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떠드는 사람 지민규 Aug 05. 2020

적당한 때는 없다

세 번째 떠드는 글

올해는 내가 직장인이 된 지 4년 차가 되는 해다. 일 많은 업계에 와 일에 치여 살다 보니 회사에 있는 시간 외에는 먹고 누워 있기에만 급급해, 이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싶어 연초에 다짐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운동을 해서 육체적인 건강함을 가져보자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나 개인의 글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운동이라고는 공원 걷기 정도가 전부고(그것도 슬픈 노래 들으면서), 쓰는 글이라고는 일기장에 뱉어 놓은 우울한 말들뿐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홈 트레이닝을 하고 싶은데 덤벨은 몇 kg을 사야 하는지, 하나의 동작은 몇 세트를 해야 하는지, 세트 사이에 얼마를 쉬어야 하는지, 단백질 보충제는 마셔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정보는 많은데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어, 뭘 어째야 하나 싶었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 브런치에 글을 쓰려 하는데, 작가명은 뭘 해야 하는지, 첫 글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글을 써야 사람들이 읽나. 작가 신청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던데, 어떻게 해야 브런치 작가가 되나. 그보다 내가 브런치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아니 그보다도 더 전에 왜 굳이 글을 쓰려고 하는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역시 뭘 어째야 하나 싶었다.


먹고 누워만 있는 건 어딘가 죄책감이 들어 뭐든 해야 한다는 압박은 있는데 정리되는 건 없다 보니, 적당한 때가 아닌 건가, 적당한 때를 기다려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적당한 때. 내가 노력할 의욕이 넘치면서도, 회사 일이 좀 덜 바빠져 할애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하고, 갑자기 툭 내 옆에 조력자도 나타나, 그냥 모든 게 되려던 일이었나 보다 싶게 차근차근 저절로 풀리는 그런 때.


그래. 야근도 많은데 그때를 기다리며 그냥 충분히 쉬자는 생각으로 얼마간은 하던 대로 먹고 누워 있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적당한 때 기다리다가 적당한 때 죽음을 맞이할 것 같다는 두려운 마음이 계속 들어와, 안 되겠다. 일어나자. 일단 일어나서 나를 운동하는 상황에, 글 쓰는 상황에 놓아 보자 마음먹었다.


Photo by Mac Kenzie from Pixabay

그러고는 무작정 주민센터 체육관에 갔다. 가서 덤벨을 들어보니 6kg은 너무 가벼웠고 10kg은 너무 무거워 나에게는 8kg이 적당하다는 걸 알게 됐다. 몇 개월 하다 보니 8kg도 조금 거뜬해서 다음부터는 10kg을 들어야겠다는 나름의 계획도 생겼다.


또, 하나의 동작은 4세트 정도를 소화할 수 있었고, 5세트를 하면 확실히 운동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음날 힘들었다. 동작 사이 휴식은 30초가 적당했으며, 세트 사이 휴식은 2분이 적당했다. 내가 하는 운동의 강도를 고려하면 단백질 보충제는 마실 이유가 없겠다는 판단도 섰다.


Photo by Matt Hoffman from Unsplash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 가 계정을 만들고, 프로필 편집을 눌러 작가명에 빈칸만 바라보다 보니, 이건 어떻지, 저건 어떻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떠드는 사람'에 '지민규'를 붙여야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다.


글쓰기 버튼을 눌러 떠오르는 대로 쓰다 보니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소개해도 괜찮겠다, 이런 건 일기장에나 써야지 하는 결정이 가능해졌다. 또, 몇 편의 글을 완성한 뒤 작가 신청을 위해, 브런치팀이 요구하는 작가 소개와 활동 계획을 300자 안으로 적다 보니 이 공간의 성격은 어떠해야겠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정리됐다.


적당한 때는 없다.
다만 사부작사부작 하다 보면,
적당히 정리되는 때가 있다.


회사 일도 바쁜데 할 수 있을까. 하다가 흐지부지 그만두면 괜히 시간만 쓰고 소득은 없는 거 아닌가. 원래도 뭘 시작하기 전에 고민만 많은 성격인데, 안 하던 짓을 두 가지나 하려니 꽤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만성 무기력증과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항상 충돌해 괴로운 내가 요즘 회사 일과 운동, 브런치 글쓰기를 병행하며 하는 생각은 적당한 때는 없다는 것이다.


적당한 때는 없다. 다만 사부작사부작 하다 보면, 적당히 정리되는 때가 있다. 이래저래 적당한 때가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니 적당히 자리 잡혀 내 생활이 됐다. 회사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어서 바지런 떠는 게 쉽기만 한 것은 아닌데, 회사 일 마치고 운동도 하고 글도 쓰는 요즘 오히려 기분은 가볍다.


평생 경쟁에 시달리는 세대 속에 살고 있는 내가 일상에 지쳐 그간 성취의 가치를 얼마나 잊고 있었는지도 새삼 떠올려본다. 회사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성과 말고, 내가 나에게 요구하는 순수한 성과를 달성하고 싶다는 작은 욕구가 내 마음속에 있었나 보다.


물론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운동과 글쓰기에 성취나 성과라는 말을 붙이기엔 매우 무안하다. 몸은 시작하기 전보다야 좋아졌지만, 어디 가서 자랑할 정도는 결코 아니고, 지금 내 브런치도 구독자 7명(모두 나의 지인들이다)에 누적 조회수 138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니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결과에 지쳐 운동하기에 적당한 컨디션이 아니야, 글 쓰기에 적당한 기분이 아니야 하는 마음속 소리들이 또 들려올지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적당한 때는 없다는 생각으로 덤벨을 들고 키보드를 눌러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적당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니까.


이 글을 읽고 계실 누군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그와 상관없이 점점 무기력해져 가는 내 모습이 슬퍼 무언가 다르게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느끼고 있다면, 지친 마음을 일으켜 세워 함께 적당한 때를 만들어 가봐요. 물론 다른 것보다 휴식이 필요하다면 넋 놓고 쉬는 것도 너무나 괜찮고 좋지만.

이전 03화 주말 밤 지는 별에 하는 다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