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좋아하는 개그맨 중에 이상준이 있습니다. 사망토론을 지금도 가끔 재미있는 편을 보고 있고, 현재 하고 있는 유튜브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상준 씨가 얘기하기를 지금 사회 분위기에서 사망토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너무 많은 사항을 고려해서 개그를 짜야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불편하다"는 말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장애인이나 몸이 아픈 사람에게 쓰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쓰이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요즘 쓰이는 "불편하다" 앞에는 아마도 "마음이"가 생략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기분 나쁘다"와 비슷한 말인 것 같은데 미묘하게 의미가 달라 보입니다. "기분 나쁘다"는 개인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불편하다"는 무언가 상대방에 수정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콘텐츠에 "불편하다"는 댓글이 달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고,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런 걸 유식하게 포스트 모더니즘 사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은 보장되어야 하는 표현의 자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출로 인해 콘텐츠를 만들기 힘들 정도라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개그맨의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는 느낌입니다.
사실 이상준이 쓰레기 남자 역할을 맡은 사망토론이나 여자의 이상한 점을 얘기한 오지라퍼에서 한 개그에서 저는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개그 자체는 서로 역할을 맡기로 약속을 했고, 그런 식으로 웃음을 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객에게 외모 비하성 발언을 해서 웃기는 것 역시 관객과 약속이 되어있는 상황입니다. 서로 약속하고 즐기는 판에서 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고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좀 과해 보입니다. 몇몇 프로 불편러 때문에 다수의 즐거움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웬만한 금기를 건드리지 않는 한 개그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틀 밖에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욕을 먹어야겠지만 약속하고 웃기로 한 판 속에서의 언행으로 비난을 하는 것은 개그의 발전을 크게 위축시킨다는 생각입니다. 개그뿐만이 아니라, 대중음악, 문학같이,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모든 것은 사실 자본과 자유가 주어져야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불편함을 표출하고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얘기할 때 사실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앞에는 "강자에 대한"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약자에 대한 자유는 이미 보장되어 있죠. 우리에게 보장되어야 할 표현에 자유는 "내 직작 상사에게", "권력자에게", "주류 학계에" 대한 표현의 자유입니다. 정작 진짜 의미의 표현의 자유는 외면하는 것 같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반대의 말을 하면 찍히기 일쑤고, 권력자에게 함부로 했다가 큰 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주류 학계에서 조금 튀면 매장당할 수도 있죠. 이러한 부자유를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본인보다 약한 사람에게 표현의 자유를 남용하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개그맨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사람들입니다. 대중들이 많이 웃기를 바랄 뿐, 굳이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만약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개그맨이 있으면 굳이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아도 금방 그 개그맨은 인기가 떨어져 방송에서 보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없고 우리의 행동에 피해만 입을 수 있는 약자에게만 화풀이를 하고, 정작 강자에게는 어떠한 불편함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개그맨들을 존경하고 좋아했습니다. 남을 웃기는 것은 정말 어려움에도 엄청난 노력과 재능으로 어떤 상황에도 웃기려고 하는 그들의 정신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몇몇 스타 개그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렵게 살고 있음에도 웃음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다고 웃기지 않은 개그맨에게 억지로 웃어줄 이유는 없지만, 개그는 개그일 뿐이니 조금 너그러워져서 그들이 더 빵빵 터지는 개그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