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누가 저에게 물어보면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뭐하세요?
일단 제 회사가 뭐하는 곳인지 설명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제 직종은 더욱 설명이 어렵습니다. 아마 큰 기업에 다니는 경우 본인의 업무를 남에게 설명하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현대 산업 구조는 복잡하고 분업화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대해 가끔 나는 기사나 증권가 리포트를 보면 기가 찰 때가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전혀 모르는 채 몇 가지 드러나는 경영 지표와 회사 소개만을 보고 적은 느낌입니다. 사실 당연합니다. 여러 기업의 정보를 다루는 기자나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저도 설명하기도 난감한 업의 정의를 열심히 공부하여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틀린 기자나 애널리스트의 분석이 꼭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높은 레벨에서 여러 회사의 숫자를 두고 비교/분석하는 일은 오히려 현업에 빠져 있는 사람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사실 그 회사에 대해 상당히 잘 안다고 하더라도, 현업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사건/사고와 그 영향을 알 수는 없습니다. 분석을 하는 사람은 그런 일들이 모여서 발생되는 결과 지표만을 볼 뿐입니다. 때문에 현업의 사람들은 그런 리포트를 보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지표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무를 볼 때는 문제 투성이 일지라도 숲은 잘 돌아가는 경우도 많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쓰는 글 중에 제 전문 분야는 하나도 없습니다. 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경제는 잘 모릅니다. 정치가에 꿈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공대 출신이긴 하지만 과학 논문도 잘 못 읽습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의 생각을 쓰고 있습니다. 그 분야의 전공자, 혹은 제가 퉁쳐서 여러 분야를 묶어 생각한 것은, 전문가가 보기에는 기가 찰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그 학문에 자부심이 높을수록 이런 류의 글을 싫어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라도 제 업무 분야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설명을 하고 관련 없는 분야와 엮으면 기분이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고대 유명한 철학자들을 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펼칩니다. 그 사람들이 천재였던 것도 있지만, 현대와는 다르게 학문의 분야가 지금처럼 분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천재들도 현대 사회에 왔다면 모든 분야의 체계를 정립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학문에 세밀한 경계가 생김으로 인해,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분야를 건들기가 너무 힘든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모두 옳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트랜스 지방을 안전하게 생각하다가 몸에 해로움이 밝혀진 것이 2000년대 초반이며, 좋은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HDL 콜레스테롤이 심장병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기존의 식품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키토 제닉 식단이 각광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유행 역시 언제 다시 뒤집히는 연구 결과가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과학은 많은 검증과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신뢰도가 높지만, 다른 분야는 이보다도 훨씬 의심이 되는 이론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학자의 양심을 버리고 정치권에 협조하기 위해 내용을 조작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간 수많은 전문가들이 쌓아 올린 업적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가는 현재 가장 최신의 연구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존중할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단지 관심을 가지는 일반인의 의견에 코웃음을 치고 외면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가르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일반인 역시 전문가를 비웃으며 본인의 생각이 진리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서로 대화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발상과 진화는 이런 새로운 생각에서 검증되고 발전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최근에 페이스북 물리학 페이지에 질문을 올리곤 합니다. 제가 관심 많은 물리학 분야에서 궁금했던 내용이 많았는데, 마침 해당 페이지에 다양한 질문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저도 질문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답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답변부터, 잘못된 지식을 나열하는 경우도 있고, 아주 전문적으로 제 수준에서 알아볼 수 없는 답변을 해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주시는 분도 계시네요. 답변의 내용에서 상당 수준의 전문가부터 그냥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 지나가며 농담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각자의 스펙트럼에서 이야기를 하는 댓글을 보면서 저의 생각을 잡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과 댓글에서 새로운 생각을 얻어가시는 분들도 가끔 보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책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었던 질문들을 여기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훨씬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너무 각자의 세계 속에만 빠져있어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외치기만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런 건 대화라고 볼 수 없겠죠. 조금만 더 열린 자세로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