 때문에 자치와 효능감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각주

[1] 이대학보, “할 수 있는 것도 적은데 하는 일도 힘들다, 학생자치는 비상사태” , 2022.05.30. 

[2] 연세춘추, “[인터뷰] 함께하는 고민이 해결의 첫걸음” , 2006.05.08.

[3] 연세춘추, “선거 관리 미흡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2.11.28.

[4] 연세춘추, “개표를 앞두고 보도권 침해의 소지 보인 중선관위”, 2023.12.04. .

[6] 연세춘추, “‘생협을 생협답게 만들기’ 활동 재개해”, 2009.03.14

[7]  21대 총여학생회<일상, 울림>, 2009, “제47대 및 제22대 총여학생회 선거운동본부에 공동공약을 제안합니다”.

[8] 연세춘추, “조합원 참여 확대방안 논의된 2010년 대의원총회”, 2010.05.01.

[9]  해당 문단은 2024년도 4회 인권축제 온라인 전시에서 필자 쓴 글<생협을 생협답게!>을 재가공했다. 

[10] 연세춘추, “코로나 19 못 버틴 생학위… 결국 활동 중단” , 2021.10.03.

[11] 연세춘추, “드디어 개회한 대면 확운위, 어떤 내용 오갔나” 2022.03.20.

[13] 해당 글은 2024년도 4회 인권축제 온라인 전시에서 필자 쓴 글<대의제 아닌 자치질서로서의 학생 사회 상상하기>을 재가공했다. 

[14] 책의 첫 문장인 “이 책은 겉도는 글, 헛도는 삶에 관한 책이다”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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