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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일상으로의 초대

by 평범한 직장인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요즘 금지곡이라고 하면 링딩동 같은 수능 금지곡이 떠오르지만,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실제로 어이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많은 곡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오래전 에피소드 같지만, 사전 심의 제도가 위헌 결정으로 철폐가 된 것은 1996년의 일이었습니다.


금지곡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영화계 역시 제4차 영화법 개정을 통해 자유를 억압받았습니다. 소위 유신 영화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으로 인해 검열은 물론이고, 국책영화를 제작하게 하여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데에 사용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서편제로 유명한 임권택 감독도 과거 영화에 맥락 없이 무장공비가 등장하는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넣는 등, 지금 보면 웃음거리 같은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너무 옛날 일이라 실감이 안 날 수도 있지만, 실제로 90년대 음악 방송에서 가수들에게 귀걸이, 염색, 배꼽티 등을 금지하기도 했으며, 남자가 치마를 입었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를 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등 비교적 최근까지도 많은 검열이 존재했습니다. 또한 연예인 블랙리스트라는 시대착오적인 사건도 있었죠.




이러한 검열은 문화를 위축시키고 발달하지 못하게 하기도 하지만, 자유를 억압받는 느낌에서 저항감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검열과 싸우면서 점점 없애왔고, 그 결과로 지금 한참 꽃을 피우고 있는 대중문화가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검열에 순응해서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 BTS도 탄생하기 어려웠겠죠. 그런데 드디어 자유가 찾아오니 아주 신기한 현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최근 기안84 논란이 뜨겁습니다. 많은 기사에서 다루듯 기안84 만화 복학왕에서 여주인공이 인턴을 하면서 남성 상사와 연애를 해서 입사에 성공했다는 식의 여성 혐오를 조장했다고 소위 난리가 난 것 같습니다. 이 사례뿐만이 아니라 특정 작품에 대한 거슬리는 코드를 공격하는 현상이 많이 벌어지는 걸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자유를 찾아오니, 이제 다양한 집단에서 다양한 이유로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냉전이 종식되고 소위 데탕트(국제 간의 긴장이 완화되어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태) 분위기가 시작될 줄 알았지만, 양대 축의 갈등이 없어진 후 각 국의 군비는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적, 인종적, 지역적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런 점을 이용하여 통치 국가 국민의 관심을 종교적, 이념적 갈등으로 돌려서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없애는 데 사용하였죠.




저는 기안84가 패션왕을 그릴 때 즐겨보다가, 만화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변신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이후 좀 재미가 떨어지는 느낌이라 잘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복학왕도 초반에 조금 봤었는데 누군가는 조금 불편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만화입니다. 기안84가 나 혼자 산다에 나와서 여성 비하를 했다면 당연히 큰 문제가 되겠지만, 드라마에 나와서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지"라는 말을 한다고 문제를 삼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고 짜증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배우를 매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기안84의 작품을 보고 쓰레기라고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 특정 장면이 불편할 수도 있고, 그래서 그를 싫어하고 작품을 보지 않는 것은 자유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그는 도태될 것이며, 이는 독자의 선택입니다. 또한 이런 기회에 여성 혐오에 대해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도 좋습니다. 미쳐 감지하지 못했던 색다른 시선을 펼치는 것을 보는 것을 저는 좋아합니다. 하지만 불편한 사람들로 인해 그를 끌어내리고, 연재 중단을 주장하는 등의 행동은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기안84의 하차 및 연제 중단을 요구하는 단체 행동 또한 헌법에 보장된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중세 시대 마녀사냥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자유 의지에 따라 동조하였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역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체주의의 탄생에는 "맹목"이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각종 작품에 거슬리는 코드에 반대하는 상황을 보면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해당 인물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인상 깊게 본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절대 권력자인 엄석대가 사라진 교실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민주주의가 시작된 교실은 무질서하고 시끄럽습니다. 자유는 얻기도 힘들지만 얻어지고 나서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렵게 얻어낸 자유를 엉뚱하게 날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지금의 이 혼란은 자유가 온 후 잠깐 혼란의 과정이기를 바라면서, 훗날 예전에 저런 일이 있었다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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