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면 성장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생각해 보면 놀랍다. 어제만 해도 장난감에 손만 다아도 기겁을 하던 아이가 오늘은 물건을 잡기 시작한다. 안을 때마다 혹여나 목이 꺾일까 조심조심했는데, 어느 날부터 한 손으로도 안을 수 있게 된다. 전혀 관심 없어해서 잘못 샀나 싶은 장난감을 보며 “우와~”를 연발한다. 멀리서 보면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기는, 실제로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주 예전부터 아기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메커니즘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실제로 이 아이가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신비스럽기만 하다. 우는 것밖에 하지 못하던 아이가 점점 소리가 다양해지더니 수다쟁이가 되어 옹알이를 시작한다. 늘 아빠를 먼저 말해보라고 교육시켰지만 발음하는 것을 관찰하면 아무리 봐도 엄마를 말하기 시작할 것 같더니 역시나였다. 이후에는 점점 말을 익히며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가겠지.
신체적인 성장은 두말할 것도 없다. 출산휴가가 끝나고 출근을 하게 되면서 평일에는 거의 아기가 자는 모습밖에 보지 못하다 보니, 주말이 되어서야 좀 놀아주고 재워줄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보는 아기는 쑥 커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안으면 팔에 무리가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이것저것 올려놓고도 아기를 올려놓을 수 있었던 기저귀 갈이대는 어느새 아무것도 올릴 수 없게 되었고, 유령 꼬리처럼 아래가 한참 남았던 스와들업은 이제 입고 다리를 쭉 펴기 힘들 정도로 작아지게 되더니 이제는 입지 않는다. 가끔 도저히 어떠한 추측도 할 수 없는 울음을 보이기도 하는데, 아마도 급격한 성장에 따른 성장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의 흐름처럼 선형적이지는 않지만, 아기의 공간 역시 성장한다. 아주 좁은 엄마 뱃속만을 점유하고 있다가 세상에 나와 조금 더 큰 공간을 차지한다. 그래봐야 주로 집 안의 작은 공간만을 왔다 갔다 하지만, 이내 유모차등의 이동 수단을 타고 밖으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며 조금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게 되며,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교와 학원이라는 공간으로 이동 범위를 넓힌다. 대학생이 되면 여행을 간다고 국내는 물론 해외도 가겠다고 할 것이다. 아기는 태어나서 계속해서 공간을 성장시킨다.
이제 성장을 마치고 노화와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는 입장에서 새삼 느끼는 바가 많다. 신체적 성장이야 이제 멈추었지만 아직 다른 성장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나는 얼마나 성장을 거부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조금 더 늙은 것 외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아기 때의 기억은 없지만 어린 시절, 나 역시 성장을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수백 번 넘어지며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히고, 스케이트 타는 법을 익혔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지 않은 암기력을 커버하기 위해 수도 없이 생각하며 방법을 찾아내었다. 내키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도 힘들지만 어떻게든 시도를 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힘든 도전을 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하게 되고, 새로운 상황이 오면 회피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이 나의 삶의 의욕을 뺏어가는 듯싶다.
그러고 보니 어마어마하게 돈을 많이 번 사람들,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로 치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을 투자하는 분야가 노화와 우주다. 계속해서 성장을 추구해 온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늘리고, 공간을 확장하려고 황당할 정도로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재미없게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는 직장인들을 보면 성장을 멈춘 것은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신을 반박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직장 상사는 더 이상 성장통을 겪고 싶지 않은 듯싶다. 회사의 혁신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추진하는 부서, 받아들이는 부서 모두 변화로 생기는 문제를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도 귀를 닫고 눈을 감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성장시키면서 과거의 자신이 틀린 선택을 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기는 사소한 도전에도 울음을 터트리며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2~3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왔을 것이다. 뒤집기를 하고, 일어서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도전이지만, 누구나 해내는 일이다. 지독한 입시 경쟁도 한몫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안정적이 되면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아기를 보며 다시 성장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근데 일하고 애 보느라 시간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