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미 Nov 05. 2021

애도일기 (2)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되면, 남겨진 사람은 그 사람만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내 경우에는 안정적이고 부유한 경제 환경, 아빠가 계셨다면 일하러 떠나지 않았을 엄마, 기억하지 못하는 소중한 추억과 같은 것들.


"기억하면 뭐해, 어차피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데." 이것은 내가 슬픔에 대처하는 최초의 대응방식이었다. 슬프고, 힘들고, 아픈 일 모두 기억하지 않았다. 밝은 부분만 남겨두고, 모두 수면 아래로 내려버렸다. 덕분에 슬플 때 울지 못하고, 아플 때 달아나지 못하고, 그저 곪아가기만 했다. 또다른 부작용도 있다. 즐겁고 행복한 일들도, 그때처럼 언제 떠나갈지 몰라 나를 투과해 보내버렸다. 덕분에 행복해도 행복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어딘가 마취된 것처럼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세상 속에서 살아갔다.


아마 어릴 때부터 나를 보던 사람들은 "네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밝은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내게는 갑상선 항진증이 생겨 있었다. 갑상선 항진증은 자가면역 질환이고, 이것은 어떤 오작동으로 인해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는 항체를 생산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인해 내 면역세포가 갑상선을 공격했고, 갑상선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 것이다. 정확한 발생 원인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추측해보건대 내가 무시한 스트레스 반응이 몸에 질병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찰을 위해 엄마와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명치 아래쪽을 꾸욱 누르셨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터졌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혀서 꺽꺽 울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세게 누른 게 아닌데, 이정도로 아파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라고 하셨다. 엄마는 항상 밝게 웃던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가 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당황스러워하셨다. 그때 엄마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도, 나도 몰랐지만 내 몸에 서서히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이 나를 공격할 때까지.



갑상선 항진증은 몇 년간 약을 먹으면서 완치가 되었다. 살짝 부풀었던 목은 이제 평평해졌다. 나는 나를 공격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쳐왔다. 처음에는 남자친구, 그 다음에는 엄마, 그리고 결국 나로부터. 나는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었지만, 결국 내가 나를 공격하는 일을 중단해야, 내가 보호받을 수 있었다. 애도의 과정을 거치면서야 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내가 잘못해서 떠난 거다. 엄마는 내가 더 의지되는 존재이지 못해서 힘든 거다. 내가 더 똑똑하게 밝게 잘 살아야 한다.


이제는 단호하게 안다. 아니다. 아빠는 아빠의 삶이 그랬던 것이고, 엄마는 내가 의지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한다. 엄마가 힘든 것은 엄마의 삶이고,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


오랜 시간, 아빠가 떠나신 것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게 내 삶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마치 한처럼 남는다. 구천을 떠돌듯 가슴 속에서 맴돈다. 깊고 깊은 무의식 속에서 나에게 소리친다. 들어주지 않으면 더 악독해진다. 나를 망치고 공격하려 든다. 그것도 나다. 무당이 영혼에 빙의하듯이, 그래서 한을 풀어주어야 승천하듯이. 슬픔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이 해소될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이내 나를 돕는 존재로 바뀌어, 든든한 지지대가 된다. 내 세상 속에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존재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도일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