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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 Oct 01. 2021

당신의 공감능력이 싫어요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의 쓰기


학생회를 하면서 벽이 되었던 것은 너무나도 높은 내 공감능력이었다. 학생을 대표하는 자리, 협상하고 논리적인 구조를 끌어내고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자리. 회의를 진행하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그럼에도 잘 되지 않는다 해도, 어떻게든 머리를 싸매고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자리. 이런 일들엔 감정이나 공감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대표라면 모르겠는데 나는 집행위원장이었고, 그 자리는 일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결정된 일을 돌아가게 하는 자리였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공감하고 위로하는 능력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잘하는 것이었다.


학생회장을  때는 몇백명이 910일가는 농활에서 술을 얼마나 주문해야 적당한 건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국장이었던 친구가 말했듯이 그건 방향성을 그리는 자리였으니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많은  배우는 자리지만,  장점을 발휘할  있는 공간은 아니다.


일은 일대로 힘들었지만 더 힘든 건 사람과의 관계였다. 누구는 화나고, 누구는 우울하고, 누구는 응급실에 가고, 누구는 헛소리하고, 누구는 잠수타고, 누구는 널부러졌다. 나는 거기서 우는 애를 맡고 있었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의 아픔을 함께 해결해주지 못하고, 자기 것처럼 아파하고, 울면서 무너지는 애. 그래서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는 애.


마음이 따듯하다는 것. 나에게 붙는 수식어이지만,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것은 불필요한 것이 되기도 했다.



한 친구는 나에게 그랬다. 제가 유일하게 누나에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누나의 공감능력이에요. 누군가 힘든 이야기를 할 때 누나는 무너져버려요.


근데 어쩔 수가 없었다. 힘든 이야기의 단편을 들으면, 그 장면이 발생하기까지의 감정선과 고뇌와 아픔들이 고스란히 그려져버렸는걸. 그리고 그것이 마치 내 것처럼 나도 아파졌는걸. 그건 나를 힘들게 했고, 나는 젖은 낙엽처럼 눈물에 쫄딱 젖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나의 감정도 남의 감정도 다 받아와서, 젖은 것처럼 축 늘어져있곤 했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쓰는 것 뿐이었다. 쓰고 또 쓰고 또 썼을 때. 내가 그랬구나, 하고 나를 알아갈 때. 순간의 느낌들을 기록하고 붙잡아 둘 때. 가장 기쁘고 살아있는 것 같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나를 그 흐름에 맡길 때. 물 속에 잠긴 것 처럼 감정의 바다를 유영할 때. 또다시 내가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게 될거라는 불안이 꾸물거리지만, 그것도 그저 배경의 일부가 될 때. 내일도 나는 일어나기 싫을거라는 미래가 그려지면서, 동시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뭔가 행복한 일을 하고싶다는 욕심이 들 때.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볼 때. 그 마음을 썼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많이 힘들었고, 많이 울었고, 할 줄 모르는 것들을 되게 하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성장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역량보다 높은 일을 맡았는데, 내가 책임자였으므로 도망갈 데도 없고 못해서는 안됐다. 사수도 없었고 내부에도 관계 문제가 생겨 서로를 독려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거친 풍파가 나를 무너뜨렸다.


세상에는 열정만으로는 힘든 일들이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쉽사리 열정을 이유로 무리한 일에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그 애가 힘들어하던 것을, 지금의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불신하고, 철저하게 계획하는 사람이 되었다. MBTI는 3년만에 INFP에서 ISTJ로 바뀌었다.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싶다.


그런데 요즘은 기꺼이 달겨들었던, 그래서 아파하고 눈물흘렸던 그때의 감성들이 부럽기도 하다. 우울하고 힘들 때, 정말 힘들었지만, 그때가 가장 나를 가장 많이 돌아보았던 시간이다. 나를 돌본다며 그때 제일 잘 놀았다. 그때 쓴 글의 감성을 지금은 못따라간다. 그게 좀 아쉽기는 하다.


그때 '미래에는 지금의 나도 그리워하게 될거야.' 라고 쓰며 나를 위로하기도 했었는데.

다행이다, 그게 진실이어서.



이 길을 걸으면서 내가 흘린 것은 하나도 없다. 안해도 될 것 같은 경험도 있었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거기서 얻어낸 것들을 빠짐없이 주워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이제 나의 쓰기는 그때처럼 축축하지 않다. 사람이 달라졌으므로 쓰는 것도 달라졌다.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희망적이고, 조금 더 밝다. 힘들었던 이야기도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나로부터 벗어난 일이므로. 그때가 그립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


3년만에도 사람이 이렇게 바뀐다. 앞으로 100년은 더 살면서 수없이 바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게될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만으로 이렇게 다채로울 수가 있다. 쓴다는 것은 그 변화들을 확인하는 일이다. 100년짜리 글감이라니, 기대로 마음이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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