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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 Oct 12. 2021

도전에 한계란 없을까

P형 인간에서 J형 인간으로

나는 언제나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도전했다. 문제는 정확히 알아보기 전에 결정했다는 점이다. 정보를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거나, 추상적인 것을 향해 결정했다. 그 결과는 결국 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게 잘못된 결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 생각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 속에서 갈등했다. 인정해버리면 '게임, 오버'라는 소리와 함께 인생이 종칠 것 같은 두려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분노해서든, 슬퍼해서든, 그 선택에 책임져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수많은 선택의 이유들이 사라지고 내게 남은건 죄책감 뿐이었다. 모든 걸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한계란 없어!"라는 말은 때로 무책임할 수 있다. 결국 책임지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도전의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든 내 탓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애초에 한계는 없었는데, 그 한계를 만드는 것이 나이므로. 모두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못한다고 하면 그건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요즘도 새로운 선택을 앞두고 머리가 터지게 고민하고 있다.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 또 추상적으로 괜찮겠다고 시도했다간 망하겠구나. 그래서 섣부르게 좋다 싫다 판단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신중해진 건 좋지만, 그런 내 모습이 답답하고 싫기도 했다. 그런 내게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돌다리를 많이 두들겨보고 있나 보네요. 큰 결정이니, 정확하게 많이 두들겨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렇다. 신중함도 신중함 나름이다. 과거에 어떤 것을 '선택했던'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 단순히 '선택을 보류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내가 과거에 힘들었던 이유는 사실, 단순히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 머리로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현실 가능성을 따져보기보다는 감정과 이상을 앞세워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 가능성이라는 것이 해보기 전엔 모르는 게 더 많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또 결과가 좋지 않았던 건 오로지 내 탓만은 아니다. 내가 더 잘했다면 모든 결과가 좋았을까? 나는 그렇게까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때보다 신중함에 있어 경험치가 생겼으니,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해보는 중이었다. 그걸 알게 되니 갈팡질팡 하던 내가 더이상 밉지 않았다. 적어도 한 단계는 성장한 것이다. 무작정 뛰어들지 않고, 신중하게 돌다리를 두들겨보는 쪽으로. 더이상 대책 없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MBTI는 P에서 J로 바뀌었다.


감정과 이상을 잠시 미루어두고,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이것과 저것 말고 제3의, 제4의 안은 없는지? 이것과 저것의 장점을 종합한 선택지는 없는지? 이것의 단점을 나는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는지? 내가 얼마만큼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는지? 전과는 달리 여러가지 고민들을 해보고 있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 그것들을 정리하고, 나의 가장 중요한 가치에 견주어 고민해보면 된다. 그게 바로 '정확하게 많이 두들기는 일'이다. 


"한계란 없다". 맞는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도전 자체에는 그렇다. 분명히,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되는 일들도 있다. 그러나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시간이든, 돈이든, 에너지이든. 미친 물소처럼 돌진하다가 자원이 모자라 넘어지는 것만큼 서글픈 게 없다. 미리 최대한 따져보고, 적어도 현실적으로 무엇이 가능성이고 무엇이 역경일지는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도전하는 중에도 아주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나의 자원을 파악하고 있다면 도전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자원에 한계가 있다는 건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사람마다 자원이 다르고, 거기에 맞춰서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자원을 늘릴 수도 있고, 적절히 분배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끼며 천천히 오래 성장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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