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와 빅브라더
냉전 시대가 시작될 무렵인 1951년! 미국의 해외정보국이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해서 보급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 책은 무엇일까요? 6·25 전쟁이 한창이던 우리나라도 그 지원금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1984』는 대표적인 반공 소설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비판 소설을 쓴 조지 오웰에게는 그래서 배신자, 전향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조지 오웰이 비판한 것은 사회주의 자체가 아니라 타락한 사회주의였습니다. 사회주의 자체의 생각이나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독재자들이 나타나서 잘못 운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조지 오웰이 싫어한 것은 독재로 빠지기 쉬운 전체주의적 경향이었던 거예요. 정확히는 독재화되는 전체주의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조지 오웰은 민주주의나 제국주의보다는 그나마 사회주의가 덜 전체주의화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회주의자를 표방했다고도 합니다.
『1984』는 1946년에 상상한 42년 후의 미래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1984년이라기보다는 ‘근(近)미래’ 정도로 조금은 불확실한 연도라고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이 소설에서 세계는 미국, 소련, 중국을 중심으로 한 3대 초국가로 갈리고, 이 국가들이 끊임없이 국지전을 벌입니다. 이 국가들이 전쟁을 하는 이유는 자원을 생산하되 대중에게 배분하지 않음으로써 계층 간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피라미드 계급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계급 구조는 최상층인 내부 당원과 그 밑의 외부 당원, 그리고 ‘프롤’이라는 대중으로 구성됩니다.
주인공인 윈스톤은 외부 당원입니다. 감정을 통제하고 빅 브라더에 대한 한없는 충성을 강조하는 체제에 의문을 가지고 텔레스크린을 피해 일기를 쓰는 등 금지된 행동들을 하면서 사소한 차원이지만 개인적으로라도 체제에 반항합니다.
그러다가 윈스톤은 줄리아라는 여자를 만나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피해 사랑을 나눕니다. 『1984』의 세계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사랑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나라에 있는 4개 행정기관 중 하나가 ‘애정부’거든요.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 이름이 애정부인데, 이름이 가진 뜻과 하는 일이 맞지 않지요. 사랑이 금지된 나라에 애정부라니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원전을 찾아보니 영어는 더 합니다. ‘Ministry of Love’ 예요. 왜 이런 이름을 가졌는지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야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윈스톤은 사상경찰에게 잡혀 고문을 받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반역자들을 바로 총살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뇌시킨다는 점이에요. 반역 정신을 가지고 죽으면 순교자가 되어 이 나라의 흠 없는 체제에 오점을 남기기 때문이죠. 윈스톤은 갖은 고문을 견디다가 말로만 듣던 공포의 101호실에 가게 되는데요, 이 방은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으로 고문을 시키는 곳이에요.
윈스톤은 결국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고 풀려납니다. 그 후 오히려 한가하고 여유롭게 지내지만 그는 권력이 원하는 체제 순응자가 되어버립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구는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입니다. 그래서 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의 명칭이 애정부였던 거죠.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만드는 부거든요.
어렸을 때 『1984』를 보셨다면 주인공의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는 마지막 구절 때문에 주인공이 죽었다고 기억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윈스톤의 상상이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이 마음속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순간 예전의 윈스톤은 그야말로 사망한 것이고, 체제에 순응하는 빈 껍데기만 남게 된 것을 총알이 날아와 박히는 장면으로 비유한 것이지요.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지만 반항기 가득한 윈스톤이 완벽하게 세뇌되어 체제 순응자가 되었기 때문에 『1984』는 지독한 새드엔딩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결국 전체주의가 현실을 넘어 정신까지 지배하게 된 거예요.
『1984』를 보고 나면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려는 전체주의나 정치, 권력 등에 대항해 개인적인 사고, 혹은 비판적인 사고를 강화시키지 않으면 결국 그런 것에 잠식되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경각심이 듭니다. 정치는 믿음이고, 믿음은 논리를 초월하기 때문에 설득될 수도, 그리고 설득할 수도 없으니까요.
참고 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