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못 가진 사람들이 왜 상속세를 반대할까?

504 기회의 균등

by 평범한 직장인

원조 부자동네인 성북동이나 평창동을 가보면 높은 담장과 대 저택을 볼 수 있습니다. 압도적인 부자들이 사는 곳이죠. 신흥 부자들은 주로 한남동이나 강남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강남도 테헤란로 북쪽과 남쪽을 뜻하는 테북과 테남으로 나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대치동으로 대표할 수 있는 테남 지역은 높은 교육열의 상징 같은 지역으로, 의사, 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들은 본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부를 이루었지만, 그 부를 계승시키기 위해서는 자식들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볼 수 있는 심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죠. 테북 지역 역시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테남 지역처럼 치열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건물주가 많은 테북 지역은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유학을 보내며 여러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건물 관리를 잘할 수 있게만 만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고소득 전문직이 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테북 지역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 월세를 내며 그들의 부를 불려주고 있다는 농담도 있다 하네요.




물론 제가 예를 든 것은 단순한 썰일 뿐 전부를 반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꽤나 세태를 잘 반영한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는 부가 대물림 된다면 사실상 계급 사회와 다를 바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전생에 업보로 현재 위치가 정해졌다고 말하는 것에서 부모의 부에 따라 현재 위치가 정해졌다고 말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물론 이에 대한 고민과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회의 균등히 보장되어야 하는 만큼 많은 국가에서 상속세를 물리고 있습니다.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자식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것은 진화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고 싶고, 자식이 잘못을 했어도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지 않게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속세에 대해 반대를 합니다. 물려줄 돈이 매우 적은 사람들조차도 재산을 물려주는데 세금을 떼간다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속세를 찬성하는 쪽이 이익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물려줄 수 있는 돈보다, 압도적인 부자들이 물려줄 수 있는 돈이 훨씬 크며, 그 돈이 세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압도적인 부자들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훨씬 큰 혜택을 누릴 테니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기회의 균등이 확보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훨씬 더 높은 성공 가능성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격차를 다시 섞고 보정하게 되고, 기회는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재능을 발휘하고 노력하며 경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섞으면 이득을 보는 편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상속세에 대해 반대를 합니다. 계급이 올라갈 수도 있지만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력으로 축적한 재산을 국가가 가져가는 것에 대한 반감도 큰 것 같습니다. "부모를 죽인 원수는 잊을 수 있어도 재산을 훔친 원수는 평생 기억한다"*는 말처럼, 성실하게 번 돈을 국가에서 가져간다는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부르고 있습니다.




* 부모를 죽인 원수는 잊을 수 있어도 재산을 훔친 원수는 평생 기억한다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인용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