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때는 없다. 다만 사부작사부작 하다 보면, 적당히 정리되는 때가 있다. 이래저래 적당한 때가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니 적당히 자리 잡혀 내 생활이 됐다. 회사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어서 바지런 떠는 게 쉽기만 한 것은 아닌데, 회사 일 마치고 운동도 하고 글도 쓰는 요즘 오히려 기분은 가볍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결과에 지쳐 운동하기에 적당한 컨디션이 아니야, 글 쓰기에 적당한 기분이 아니야 하는 마음속 소리들이 또 들려올지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적당한 때는 없다는 생각으로 덤벨을 들고 키보드를 눌러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적당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니까.
- 세 번째 떠드는 글 '적당한 때는 없다' 중에서
한 달 전에 발행한 글 '적당한 때는 없다'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사부작사부작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을 써놓았는데, 이번 글에서 적당하게 얻은 결과 하나를 적어볼 수 있게 됐다. 별다른 것은 아니고 내가 쓴 ‘친구에게 축의금 100만원을 건넸을 때의 감정’ 글이 다음 메인에 걸렸다. 하루에도 수 편의 브런치 글이 다음 메인에 올랐다 내려왔다 하는 마당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사실 적당한 정도가 아니라 꽤나 뭉클한 결과였다.
8월 29일 토요일 00시 26분. ‘친구에게 축의금 100만원을 건넸을 때의 감정’ 글의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다는 브런치 알림이 왔다. 사실 내가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은 모두 100~500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었기 때문에 조회수가 1,000 이상이 되면 브런치에서 친절하게 알림까지 보내 준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았다.
별안간 알림을 받고 '응?'스러운 마음에, 발행한 글의 조회수를 살펴볼 수 있는 통계 카테고리에 들어가 보니, 새로고침 할 때마다 해당 글의 조회수가 100~200씩 늘어나고 있었다. 세상에. 무언가 일이 났나 보다 싶어 ‘뭐야뭐야’ 하며 여기저기 의심 가는 곳을 뒤지다 보니, 다음 메인에 걸려 있는 내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메인 노출의 효과가 대단하긴 하구나. 내 글은 메인에 걸린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조회수 2,000을 기록하더니, 성큼성큼 5,000을 넘고 10,000을 넘어 토요일 하루에만 49,468을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메인에 걸려 있었던 일요일에는 일일 조회수 27,898을 기록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다음 메인에서 내 글이 사라진 월요일에는 516을 기록해 실로 조회수가 훅 떨어졌다. 그래도 주말 이틀 동안 즐거운 경험 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원래 대로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는데, 해당 글은 화요일 날 다시 일일 조회수 5,465를 기록했다.
다시 뛰어오르는 조회수에 또 한 번 ‘뭐야뭐야’ 하며 이곳저곳을 살펴봤더니, 내 글이 다음 메인 ‘직장IN’ 인기 BEST 7 카테고리에서 인기글 6위를 차지하며, 악착같이 메인에 다시 돌아와 있었다. 짧게 인기글에 머무르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잡초 같은 내 글은 혹독한 다음 메인 땅에서 생명력을 발휘해 주어, 다다음날 아침까지 인기글 순위권에 올라 있었다.
그 영향으로 수요일은 일일 조회수 4,882를 기록하더니, 아침까지만 인기글에 올라 있었던 목요일은 796을 기록했다. 인기글 순위에서도 사라진 금요일에 와서야 내 글은 조회수 61을 기록했고, 토요일에는 67을, 일요일에는 59를 기록해 차츰차츰 원래 내 글이 기록했던 정도의 일일 조회수에 가까워지게 됐다.
얼마간 즐거운 기분 마음껏 누렸으니
다시 이 정도의 분위기에서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차분하게 해나가야지
다음 메인에 노출되는 글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축의금 100만원’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던 게 아닐까 싶다. 본업이 편집자이다 보니 타이틀에 전략적 키워드를 녹이는 일이 그리 낯선 작업은 아닌데, 브런치 글의 제목을 정할 때 클릭을 유도할 수 있는, 검색이 잘 되는 키워드 같은 것을 고려해 본 적은 없다. 축의금으로 그 금액을 건넨 게 사실이라 그리 적었던 것일 뿐인데, 운 좋게도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나에게 이런 재밌는 일이 생긴 것 같다.
문득, 옛날이었으면 이런 폭발적인 조회수가 매일같이 이어졌으면, 그래서 내 브런치가 정말 유명해졌으면 하고 바랐을 수도 있었을까?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얼마간 즐거운 기분 마음껏 누렸으니 다시 이 정도의 분위기에서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차분하게 해나가야지, 하는 생각만 든다. 나름대로 들떠서 어떤 글을 써야 또 메인에 걸리려나 고민할 법도 한데, 흔들리는 것 없이 평소와 너무도 같은 것이, 나 정말 많이 성숙했나 봐 싶기도 하고, 아니 뭘 또 이렇게까지 모든 것에 세상 초연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이렇게 태연한 척하지만, 사실은 일주일여 시간 동안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자랑도 꽤 하고, 실시간으로 조회수 확인해 보며 많이 뿌듯해하기도 했다. 브런치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야근 마치고 따로 시간 내 글 쓴다는 것이 종종 힘에 부치기도 했는데, 계속 잘해보라고 누군가 나에게 선물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메인에 노출된 기회로 나의 브런치를 구독해 주신 분들이 많이 늘었는데, 그 부분이 가장 들뜨고 기쁘다. 친구에게 축의금을 건넸을 때의 감정을 적은 그 글처럼 따뜻한 마음을 담고자 한 글을 많이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구독해 주신 분들의 마음이 헛되지 않게, 꼭 따뜻한 감정이 아니더라도 같이 나눴을 때 의미 있을 만한 감정들을 잘 정리해서, 잘 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메인 노출의 여파가 계속 이어져 지난주까지는 원래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나의 브런치를 찾아 주셨는데, 딱 이번 주 들어서야 메인 노출 전과 비슷한 정도의 상황과 분위기가 된 것 같다. 앞으로 또 무슨 글을 사부작사부작 써볼까. 그렇게 사부작사부작 하다 보면 또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들을 마주하게 될까. 근 몇 년간 잘 느끼지 못했던 설렘이 내 마음속에서 은은하니 느껴져 나는 얼마간 소소하게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