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때그때 생각을 적어보는 글입니다. 특별한 체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분량도 제멋대로이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날것의 저를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봅니다.
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개별 사건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그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면 시간을 들여 여러 자료를 조사해보아야 하는데 그럴만한 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각 사건의 제목 정도만 알고 있으며, 잘 모르는 상태에서 특별히 가치 판단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근 대위의 우크라이나행은 꽤나 관심이 생겨서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이 생기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이근 대위 사건을 큰 틀에서 보면 샘물교회 피랍사건이 가장 유사합니다. 국가에서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한 곳에 허락을 얻지 않고 갔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샘물교회 신도들은 피랍이 되어 국가를 난감하게 하였고, 일부는 죽었으며 나머지 신도들을 빼내기 위해 국가는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원칙을 버리고 협상을 하였으며 정확한 액수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많은 돈을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근 대위 역시 죽거나 포로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샘물교회 피랍사건의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샘물교회 사건 당시에는 소수의 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다수가 비난을 하였지만, 이번 사건은 그 비율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꽤나 논쟁이 될 만큼 갑론을박이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봅니다.
일단 샘물교회의 신도들과 다르게 이 분은 상당히 유명한 사람입니다. 유튜브계에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킨 가짜 사나이에 출연하여 강렬한 모습을 남겼으며, 군사 활동의 전문가라는 것을 여러 매체를 통해 검증하였습니다. 강력한 남성성의 상징 같은 캐릭터로 자리 잡았죠. 이런 사람이 현재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법을 어겨 처벌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겠다고 한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공감을 산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든 로망일 수도 있겠네요.
놀랍게도 이 사건에서 이근 대위를 옹호할만한 또 다른 근거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비난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팩트가 확인되지 않은 여러 설들이 돌고 있지만, 이 분을 옹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분의 정의감과 용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옹호하는 입장의 이야기만 보면 영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생성되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로는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근 대위가 실제로는 정의감이 아닌 본인의 지명도를 올리기 위해, 혹은 다른 불순한 의도로 우크라이나에 갔다고 하면 옹호의 바탕인 정의감을 정면으로 반박하게 됩니다. 혹시 실제로는 안전한 곳에서 쇼를 하고 있다면 용기 역시 인정받기 어렵겠죠. 이런 상황이 입증된다면 여론은 샘물교회 이상으로 안 좋아질 것이며, 특별히 여론이 갈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극소수의 팬만이 옹호를 하게 되겠죠. 문제는 실제로 이근 대위가 저런 마음을 먹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드러나기는 쉽지가 않다는 점입니다. 본인이 시인하지 않는 이상 마음을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황과 루머를 통해 각자 생각하는 대로 비난과 옹호를 하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근 대위가 무사히 살아서 돌아올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처벌은 해야 하나 멋지다는 의견과 처벌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갈릴 것입니다. 물론 처벌뿐만 아니라 멋지지도 않다고 하는 의견도 꽤 존재할 듯하지만, 생각보다 무시할 수 없을만한 공적을 올렸거나,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감사 인사라도 받는다면 이러한 의견은 마이너 하게 변모할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고, 이로 인해 생길 수많은 불안 요소를 생각할 때 이를 처벌하지 않으면 다음 유사한 사태를 방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은 분명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영웅적인 행위와 결과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근 대위의 행적을 보면 꽤나 여론몰이에 능하기에 비난과 옹호의 충돌은 상당히 강하게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근 대위가 부상을 입거나 죽었을 경우에는 양상이 많이 복잡해집니다. 그를 순교자처럼 추도하는 사람들부터 터무니없는 만용이라며 비난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이 생길 것입니다. 특히 이근 대위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 또 다른 불법 참여자가 생기고, 그 사람에게 큰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더 큰 논란이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참여자가 그나마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지원했거나,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그랬다면 여론은 더 진흙탕 싸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돼도 큰 논란을 피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면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큰 논란과 화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근이라는 단어만 떠도 인기가 많기에 허위사실을 퍼트리는 유튜버도 있었고, 앞으로도 많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입장에서는 어떤 상황으로 흘러가든 난감할 것입니다. 어떤 가치관도 무시할만하지는 않지만 왠지 샘물 교회 신도들이 좀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드네요. 저 역시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안 들지만 그들 역시 어쨌든 선교라는 그들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간 셈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이근 대위의 행위가 썩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현재 군인은 아니지만 명색이 군인 출신이라 자부하는 사람이 국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부터, 마치 정부에서 강한 반대를 해서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출국을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 것은 "처벌받겠다"는 발언의 진의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전시 중에도 자신에 대한 여론을 모니터링하며 SNS를 쓰거나, "6.25 때 감사했다"는 이상한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영웅 의식에 크게 도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식의 논란은 분열을 가속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토론은 필요한 것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논쟁을 긍정적으로 잘 소화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죠. 이는 이근 대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생각을 들을 생각하지 않고 "어쨌든 용기가 대단하다"라고 일방적인 주장을 반복하거나, "마초적인 남자들의 문제다"는 식의 남녀 가르기에 들어가서 평행선을 만들게 됩니다. 토론은 다른 주장을 듣고,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무시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토론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