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들처럼 작은 사건이나 물건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에 취약한 것 같다. 관심 있는 일 외에는 지나치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주변에도 무심한 편이고 발견도 잘하지 못한다. 유려한 문체로 세상을 예민하게 느끼며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내는 작가들을 보면 참 부럽다.
오래 쓴 물건은 버려버리고, 오래 살았던 집에서 이사를 갈 때에도 상념에 젖기는커녕 새로운 집이 어떤지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니 인생의 순간순간을 무심하게 지나치기 마련이다. 때문에 내 생에 최고의 순간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생각해 봤더라손 치더라도 기억을 하지도 못한다.
이런 성격이 된 데에는 어린 시절 일종의 징크스가 컸던 것 같다.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어릴 때 좋은 일에 기뻐하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데서 혼나곤 했었다. 반대로 일을 저질러 놓고 엄마한테 혼날 것이라 생각하며 벌벌 떨고 있으면 아무 일이 없었던 경우도 많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좋은 일에도 크게 기뻐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나쁜 일을 막는 부적처럼 말이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삶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나는 언제가 인생 최고의 순간인가? 너무 오래 전이되어 버렸지만 대학에 합격했을 때와 취직을 했을 때일까? 평범한 사람에게는 상당히 커다란 이벤트이고 마일스톤이다. 그런데 그다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래되기도 했지만, 생각만큼 크게 기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징크스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무언가를 성취하는 순간의 쾌감은 너무 짧다. 얼마가지 않아 다시 일상은 반복되었고, 감사한 일이지만 최고였다고 기억되지는 않는다.
막 태어난 아기를 안는 순간을 최고의 순간이라 하지 않기도 힘들 것이다. 당연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에 하나이고, 아마도 내 아이에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아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이라고 말해도 부족할 것 같은 중요한 위치를 이미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인생 최고의 순간인가? 다소 정신없이 지나간 느낌이다.
아무래도 나의 무심한 성격상 최고의 순간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인 듯싶다. 지나치게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나에게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어떤 날이었다.
와이프가 마사지를 받으러 간 주말이었다. 격렬하게 놀 것 같았던 아기가 피곤해 보인다. 감각적으로 안다. 곧 배고프다고 울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고 밥을 주었다. 열심히 젖병을 빨던 아기의 눈이 스멀스멀 감긴다. 식사를 마친 아기를 트림시키기 위해 안았다. 많이 피곤했던 아기는 안긴 채고 고개를 내 가슴에 파묻고 끄덕이기 시작했다. 잘 없는 일이다. 보통 우리 아기는 침대에 가기 전에 잠을 잘 안 잔다. 잠이 든 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았다. 창 밖에서 햇살이 길게 들어왔지만, 아직 날씨가 덥지는 않았다. 아니, 딱 좋은 습도와 온도다. 소파에 아기를 안고 오래 앉아 있으면 살짝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지만, 그렇게 심하지 않은, 딱 적당한 정도의 피로가 느껴졌다. 이 시간이 영원하다면 문제이겠지만, 나는 조만간 이 시간이 끝날 것을 알고 있다. 제한된 시간은 행복을 극대화시켜 준다. 문득 느꼈다. 어쩌면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이 나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말이다. 나는 창문 밖의 나무와 지저귀는 새와 잠든 내 아기와 집 안의 정돈된, 정돈되지 않은 물건들을 번갈아보며 그 짧은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일상에서 스쳐 갔을 수많은 최고의 순간 중 하나에집중하니 살짝 눈물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