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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드는 사람 지민규 Aug 30. 2020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지켜야 해요

몽글몽글하게 얽혀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고맙게도 저에게는 성적 지향을 털어놔 준 친구들이 몇 명 있습니다. 레즈비언 친구가 한 명 있고, 게이 친구가 두 명 있네요. 저는 그 친구들이 그러한 사실을 말해 준 것이 언제나 고마웠습니다. 레즈비언, 게이 친구를 가졌다는 사실이 요즘 말로 힙하게 느껴진다거나, 그들을 이해하는 게 도덕적으로 나은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이 나를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지지하는 사람으로 봐 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의 사랑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기도 하죠.


이 세상에 차별의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김새가 어떠해서,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몸무게가 조금 나가서, 어느 지역에 살아서, 어느 아파트에 살아서, 졸업한 학교가 어디여서, 어떤 직장을 다녀서, 어떤 종교를 믿어서, 어떤 인종이어서 등등. 이런 종류의 차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분량을 다 채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 하나 차별의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없는 세상인데,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지키고자 타인의 사랑을 지켜주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나름대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자 그러는 것이냐고. 반대로, 그럼 당신이야말로 무엇을 지키려고 그러는 것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사랑을 지키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너무 허무한 말인가요? 사랑을 지키려고 그런다는 말. 그런데 결국 괴로운 우리 삶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밖에 없지 않나요? 사랑은 우리 삶에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 아닌가요? 모든 것을 가져도 사랑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람의 삶은 결국 의미를 잃고 척박해지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 필수적이고, 축복받아야 할 감정인 사랑을 존중하지 않고, 차별하며 부정한다는 것이 저는 조금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삶이 지난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세월이 어떻게 흐른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아주 유한한 삶을 살다 떠나는 게 우리의 존재 아니던가요? 그리 오래 살지 않은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짧은 시간 이 세상에 머무르다 떠나는 것이죠.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사랑을 지켜 주며 살면, 여러 가지 존재와 방식들로 얽히고설킨 세상이 조금 더 조화로워지지 않을까요?




3년 전이었죠. 당시 대선 후보자들의 텔레비전 토론을 보다가 마음 아픈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수를 대표했던 후보자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발언을 했고, 진보를 대표했던 후보자가 그런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죠. 우리나라를 대표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자리에서 그와 같은 말들이 오가는 것에 저는 허망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토론 방송을 보며 존재감을 부정당했을 성소수자들이 걱정되기 시작하더군요. 제 친구들도 마음이 쓰였지만, 특히 정체성을 형성해 가고 있었을, 얼굴 모를 많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텔레비전 토론을 봤을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들의 부정된 존재감은 누가 회복해 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온라인 세상에서, 오프라인 세상에서 이건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인이 그러더군요. “당사자 운동은 당사자가 직접 나설 때 동력이 생기는 것이지. 네가 열 내봤자 소용없어.”라고요. 저는 그 말이 비정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니 왜죠? 저는 이렇게 말하겠어요. “그들의 사랑이 위축되지 않게 내가 대신 나서겠어. 그들은 상처 되는 말 같은 건 듣지 말고 그들의 사랑을 고스란히 지켰으면 좋겠어.”라고. 이 세상에 영문 모르고 태어나 같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서로를 위해 충분히 그래 줄 수 있지 않나요? 꼭 나의 일이 아니어도 대신 화내 주고, 대신 나서 줄 수 있잖아요.


저는 그때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 내 이익과 직결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내 이익과 직결되는 것이겠죠. 나 역시 어떤 때에 어떤 이유로 차별의 피해자가 될 것이 분명한데, 세상이 조화롭다면 상처받는 정도가 훨씬 덜할 테니까요.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저의 게이 친구 한 명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그 친구는 중학생 시절 만났는데요. 친구로 지낸 지 몇 년이 지나 “사실은…….”이라며 자신의 성적 지향을 털어놔 주었죠. 그 친구는 학교생활도 아주 잘했고,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신뢰받는 사람이에요. 국방의 의무도 말끔하게 다했고, 지금은 착실하게 일해서 성실하게 세금 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언제나 꽤 억울해요. 너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왜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냐고 제가 억울해하면 오히려 본인은 괜찮다고 합니다.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것은 사실 아니겠죠. 사회의 관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뒤집히지는 않겠지만, 정말, 우리 사는 세상이 이제는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이 그리 훌륭하지 않지만, 지난겨울 파리를 여행하며 우연히 마주했던 무지개를 찍은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색을 가진 무지개를 갑자기 마주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라고요. 무지개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싶으면서 말이죠. 누구든 무지개를 보면 잠깐 멈춰 서게 되고, 올려다보며 몽글몽글한 마음을 가지기 마련이죠?


무지개가 LGBTQ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색이 한 데 공존해서 그렇대요.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몽글몽글하게 얽혀 조화롭게 공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어떤 대통령이, 어떤 정치인이, 어떤 인권 운동가가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지켜주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동력이 되어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간다면 정말,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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