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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 직장인 Jun 08. 2024

리즈 시절

나의 슈퍼 스타

사실 나는 리즈 시절 기억이 없다. 아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없었다. 어릴 적 한 번쯤은 꿈꿔봤을 것이다. “너무 멋져 남들이 시기해도 참아낼 무한적인 인격, 친구들의 우상” (화이트의 Dream Come True 중).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평범한 학생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유전자를 받은, 내 100일 사진과 똑같이 생긴 내 아들을 보니 확신이 든다. 나도 리즈시절이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가장 놀란 건 그 반짝이는 눈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몸의 90%는 물이고, 성장하면서 점점 비중이 줄어든다고 들었다. 90%면 그냥 거의 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갓 태어난 아기의 눈을 보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반짝이는 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수분을 듬뿍 머금은 듯한 맑은 눈에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는 표현은 좀 과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놀랍다. 나이 들고, 건강이 안 좋아질수록 흐리멍덩한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은 몸의 수분이 줄어들어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기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고, 그 눈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5개가 다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작고 귀여운 손가락이야 과거 여러 번 보기도 해서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생각보다 통통한 발은 예상 밖이었다. 큰 머리를 지탱하며 걸어야 해서인지 발은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발등이 높았고, 대비되게 앙증맞은 발가락을 꼼지락 것을 보면 역시나 귀여움 만렙이다.




물론 내 아이라서 귀여운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지금 이 녀석은 리즈 시절을 살고 있다. 100일이 지나고 조심스럽게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면 힐끗힐끗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너무나도 작은 아기의 모습에 귀엽다는 말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 사회화가 덜 된 한자리 숫자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애들은 직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귀엽다는 말을 연발하며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귀여운 것들이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귀엽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슈퍼스타다. 혹시나 아기가 울지나 않을까 조심조심해하며 아기의 환심을 끌려고 한다. 이 아기를 카리나에게 데려가서 보여주면 분명 귀엽다며 안아줄 것이 틀림없다. 참 부러ㅂ…는 아니고, 어쨌든 정말 슈퍼스타의 시기이다. 아쉬운 건 본인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지만, 막상 그 시절 기억은 전혀 날 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아무런 사심 없는 나이였기에 있을 수 있는 인기일 것이다. 아기는 사람을 보면 조금 경계하다가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금방 웃고 즐거워한다. 울다가도 금방 잊고 자기를 울린 사람에게 들러붙는다. 뒤끝이 없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점점 생기고,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사춘기가 되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누구나 좋아하던 외모는 어느새 고민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나 않을까 고민하게 되고, 나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럽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간다. 그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점점 미움받게 되기도 한다. 미움받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어른도 제대로 보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포기하고 마음을 닫고 살뿐이다.




모두에게 미움받는 사람이든, 모두를 미워하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리즈 시절이 있었다. 혹시 지금 사람 관계로 너무 힘들어하며 마음을 닫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애쓰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타인의 행동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속상해하고, 분노하고 있다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며 반응하는 것도 의외로 괜찮다. 아프거나 두려우면 울고, 금방 잊고 다시 즐거워하며 방긋 웃는 아기를 보며, 이 녀석은 정말 무적의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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