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신입사원 시절, 회사의 임원들을 만나게 되면 항상 긴장을 했었습니다. 마치 군대에서 장군을 만난 것처럼 경직된 자세로 말 한마디 한마디 주의 깊게 듣곤 했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소위 별이라고 표현하며 부추기기도 했지만, 나보다 훨씬 오랜 회사 생활을 하며 성공한 선배님들에 대한 리스팩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입사 전 임원에 대한 이미지는 스티브 잡스 같은 화려한 PT실력과 뛰어난 언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임원이 그렇진 않더라도 많은 수의 임원이 그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었지만, 현실은 정 반대였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내쫓나 싶을 정도로 어눌한 언변의 임원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회사를 다닌 지 10년이 넘고, 제가 입사했을 때 과장, 차장님이던 분들이 임원이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옆에서 쭉 지켜보다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하고자 하면 왜곡이 될 수 있어 말하기가 어려운 사실이라 아직 제 부족한 글솜씨로 왜곡 없이 이 미묘함을 표현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에 그 이유에 대한 말은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팀이 만들어진지 얼마 안 돼서 손발이 안 맞지만 차차 맞춰가고.." 같은 류의 이야기를 새 프로젝트 팀이 꾸려지면 많이들 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이 말뜻을 알게 됩니다. 팀장과 오래 같이 일을 하여 적당히 두리뭉실하게 말해도 생각을 읽고 원하는 자료를 만들어오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지시대로 정확하게 일하거나 뛰어난 실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보다는 알어서 적당히 잘 맞추면서 조율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전문 기술 분야보다는 영업이나 사업분야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게 더 높은 분으로 올라가게 되면 복잡해집니다. 예전에 아주 높은 분의 보고서를 쓰기 위해 모인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던진 한마디를 해석하는데만에도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그냥 전화해서 물어보면 될 텐데 그럴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끙끙 앓다가 보고의 방향을 정하고 과제를 나눠서 각 부서에 뿌리게 되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에 다 준비했어"라는 말처럼 방대한 자료를 만들고, 그중에 그분의 의도에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요약하고 나머지 페이지는 모두 첨부로 빠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분 측근에 연락하여 평소 생각이나 언행 등 사소한 정보라도 얻어내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캐치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감히 그분의 말씀이 틀렸다는 생각은 꺼낼 엄두조차 낼 수 없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관료, 기업가나 정치인의 말실수는 하루 이틀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그분들의 말실수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본인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하는 것이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굳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욕하듯이 생각이 없어서라고 말하기에 그분들은 많이 배우신 분들이고,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말했다고 하기에도 근거가 부족합니다.
어쩌면 그분들은 대중들이 자신의 말을 잘 못 알아먹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동안 자신이 적당히 말하고, 그 말을 찰떡같이 해석해서 가져오는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면 되었었기에, 굳이 많은 생각을 담아 논리적으로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자신의 말을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한 채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답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조직의 누구도 자신의 말을 해석하려 노력하고, 최대한 동조를 해왔을 테니 말입니다. 자신이 술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은 못한 채 말입니다.
회사에서 저의 목표는 "개떡같이 말하는" 상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열심히 글을 쓰는 이유 중에는 계속해서 논리적인 사고를 키우고 싶은 측면도 있습니다. 현재 기성세대가 갖는 장점과 단점을 풀려면 책 한 권이 나올 듯 하지만, 제 기준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하나 꼽자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MZ세대라고 하면서 상당히 넓은 세대를 묶어서 말하는 것이 유행인 듯한데, 간신히 MZ 세대에 들어가는 낀 세대 사람으로, 나중에 저는 어떤 단점을 가지는 기성세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박혀있는 사고방식을 완전히 고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단점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