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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드는 사람 지민규 Oct 28. 2020

서울에서 니콜 키드먼을 만났다

여섯 번째 떠드는 글

2014년 10월. 서울에서 니콜 키드먼을 만났다. 2002년 12월에 영화 '물랑루즈'를 보고 팬이 되기 시작해 니콜 키드먼을 배우로, 한 사람으로 참 열심히도 좋아한 지 꼬박 12년 만에 니콜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것에 시큰둥해하는 성격을 타고난 나는 살면서 딱히 좋다고 느끼는 게 잘 없는데, 대신 하나를 좋아하면 아주 깊게 또 아주 오래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니콜 키드먼은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다.


이번 글에서는 또래 친구들이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던 그 시절에 조금은 독특스럽게도 혼자 묵묵히 니콜 키드먼을 좋아했던 나의 10대 시절과 12년의 세월을 건너 니콜 키드먼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었던 나의 20대 중반 어느 하루를 회상해보려 한다. 조금 긴 글이 될 것 같은데, 간추리자면 12년 만에 계 탄 덕후의 이야기이다(덕후는 계를 못 타기 마련인데 나는 운 좋게 계를 탔다!).




니콜 키드먼을 좋아하게 됐다

© 20th Century Fox. 영화 '물랑루즈'에서 '새틴'을 연기한 니콜 키드먼.

2002년 12월. 겨울방학을 맞은 중학생이었던 나는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가 볼 만한 영화를 찾다 '물랑루즈'를 골라왔다. 그 시절부터 이미 영화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 몰입해 보는 걸 선호했던 나는 가족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야 빌려온 비디오테이프를 재생기에 넣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고른 영화인 '물랑루즈'를 별생각 없이 재생해본 그날 밤, 나는 '새틴'을 연기한 니콜 키드먼에게 완전히 매료됐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니콜 키드먼에게 마음이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경상남도에서 경찰인 아빠 밑에서 나고 자란 것 치고는 별날 만큼 남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아름답고 슬픈 인물 '새틴'의 드라마를 섬세하게 그려낸 니콜 키드먼의 표현력이 와닿았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물랑루즈'에서 니콜 키드먼이 유독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나는 두 달 넘게 이어진 겨울방학 내내 과장 없이 '물랑루즈'를 서른 번은 돌려봤다. 개학을 해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니콜 키드먼을 좋아하는 마음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아, 시간이 날 때마다 니콜이 출연한 영화들을 모두 찾아봤다. 중학생이 보기에는 너무 우울했는지도 모르겠는, 니콜 키드먼이 '버지니아 울프'로 출연해 존재한다는 것의 무거움을 그렸던 영화 '디 아워스'도 스무 번은 돌려봤다.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영화를 모두 챙겨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오프라 윈프리 쇼나 엘렌 쇼 같은 토크쇼에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영상도 열심히 찾아봤다. 사전에 모르는 단어를 검색해가며 니콜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도 착실하게 읽었다.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니콜 키드먼을 좋아하고부터는 영어 공부를 딱히 하지 않아도 영어 과목은 항상 만점 가까이를 받았다. 다른 친구들이 문제집으로 영어를 공부할 때 나는 니콜 키드먼을 통해 영어를 공부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그 US, 보그 파리, 보그 차이나 등 니콜 키드먼이 커버로 등장한 전 세계 잡지도 악착같이 모았다. 얼마나 열성적으로 수집했던지, 미국 보그 본사에 과월호를 팔라며 대뜸 메일을 보낼 정도였다. 수년 전 출간돼 진작에 절판된, 니콜 키드먼이 명화 같은 모습으로 커버를 장식한 미국 보그 1999년 6월 호였는데, 너무나 갖고 싶었지만 구할 길이 없었던 나는 "분명 여분으로 몇 권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나한테 한 권만 팔 생각 없냐"고 미국 보그에 연락을 취했다.


물론 미국 보그는 나에게 과월호를 팔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이베이를 뒤져 캐나다에 사는 메리라는 사람과 중고 거래를 해 결국은 그 잡지를 손에 쥐어냈다. 한 달여를 기다려 캐나다에서 소포가 도착한 그 날 아침, 정성스레 소포를 뜯어보며 뛸 듯이 기뻐하는 나를 보고 우리 엄마는 거의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이렇게까지 덕심을 드러낼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니콜 키드먼의 팬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운영에 꽤 진지했던 나는 부운영자도 구해 카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장미가족의 포토샵 교실'에 가입해 독학으로 배운 포토샵으로 카페 대문도 열심히 꾸미며 열과 성으로 팬카페를 꾸렸다.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서 공부를 마냥 등한시할 수 없었던 나는 학업을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카페를 폐쇄했지만, 운영하는 동안 회원을 1,500명 가까이 모을 만큼 팬카페에 진심이었다.


나의 휘황찬란한 그 시절의 덕질을 더 늘어놓으려면 더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적당히 늘어놓아 보자면 이 정도다. 이렇게, 또래 여자아이들이 세븐이나 동방신기를 우상으로 모시고, 또래 남자아이들이 이효리나 보아를 우상으로 모시던 그 시절, 나는 조금은 독특스럽게도 혼자서 묵묵하게 니콜 키드먼을 열심히, 아주 열심히 우상으로 모셨다.



니콜 키드먼을 만나게 됐다

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어쩌면 10대만이 보일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니콜 키드먼에게 모두 바친 나는 훌쩍 커 20대 중반이 됐다.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도 다녀와 먹고살 길이 당장의 고민거리가 된 나는 10대 시절만큼의 열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영화를 개봉일에 맞춰 보고, 커버로 등장한 잡지도 구매하며 내 삶에 떼어낼 수 없는 일부로 니콜 키드먼을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2014년 9월 29일, 며칠 뒤인 10월 2일에 니콜 키드먼이 최초로 한국을 찾는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2002년 12월 '물랑루즈'를 처음 본 그날부터 2014년 10월이 오기까지 12년의 세월 동안 니콜 키드먼의 한국 방문이 몇 차례 추진되기도 했지만, 번번이 무산돼 아쉬움만이 가득이었는데, 드디어, 니콜 키드먼이 한국에 오는구나. 이제 볼 일만 남았구나. 기사를 읽고 나는 매우 설렜다.


그러나 나의 설렘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럭셔리 시계 브랜드 '오메가'의 홍보대사인 니콜 키드먼은 새로운 여성 시계 라인 런칭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것이었는데, 슬프게도 런칭 파티는 VIP만을 초대하는 비공개 행사였다. 그리하여 기사에 공개된 정보라고는 10월 2일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행사를 진행한다는 짤막한 내용이 전부였다. 아니……. DDP 엄청 넓은데……. DDP 면적 85,000㎡라고……. DDP 무슨 관에서 하는데……! 몇 시에 하는데……!


12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쉽게 놓칠 수 없었던 나는 10여 년 전 미국 보그에 그랬던 것처럼 오메가 코리아 측에 메일을 보냈다. 오랜 팬이라 먼발치에서라도 니콜 키드먼을 보고 싶으니,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좀 알려 줄 수 있겠냐고. 행사에 방해되지 않게 입장하는 모습만 입구에서 조용히 지켜보다 떠나겠다고.


애석하게도 오메가 코리아는 나에게 회신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 혹시 더 공개되는 정보가 없는지, 초대된 VIP들이 SNS에 흘린 정보는 없는지 온라인 세상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행사 바로 전날인 10월 1일 늦은 밤까지도 나는 '10월 2일에 DDP에서'를 제외한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무심하게도 10월 2일의 아침은 밝았다. 그래. 운명이면 만나겠지.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작정도 계획도 없이 DDP로 향했다. 사는 집에서 버스로 40여 분을 달려 DDP에 도착하고는 주린 배를 빵 하나로 대충 때우고, 곧바로 넓기도 넓은 DDP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니콜 키드먼을 만날 운명이 아닌 모양이었다. 점심이 지날 때까지 몇 시간을 돌고 또 돌고,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뒤져도 도무지 '오메가'의 'ㅇ'도 보이지 않았다. '할 만큼 했으니 어쩔 수 없지……' 이때쯤에 나는 니콜 키드먼을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깔끔하게 포기하기에는 마음속에 미련이 덕지덕지 남아, 30분 정도만 더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고 그래도 못 찾으면 정말 집에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한이 많아 죽어서도 이승을 못 떠나고 어딘가를 맴돈다면 그곳은 DDP일 거야……' 마음속으로 한스러운 생각을 하며 마지막 30분을 터덜터덜 걷는데, 저기 귀퉁이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수십 명의 사람이 분주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저게 뭐야?' 나는 걸음을 재촉해 가까이에 다가갔다.


니콜 키드먼을 만날 운명이 아닌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발견한 현장은 오메가 행사에 쓰일 포토월 준비에 한창인 현장이었다. 행사에 동원된 스태프들은 하얀 벽에 큼지막한 오메가 로고도 붙이고, 군데군데 페인트칠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사진 기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었고, 경호 업체에서 온 경호원들은 대열을 맞춰보고 있었다.


니콜 키드먼을 만나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30분 정도만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다 발견한 오메가 행사 현장.

여기다. 여기에 서서 기다리면 니콜 키드먼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나는 행사 준비로 신경이 곤두서 보이는 스태프들과 엄청난 체구의 경호원들을 피해 저기 끄트머리에 한 그루의 묘목처럼 자리를 잡고,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서서 니콜 키드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거의 4시간쯤을 가만히 서 있었을까.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인지 배우 김성령, 김윤진, 권상우부터 빅뱅의 탑까지,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등장한 유명인들이 내 눈앞을 휙휙 지나갔다. 모두 근사한 사람들로 평소라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겠지만, 그날 나의 머릿속은 온통 니콜 키드먼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니콜 키드먼의 등장이 늦어도 너무 늦어졌다. 첫 참가자로 배우 김성령이 입장한 뒤로 2시간 가까이가 지났고,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입장한 뒤로도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는데, 니콜 키드먼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사진 기자들도 한 명 두 명 철수하기 시작해, 니콜 키드먼은 어디 다른 입구로 비밀리에 들어간 것이 아닌지, 어디 다른 곳에서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초조해졌다.


불안한 마음에 발을 동동거리기 시작한 게 30분을 넘어설 무렵, 저기 먼발치에 딱 보기에도 스케일이 다른 크기의 밴이 느린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그 밴의 움직임을 뒤따랐다. 곧이어 밴이 멈춰 서자 어디선가 한달음에 달려온 오메가 관계자가 조심조심히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가 내렸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주변의 공기마저도 다르게 만들어 버리는 듯한 누군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렸다.


아. 니콜 키드먼이다.


반짝이는 보석 장식이 달린 벨트를 포인트로 맨 검은색 롱 드레스 차림을 한 니콜 키드먼의 실물은 무척 비현실적이어서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원래도 180cm인 큰 키에 1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으니 신장이 초현실적으로 커 보였는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같기도, 다른 행성에서 온 신비로운 존재 같기도 했다. 피부의 광채는 행사에 동원된 LED 조명 2만 개보다 밝게 빛나는 듯했고, 작게 작게 웨이브진 금발 머리는 정갈하게 주름 잡힌 샴페인 골드색 실크 같았다.


무엇보다, 할리우드 배우 중에서도 여신이라 불리는 니콜 키드먼의 얼굴은 그림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움이었다. 움직임은 또 얼마나 우아한지 고개를 아래로 떨구는 작은 행동에도 기품이 흘러넘쳤다. 이렇게 과하고 부담스러운 묘사들 하고 싶지 않지만, 니콜 키드먼은 정말 그랬다. 물론 나는 니콜의 너무 오랜 팬이라 무조건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겠지만, 나의 표현력이 니콜 키드먼의 실물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할 정도로 니콜 키드먼은 아주 근사했다.


니콜 키드먼은 포토월에 입장하기에 앞서 잠깐 주변을 둘러봤다(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을 찾는 듯도 했다. 모든 정보가 비공개였기 때문에 찾아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어안이 벙벙해 넋 놓고 있던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찰나의 순간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니콜 키드먼에게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은 욕심에 부산스러운 꼴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 그저 작게 손만 흔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니콜 키드먼도 답례로 손을 흔들어 주기에 나는 손으로 하트표를 만들어 나름대로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웃어 보였다.


그러자 니콜 키드먼은 여왕 같은 미소를 하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기회가 된다면 싸인을 받을 생각으로 챙겨간, 니콜 키드먼의 얼굴이 표지 전체를 채우고 있는 잡지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자신의 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나한테 와줄 필요까지는 없는데……' 점점 나에게 가까워지는 니콜 키드먼을 보며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몇 초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막상 니콜 키드먼이 내 앞에 서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성큼 다가온 니콜 키드먼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내 삶의 절반 가까이의 시간인 12년을 당신의 팬으로 보냈다고. 오늘 보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니콜 키드먼은 고맙다고 답했다.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나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니콜 키드먼은 내가 챙겨간 잡지에 싸인까지 해주고서야 수십 명의 사진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포토월로 입장했다.


© bntnews(bntnews.co.kr). DDP에서 열린 오메가의 새로운 여성 시계 라인 런칭 파티에 참석한 니콜 키드먼.

니콜 키드먼이 포토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행사장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 모습을 보고서야 나도 자리를 떴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집으로 바로 향하지 못하고, DDP 근처를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아침부터 늦은 점심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걷던 DDP를 니콜 키드먼을 만난 뒤에 다시 걸으니 울컥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그렇게 열심히 좋아했던 사람을 만나는 날이 오는구나.


여기저기 떠들며 시끄럽게 자랑하면 이 감정들이 다 날아갈 것 같아, 혼자서 조용히 되짚어보며 오늘의 설렘을 내 마음속에 온전히 저장하려 애썼다. 그렇게 나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니 그렁 괴어 있던 눈물이 후두두 흐를 정도가 됐다. 어두운 시간에 어디 나를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떨어지는 눈물을 닦는데 혼자 괜히 민망했다. 아니, 이 나이 먹고 좋아하는 배우 봤다고 울기까지 할 일이야?


울 일이었다. 과연 울 일이었다. 울 일은 울 일인데, 눈물이 흐른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너무나 좋아하는 니콜 키드먼을 실제로 보고 대화까지 나눴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니콜 키드먼을 찾아온 팬이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도 왜인지 완벽한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니콜 키드먼이 비공개 행사가 아니라 많은 팬이 찾는 영화 시사회로 한국을 찾았다면 아마도 그와 같은 분위기의 만남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후두두 흐른 눈물의 또 다른 이유에는 그 시절의 순수했던 내가 소환됐다는 사실이 있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취업 준비에 한창인 취준생 신분으로, 10대 시절의 나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려고 작정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약도 없이 몇 시간을 기다리는 열정, 그런 열정은 이제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물론 니콜 키드먼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관심보다는 대학 졸업과 취업, 돈벌이에 대한 고민만이 깊어가던 때였다.


나는 아마도 큰 고민거리 없이 니콜 키드먼을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었던 10대 시절의 나를 알게 모르게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내 세상의 전부일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내 세상의 전부여도 괜찮은 그런 시절. 어두워진 DDP 거리를 걸으며 내가 흘린 눈물은 니콜 키드먼을 만나서이기도 했지만,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서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마음 아직 여기에 있었구나. 다 사라지지 않았구나.



니콜 키드먼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0년 10월이다. 니콜 키드먼을 만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니콜 키드먼을 좋아하기 시작한 지는 무려 18년이 지났다. 물론 나는 여전히 니콜을 좋아하고 있다. 아주 열심히 니콜 키드먼을 좋아했던 10대 시절과 12년의 세월을 건너 니콜 키드먼을 만나볼 수 있었던 그날의 설렘을 되돌아본 글을 마치고 문득 나에게 니콜 키드먼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네가 그렇게 좋아해봤자 그 사람은 네 존재도 몰라" 누군가를 깊이 있게 덕질해본 사람이라면 주변으로부터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요즘에는 꽤 많은 사람이 덕질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이 덕질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덕질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은 의미 없는 것이 될 수 없다.


스타와 팬의 관계는 환상에 취한 팬이 일방적으로 마음을 내어 주는 형태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쏟는 만큼, 그들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다. 그들은 잡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별이지만, 그 별이 뿜어내는 빛은 우리에게 재미를 주고, 감동을 주고, 환상을 주고, 영감을 준다. 때로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주기도 한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별 하나를 나의 세계에 띄워 놓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이다.


니콜 키드먼은 배우로서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빛나게 한 스타가 지금도 망가지지 않은 모습으로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아직도 엄청난 열정으로 커리어 하이를 이어가는 멋스러운 니콜 키드먼을 보면 어린 나이에 덕질의 대상으로 니콜 키드먼을 선택한 나의 안목을 칭찬해보기도 한다.


이제 와 다른 누군가를 니콜 키드먼처럼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니콜 키드먼은 내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좋아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배우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10대, 20대, 30대를 함께한, 또 그 이후까지를 함께할 유일한 배우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니콜 키드먼을 향한 소소한 덕질을 이어간다. 


글을 마치려는데 때마침 인스타그램 알림이 하나 울렸다. 니콜 키드먼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사진을 올렸나 보다. 나는 기꺼이 니콜의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좋아요를 누른다. 평소라면 여기서 그쳤겠지만, 오늘은 니콜 키드먼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이니 마음을 담은 댓글 하나도 괜스레 남겨본다.


Nicole. I will always be your biggest fan!





2014년 10월에 서울에서 니콜 키드먼을 만나고 1년이 조금 지난 2015년 11월에 런던에서 니콜 키드먼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는 본업(연기) 하는 니콜 키드먼을 보며 서울에서 봤던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런던에서 니콜 키드먼을 만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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