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떠드는 글
스물에 만난 친구가 서른이 되어 결혼 소식을 전했다. 나와는 성별이 다른 친구지만, 두 번의 대학 입시, 대학 새내기 시절, 취업 준비생 신분, 사회 초년생 생활을 차근차근 공유해온 친구였기에 남다른 감정이 들었다. 말 그대로 20대 같았던 20대를 함께 보낸 친구가 결혼을 한다니.
친구가 결혼 날짜를 말했을 때 축하 카드와 100만 원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하의 말을 적어야겠으니 카드가 필요했고, 축하의 마음을 전해야겠으니 100만 원이 필요했다. 100만 원보다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마음이 딱 적당하게 느끼는 금액이 100만 원이었다.
혹시 오해하실까 괜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나는 누군가에게 100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넬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야근으로 모자라 주말까지 이어지는 바쁜 회사 생활에 돈 쓸 시간이 없어 통장 잔고가 넉넉히 쌓여 있기는 했지만, 그와 관계없이 그 친구에게는 100만 원을 주고 싶었다. 축하하는 마음을 굳이 물질로 표현할 이유는 없고, 물질에 축하하는 마음이 다 담기는 것도 아니지만, 너무 축하하는 마음을 100이라는 꽉 찬 숫자에 담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 회사 근처 은행에 가 100만 원을 신권으로 받았다. 깨끗한 5만 원권 20장을 봉투에 넣어 손에 쥐니 내 마음도 다복해졌다. 퇴근하고는 온라인 팬시몰을 둘러보며 쓸데없이 엄밀하게 축하 카드를 골랐다. '이건 너무 과해서 유치해. 이건 너무 단조로워. 이건 색이 너무 강한데. 이건 색이 너무 없어.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맥시멀하면서도 미니멀한 그런 카드는 없나' 하며 주접스러울 만큼 오래 고르고 골라, 갖가지 꽃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최종 선택해 주문했다.
주문한 카드는 다다음 날 도착했지만, 주말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넉넉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대략, 10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연애를 위해 휴학을 했던, 사랑에 불나방 같았던 너인데 좋은 남자 찾아 결혼한다니 대견하다. 왜인지 팔자에 결혼은 없을 것 같은 나를 보며 돌려줄 기회도 없을 것 같은데 100만 원이나 줘서 부담스럽니? 그러나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 누군가에게 순수하게 건넬 수 있어 기쁘다. 잘 써달라 등등의 말이 적혔다.
꾹꾹 눌러쓴 편지와 축의금을 봉투에 담고, 언제 주면 좋을까 생각하며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가 얼굴이나 보자며 연락을 해왔다. 나는 오늘이 날인가보다 싶어 축의금과 편지를 가방 깊은 곳에 넣어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렇게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반나절 넘게 여기저기 쏘다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준비한 편지와 축의금을 건넸다. 결혼 축하한다고. 집에 가서 열어 보라고. 친구는 이런 걸 뭐 벌써 주냐며 잔뜩 머쓱해 했지만, 결국에 고맙다며 받아 들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대단한 성공도 좋고 특출난 출세도 좋지만,
이런 정도의 마음을 전하며 살면 되는 게
또 삶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나는 나대로 집에 돌아와 씻고 나오니 친구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무척 고맙다고 연신 말한 친구는 너무 큰돈이라 당장이라도 다시 가져가라 하고 싶지만, 100만 원을 준비한 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기에 고맙게 받아 가치 있게 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지난 10년 동안 많은 일과 많은 불안이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커서 축하를 건네고, 축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랬다. 우리의 20대는 불안과 불안과 불안이었다. 나란히 수능을 말아먹고 대학에 떨어졌던 우리는 도무지 대학이란 곳을 갈 수 있을지 불안했다. 고생고생해 대학에 들어가고는 원했던 대학 생활이 맞는지 불안했다. 덜컥 고학년이 돼 취업을 준비할 때는 내가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기는 한 걸까 불안했으며, 좁은 문 비집고 들어간 회사에서는 이런 쳇바퀴 도는 생활을 평생 반복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그런 나날들 속에서 우리는, 특히 나는,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불안했다. 타인에게 둥글지만 나에게는 혹독한 이상한 성격을 가진 나는 스스로 잘살고 있다고 다독이는 때가 거의 없는데, 친구에게 축의금을 건넨 그 날, 드물게도 내가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20대를 잘 보냈고, 그렇게 잘 커서 일하고 있으며,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친구에게 이 정도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는 사실이 대견했다.
그날 친구에게 건넨 100만 원의 돈은 밤이고 주말이고 이어지는 회사 일에, 돈 버는 게 이렇게 고생스럽다면 차라리 벌지 않고 쓰지 않으며 살겠다고 생각했던, 돈이 주는 가치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지출이었다. 100만 원짜리 시계를 사거나, 100만 원짜리 호텔에 묵는 것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의미가 있는 지출.
어쩌면 산다는 것의 의미는 특별한 데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마음을 전해야 할 때 마음을 전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불안한 가운데 이어지는 삶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값진 의미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대단한 성공도 좋고 특출난 출세도 좋지만, 이런 정도의 마음을 전하며 살면 되는 게 또 삶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친구에게 축의금 100만 원을 건넨 그날 나는 불안함 대신 훈훈함의 감정만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친구의 결혼은 2년 전이었다. 이 글은 2년 전 이맘때 친구에게 축의금을 전했던 기억을 되살려 쓴 것이다. 그사이 친구는 아기를 가져 최근에 출산했다. 출산 예정일 한 달 전에 친구를 만나 아기 건강하게 낳으라고 장어 덮밥을 사줬다. 또, 아기 낳으면 우울해지기도 하고 머리카락도 푸석해진다던데, 육아하면서 한 번씩 뿌려 기분도 머릿결도 관리하라고 은은한 향의 헤어 미스트도 선물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가 건강하게 아기를 낳길 바라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출산 뒤 우울감을 조금이라도 덜길 바라며, 이 정도의 마음은 무리 없이 전할 수 있구나. 큰돈을 쓴 건 아니었지만, 내가 여전히 일하고, 돈 벌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가치 있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금방 친구네 아기 돌이 찾아올 것 같다. 그때는 또 그때에 맞는 선물을 하나 해야겠지. 더 정신없이 살다 보면 친구네 아기 대학 간다고, 결혼한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눈떠보면 그런 날이 와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워지기도 하는데, 그때는 또 그때에 맞는 마음을 전할 수 있게 앞으로도 일하고, 벌며, 그렇게 착실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