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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Dec 31. 2020

현대판 사주팔자

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누군가가 내가 먹는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한입만 달라고 하면 혈액형을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같은 혈액형끼리 침을 교환해도 된다는 법칙을 들은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했었고, 저 말고 다른 많은 어린이들도 그랬던 경험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혈액형에 따라 한입만을 허용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어린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혈액형 별 성격을 믿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큰 어른들끼리도 너무 잘 맞는다며 신봉하는 사람부터, 적당히 즐기는 사람, 별 관심 없는 사람, 극혐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피의 종류와 성격 사이의 연관성이 크다는 것을 믿기에는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런 식으로 서로의 성격을 추측해보고 맞추는 것은 나름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만나서 어색하거나 이야깃거리가 떨어졌을 때, 서로 혈액형을 맞춰보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것은 날씨만큼이나 대화에 좋은 화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소심하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는 트리플 A형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와닫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혈액형별 성격이 실제로 과학적으로 크게 근거가 없다는 연구가 대세일 뿐만 아니라 우생학에 의해 나온 차별 논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선호할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지만 혈액형을 이야기하고 믿는 사람을 극혐 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신기하게 좀 잘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저는 해보니 현재 쿨병 말기...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MBTI를 이야기합니다. MBTI는 과학이라는 말도 많이 돌고 있고, 실제로도 본인의 성격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느낌도 듭니다. 혈액형의 4가지 분류법에 비해 16가지 분류법은 카테고리가 더 다양하여 좀 더 구체적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물론 이 카테고리가 그렇게 잘 맞고 과학적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질문에 대답에 따라 내향형과 외향형을 나누고, 내향적인 사람은 다수와 함께 있을 때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면 당연히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부 자기 성격과 다른 내용이 나와도 당연히 일부 틀린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거나, 자신의 성격이 원래 이랬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혈액형보다는 좀 더 재미있고, 다양한 결과가 있기에 이 역시 맹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쁘지 않은 재미있는 테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이미 MBTI보다 훨씬 다양한 분류의 검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주팔자라고 부르는 주역의 내용을 기반하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성격을 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합니다. 사주팔자는 태어난 년, 월, 일, 시에 따라서 운명을 결정합니다. 년, 월, 일, 시에 따라 두 개의 한자가 배정되고, 그 첫 글자 4개를 사주라 부르고, 전체 글자를 팔자라고 부릅니다. 사주에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10가지가 돌아가고, 뒤쪽 글자에는 우리가 잘 아는 12 간지가 돌아가게 되니 그 조합의 수는 이론적으로 백만이 넘는 경우의 수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카테고리가 디테일할 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동양의 이미지가 입혀져 있기 때문에 무언가 더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사주팔자 역시 과학적으로는 전혀 검증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어야만 맞다는 보장은 없으니 이를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예측한다고 믿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45개 숫자 중에 6개가 무엇이 나올지조차 맞추지 못하는데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진짜 과학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어린 시절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인간 유전자 지도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였으며, 30억 개에 달하는 염기서열 Data를 분석해야 하기에, 정부, 민간 합동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되었으며, 기술의 발전과 예상보다 적은 인간 유전자 수로 인해 2000년대 초반에 예상보다 빠르게 유전자 지도를 완성시켰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시작할 무렵, 인간 신체의 모든 신체의 비밀이 밝혀질 것처럼 떠들썩했지만, 의외로 프로젝트가 완료되고도 상당히 조용했습니다. 저 역시 잊고 지내다가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 절제 수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아무런 증상이 없던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 절제 수술을 감행한 것은 유전자 검사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앤젤리나 졸리는 어머니부터 난소암으로 사망을 하는 등 가족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유전자 검사 결과 유방암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수술을 감행한 것입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과학적 검사를 통해 예상하고, 불행한 미래를 피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전작 검사 비용은 억대를 호가했으며 아주 특별한 계층에서만 가능했기에 역시 일회성 화제가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역시 잊혀 있다가 최근에 팟캐스트 과장창을 듣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과 십여 년 전에 억대를 호가하던 유전자 검사 비용이 10~20만 원 정도로 싸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매우 적은 비용으로 내가 쉽게 걸릴 수 있는 질병, 적합한 운동, 탈모 가능성 등 내 몸에 대한 기본 특성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또 번호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내 몸에서 알 수 있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분명 피 타입, 성격 검사, 생년월일에 비해 훨씬 과학적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5206?e=23860001




사실 이러한 발전은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생명 공학이 이미 인간을 창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를 생각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당장 유전자 검사 역시 일반화가 되면 심각한 개인정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혈액형, MBTI, 사주팔자와는 다르게 정확도가 높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질병 가능성을 기반으로 보험 회사가 보험금을 책정할 수 있고, 기업에서는 직원을 거르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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