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노래방에 가면 일단 시작부터 읊조려야 한다는 JYP는 셀 수 없는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이자, 한국 3대 기획사 중 하나에 대표 PD이면서, 수많은 히트곡을 본인이 부른 가수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부터 지켜본 제가 보기에 이분은 가수를 하기에는 시대를 잘 만났고, 프로듀서로서는 시대를 잘못 만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TV 예능 프로에 처음 보는 개그맨이 출연을 했습니다. 나름 말도 웃기게 하고 흔히 말하는 개그맨 시험 들어가자마자 붙을 것 같은 외모를 하고 있던 그 연예인은 신인임에도 위축 없이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개그맨에게 노래를 시키는 겁니다. 게다가 남의 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본인 곡을 충격적인 안무와 함께 시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가수였고, 그때 처음 들어봤던 그 곡이 JYP의 데뷔곡 "날 떠나지 마"였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사실 아무 정보 없는 상태에서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해진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배우는 선 굵은 스탠더드 한 잘생긴 사람들만이 존재했었고, 가수 역시 뛰어난 가창력만을 1순위로 뽑던 시대에서 막 개성파 배우가 등장하고 노래를 못해도 얼굴이나 춤으로 뜨는 가수들이 생길 때였습니다. 물론 시대를 앞서간 JYP는 그 당시 개그맨이 아니라면 연예인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얼굴로 데뷔를 하고, 심지어 공전의 히트를 치기까지 했습니다.
가수로서는 엉덩이를 보며 어머니 안부를 묻고, 가수가 아니고 이제 배우라고 하더니, 또 선미한테 같이 하자고 치근덕거리며 디스코를 추는 특이한 아저씨의 이미지이지만, 과거 진짜 가수만 했을 때에는 거의 내는 곡마다 히트를 치는 대단한 가수였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부터도 특이하고 파격적이었네요. 비닐바지는 이미 수십 년째 회자되고 있고, '엘리베이터'는 한창 청소년기에 있던 저에게 야릇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섹스는 게임이라고 해서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너의 뒤어서'나 '영원히 둘이서'는 발라드를 좋아하는 제가 명곡으로 뽑는 좋은 곡이었습니다. 기획력과 작곡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이후 PD를 하면서 충분히 증명됐지만, 시대가 그 외모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그렇게 성공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기 때문에 가수로서는 시대를 잘 만났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틀즈가 영국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미국에 진출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실제로 비틀즈 멤버들은 미국에서 과연 자신들이 먹힐지 상당히 우려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많은 팬들이 그들을 반겼고, 그야말로 대성공을 하게 됩니다.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라고 불리는 영국 밴드의 미국 진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신반의하던 비틀즈의 미국 진출이 성공하자 이후에 수많은 영국 밴드들이 미국에 진출하게 되고, 또 진출만 하면 뜬다고 말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둡니다. 모범생 이미지의 비틀즈와 차별화하며 깡패 이미지를 부각한 롤링 스톤즈부터, 더 거친 더 후, 애니멀스 등이 연달아 히트를 쳤고, 이후에도 브릿팝이라는 장르가 생길 정도로 많은 영국 밴드의 진출이 있었습니다. 일단 처음 문을 여는 것이 어렵고 망설여졌지만, 스타일이 한번 먹히자 놀랄 정도로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JYP의 미국 진출을 원더걸스부터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본인이 처음 시도하였습니다. 당시 미국 진출을 위해 영어 앨범을 만들었고, 심지어 저는 그 카세트테이프를 사기까지 했네요. 자신의 곡을 영어로 번역한 곡과, 기존 팝송을 섞어서 낸 앨범으로 노래가 좋았지만 자신도 인정할 정도로 처참하게 실패하였습니다. 아마 이때 JYP는 미국의 거대한 음악 시스템을 알고 학습과 전략 없이 음악만으로 도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이후 치밀한 준비를 하고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던 원더걸스를 통해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이루려 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금융위기가 와서 모든 일이 무산되어 버렸습니다. 금융위기가 오지 않았어도 준비하던 3명의 가수들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진 것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사실 그때 JYP의 미국병에 대한 비난은 상당했었고, 도전하는 사람이 실패했다는 이유로 너무 큰 비난을 받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후 싸이가 미국에 강제 진출했을 때도, BTS가 빌보드 1위를 했을 때도 JYP는 미국 진출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BTS의 빌보드 1위는 대단한 일이며, 특히 K-POP이라는 장르 자체가 인정받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고, 이런 추세가 브리티시 인베이젼과 같이 계속 가수들의 진출의 물꼬가 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감히 BTS가 비틀즈와 비견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을 것 같습니다. 비틀즈는 팝 음악 역사상 No.1을 차지할 정도의 파급력과 기록을 가지고 있으니, 객관적으로는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새로운 진출이 어렵게 시스템이 갖추어진 미국 시장에 영국인도 아닌 동양인으로서 새로운 K-POP 장르로 진출에 성공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고, 음악 시장에 새로운 침공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틀즈 이후 수많은 영국 밴드들이 진출하여 성공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많은 그룹들도 힘을 받아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일이 있다면 JYP가 선봉에 있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조용히 하던 일을 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사실 저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토록 많은 시도 끝에 운이 없었다고는 해도 결국 실패를 하였고, 다시 시도를 했다가 실패를 할 경우의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게다가 이미 진출에 성공한, 자신과 같이 생활을 하며 양말 가지고 다투던 후배가 낸 그룹이 최고가 된 상황에서 실패를 하면 더 큰 비난과 조롱이 있을 것이니까요. 물론 JYP는 저와 다르고,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진출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까지는 조용한 상태입니다. 때문에 PD로 엄청나게 성공한 JYP지만, 그 엄청난 재능을 하필 시점을 잘못 맞춰 시도하다 실패하여 덜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음악 비즈니스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미국의 음악 산업 트렌드도 JYP가 미국 진출을 할 때와는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앨범 판매 기준에서 스트리밍으로 시대가 옮겨졌고, 카리스마 있는 슈퍼 스타의 시대에서 팬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스타가 만들어지는 시대가 되었으며, 순회공연을 하던 시대에서 인터넷과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히트를 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언제나 파격적이었던, 요즘 말로 어그로를 잘 끄는 JYP는 이 시대에 어찌 보면 미국 진출에 가장 잘 맞는 프로듀서와 가수라고 생각하는데 과거의 실패가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이미 그도 나이가 많이 들었고, 잘 구축해 놓은 회사 시스템 속에 매물 되어 버렸을 수도 있겠네요. JYP가 다시 한번 파격적인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고, 혹시 그가 새로운 시도를 하다 실패하더라도 여전히 응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꿈을 향해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께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