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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Feb 28. 2022

머리를 깎다가 든 생각

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곳곳에서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는 것을 보고 미용실을 가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커버가 안 되는 머리를 보고 조심스레 머리를 깎으러 갔습니다. 머리를 깎는 시간은 사실상 한 몸 같은 핸드폰을 몸에서 떼는 드문 시간이기에 여러 다양한 망상이 떠오릅니다.




미용사를 기계로 대체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기능에 해당하는 직업이라 쉽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깊게 생각해보니 이건 사실상 대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카락의 개수는 사람마다 편차가 크지만 대략 10만 가닥 정도라고 하고, 이를 개별적으로 시뮬레이션하여 정확하게 자르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미용사가 머리를 자르는 패턴을 분석하여 나오는 결과에 따라 움직인다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것보다 잘 자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탈모인이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는 이상 미용사라는 직업은 AI가 아무리 발전하여도 존속될 것 같습니다.


좀 더 생각을 넓혀보다 보니 예술로 분류되는 작곡은 의외로 대체가 쉬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는 지구 상의 누구보다 쉽게 화성학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수없이 많은 히트곡과 히트를 하지 못한 곡을 모두 분석하여 성공한 패턴을 분석한다면 성공 공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작곡가들 역시 공공연하게 돈 되는 코드 (Money Code)를 알고 있고 일부 시퀀싱 프로그램은 기본 코드만 잡으면 꽤나 좋은 화성의 음들을 자동으로 쌓아주기도 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작곡이 샘플링의 조합으로 변하면서 기계가 작곡을 하기에는 더 좋은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패턴이 정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가수는 대체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단 가수의 음성 패턴은 화성학보다 많고 복잡할 것이며,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발성과 창법을 가진 가수가 심금을 울리는 경우도 많으니 말입니다. 물론 AI의 뛰어난 학습 능력으로 노래를 불러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으나, 인간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대중들은 그 노래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예능감, 스타성을 같이 보고 교감을 하며 평가를 하기 때문에 노래는 기계에게 노래는 상당히 높은 난이도의 미션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기계는 우리가 하기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반면, 너무나도 쉬운 일을 매우 어렵게 합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복잡해 보이지만, 조건문, 반복문 같은 기본적인 명령어의 반복이니까요. 이를 겁나 빠르게 많이 수행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게 매우 쉽지만, 조건의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미묘해지면 어려워합니다. 땅의 모든 상태를 고려하고 내 몸 상태, 근육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는 이족 보행이나, 여러 그림 중에 고양이를 찾아내는 일 같은 것을 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연구비를 투입하는 것을 보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호한 예술성의 기준을 기계가 쉽게 구현할 수 있는지 여부로 판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기준을 잡으면 많은 예술의 위치가 뒤집힙니다. 누구도 예술가라 생각하지 않는 미용사는 뛰어난 예술가가 될 것이고, 작곡가는 코드를 찍어내는 노가다를 하는 기능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가수는 여전히 그 심금을 울리는 예술적인 능력을 인정받게 되겠죠. 기계와 인간의 차이가 줄어듬에 따라 기계가 느끼는 난이도에 따라 예술적이라는 판단의 척도를 만들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계가 쉽게 하는 일은 단순히 반복되는 명령어 처리를 잘하는 일일 테니 말입니다. 제가 인문학자라면 이러한 생각에 사례를 조사하고, 논리를 보충하여 책을 쓰거나 논문을 내보았겠지만,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기에 한 편의 글로나마 생각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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