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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ylor L Jun 22. 2019

'아파트' 말고 '타운홈'

15평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30평 2층집까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오늘, 그날도 난 지금처럼 카페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내가 살던 서울 마포구의 그 카페는 반지하 구조여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날의 빛의 감촉 혹은 빗줄기, 날씨에 따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3년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고,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쾌적한 온도에서 커피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이유는 충분했다. 



그날 역시 나는 그 카페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출국까지 남은 날들을 헤아리며 떠나기 전까지 준비해야 할 소소하지만 귀찮은 일들과, 꼭 만나야 할 사람들, 먹고 싶은 한국 음식 등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무렵 습관처럼 하던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미국에서 새로 살 집을 인터넷으로 둘러보는 일이었다. 



내가 처음 미국에서 살게 된 인디애나의 집은 웹사이트를 통해 집의 평형대와 구조를 사진과 비디오로 자세하게 보여주고,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계약까지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었다. 그 때는 그것이 미국 아파트 업계의 당연한 관행인 줄 알았다. 그토록 간단하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세입자를 신뢰하는 방식으로 렌트가 이뤄지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야 미국에서의 첫 집이 무탈하게 구해졌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 와서 최근 4번째 집을 계약했다. 아파트 렌트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카페에 앉아 내가 살 집의 구조를 보여주는 비디오를 수십번쯤 보고 있으면, 늦은 나이에 새로 시작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앞으로 살게 될 집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뜨곤 했다. 가구배치는 어떻게 할까, 파티오에는 어떤 테이블과 파라솔을 둘까, 어떤 방을 침실로 쓰고 어떤 방을 서재로 쓸까, 소파는 어떤 것을 살까, 식탁은 얼마만한 것이 좋을까. 결혼은 이미 3년 전에 했음에도, 다시 신혼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신혼 때보다도 더 설레고 들뜨는 마음에, 아직 가보지도 못한 미국집이 꿈에도 나오곤 했다.



생각해보면, 설레는 게 당연했다. 남편과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의 인생 2막에 대해 이야기 하곤 했다. '유학의 형태로든 이민의 형태로든 해외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로 시작된 대화는 '해외에서 살아보자', '미국으로 가자', '유학이면 좋겠다', 로 점점 구체화됐다. 사소한 계획조차 없는 말의 잔치에 불과했지만, 어쩐지 신혼집은 단출해야 할 것 같았다. 미국에 가려면 결국엔 다 처분해야 할 것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비현실적이다 못해 황당한 이유에서였다.



당시로서는 터무니없고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그런 선택들이 결국 우리를 미국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신혼집을 구하는 우리의 셈법은 매우 단순해졌다. 우리가 가진 예산의 범위에서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이 빌트인 된 집. 결국 우리는 마포구에 있는, 겉모습만 그럴듯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의, 방 한 칸짜리 15평형 아파트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침실에서 내려다보이던 마포대로와 한강. by Taylor L


그곳에서 3년 3개월을 살았다. 둘이 살기엔 다소 작은 집이었지만, 사는 동안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빌트인 된 작은 냉장고 때문에 양가의 엄마들만 가끔 볼멘 소리를 했을 뿐, 우리에겐 꽤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게다가, 12층에서 내려다보는 8차선 마포대로와 건물사이로 언뜻 보이는 한강, 햇빛이 반사되는 오후의 빌딩숲이 꽤나 근사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잠시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살던 때를 제외하곤 4살 때부터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내게, 고층 아파트는 가장 익숙하고 당연한 주거형태였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 집을 알아보기 위해 아파트 임대업체들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니, 이름은 아파트인데 높아봐야 3층짜리 건물이었다. (땅덩이가 넓은 미국에서는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굳이 건물을 높이 올릴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던 건, 벌집처럼 촘촘하게 몰려 사는 것을 당위로 알았던, 서울 토박이의 무지 때문이었다고 해두자.) 



그러던 중, 넉넉한 수납 공간을 가진 복층형의 타운홈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2층짜리 집들이 7-8개씩 모여 1동을 이루는, 초록색 지붕을 머리에 인 하얀 나무집은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2층 홀에 넓게 차지한 옷장과 2개의 방에 각각 딸린 대형 옷장(Walk-in Closet--걸어 들어갈 정도로 큰 규모의 옷장), 수납이 가능한 계단 밑 공간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동했다. 15평형대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옷걸이 하나에 3개씩 옷을 걸고 남는 공간마다 꼭꼭 숨겨 수납을 한 덕에 얻게 된 '수납/정리의 여왕' 따위의 별명은 옆집 개나 주고 싶었으니. 


미국에서 우리가 2년간 살았던 첫 보금자리. 초록색 지붕을 머리에 인 동화같은 집.  by Taylor L


"우와, 정말 인터넷에서 보던 집이랑 똑같네요"


이사를 들어가던 날 집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move-in inspection) 동행했던 아파트 관계자에게 내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인터넷으로 수백번은 돌려보았던 동영상 속의 집과 완벽히 똑같은 집을 보자 신기하고 뭉클한 기분에서였다. 지금은 그 말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렸을지 알겠다. 미국에서 모델로 인터넷에 공개하는 집은 원칙적으로 똑같은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기에. 하지만, 그 때는 나의 감탄 앞에 아파트 관계자가 공감은커녕 왜 황당한 얼굴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빽빽한 서울의 15평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조용한 미국 소도시의 30평형대의 2층집으로의 공간 이동은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지리적 이동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느껴졌다. 띄엄띄엄 자리잡은 2층짜리 집들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마을 같았고, 파티오에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은 그야말로 '이국적'이었다. 그곳에서 2년을 살면서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감탄했고, 넉넉한 공간에서 사는 즐거움을 알았다. 물론 그러는 동안 종종, 서울의 숨막히는 고층건물들과 빼곡한 빌딩 숲의 그림자가 그립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근처 대도시인 시카고에 가서 욕망을 해소하고 돌아오곤 했다. (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을 '근처'라고 부르는 것이 미국살이에 적응했다는 증거라고, 지인들은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키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곳을 '보금자리'라 부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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