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도 Oct 22. 2023

러브콜과 노예계약


힙합동아리

  수능이 대박 났다.

  다만 1년 벼락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학.


  내 전략은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하고 나머지에 집중하는 것이었고 만점에서 수학의 틀린 점수를 뺀 것이 내 수능 점수와 가까웠다. 5년간 학교에서 잠만 잔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부모에게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를 당당히 합리화시켜 주며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자 그 길로 힙합 동아리에 찾아갔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위해 등록금을 내는 사람처럼 열심히 활동했다. 이제 미성년자도 입시생도 아니었다. 제약 없이 하루종일 춤추고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회라는 대회는 다 나갔다.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도, 무대 자체도, 이후의 뒤풀이도 모두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무대경험이 쌓이고 춤, 노래뿐 아니라 미디작곡 실력까지 늘었다.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늘어가는 선순환이었다. 대략 2학년까진 열렬히 응원해 주던 나의 절친들은 3학년이 되어서도 가요제 1등 상금을 들고 와서 술을 쏘자 양민학살 그만하고 어서 빨리 데뷔하라며 기분 좋은 핀잔을 줬다. 데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오디션

  당시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알리샤키즈 같은 실력파 여성 아티스트들이 세계를 정복한 시기였다. 나는 두 아티스트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중 춤과 노래를 다 보여줄 수 있는 아길레라의 곡으로 가요제에 나간 날이었다. 마침 초대가수였던 그룹 B의 대표가 무대 뒤에 있었다. 그는 대상을 받고 앵콜무대중인 나를 발견했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나는 캐스팅을 당했다.


  몇 번의 진지한 미팅이 있었다. 대표는 보아 같은 여자 솔로 가수를 만들고 싶어 했고, 코만 살짝 높이자며 급하게 성형견적을 뽑았다. B그룹의 방송국 스케줄에도 나를 불러 동행하며 믿음을 주려고 했기에 보호자까지 대동한 계약이 코앞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미투감인 (본인은 농담이라고 뱉었을) 은은한 성적발언으로 인해 계약은 막판에 어그러졌다.


  큰 기회를 놓친 것 같아서 며칠은 좌절감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이후 어쩐 일인지 꼬리에 꼬리를 문 여러 개의 기회가 이어졌다. 이제 아름아름 연결된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어리고 자신감 넘쳤던 나는 작은 회사의 몇몇 대표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들의 러브콜을 덥석 받아들이기에 나는 꿈이 컸다. 좀 더 좋은 회사에 가고 싶었다.


  휴학을 하고 정식으로 노래를 배워보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적극적으로 오디션을 다녀야 했을 시기였다. 천하의 아이유도 백번의 오디션을 봤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당시엔 그걸 몰랐다. 여기서 더 실력을 키워야 내가 원하는 회사에 갈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실용음악학원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검색하면 주부 노래 교습소 같은 것이 잔뜩 나왔다. 하지만 오랜 검색 끝에 기적이 일어났다. 당시 내가 손에 꼽게 존경하던 뮤지션이 보컬센터를 갓 오픈한 것이다. 그간 그녀의 음악적 행보는 나의 롤모델이었고 이미 마음의 스승이었기에 주저 없이 달려갔다.


  그녀는 넘치는 아우라를 뿜으며 사무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내게 노래를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안경을 치켜올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학원등록 같은 절차를 생각하고 찾아간 곳에서 난데없이 오디션을 보게 되었지만 겁 없던 난 지체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alicia keys 의 fallin’ 을 무반주로 불렀다.


  노래를 마치자 그녀는 매우 뜨악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담배꽁초를 비벼 껐다.

  그리고 계약서를 내밀었다.



노예계약

  당시 저울질하던 몇 개의 회사를 팽개친 계약이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내가 꿈꾸던 대형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멋진 음악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의 규모나 트레이닝 시스템 등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상태였다. 오로지 그녀의 존재로부터 생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무모한 계약이었다. 저렇게 멋진 그녀가 나를 원한다. 이건 해야 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계약기간 자체는 3-4년 정도로 적당했다. 문제는 첫 앨범을 발매한 시점부터 계약기간이 카운트되는 얼토당토않은 계약이었다. 당시엔 많은 계약들이 그런 식이었고 운이 따르지 않은 많은 재능들이 젊음을 담보로 희생당했다.


  지금은 웬만한 규모의 회사들에서도 트레이닝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최소한 ‘경쟁할 기회’를 갖는다. 좀 더 자금사정이 되는 회사들에서는 노래, 춤, 연기 등의 전문적인 트레이닝과 다이어트, 성형, 심지어 멘탈케어까지 받으며 성장한다. 하지만 20년 전에는 그런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거의 없었고, 아티스트에게 불리한 전속계약이 횡행했다.


  처음엔 그녀도 의욕적이었다. 몇 번의 데모녹음과 프로필 촬영도 있었고, 유명가수의 녹음에 참여하여 멜로디와 랩을 짜기도 했으며 피처링과 코러스 기회도 생겼다. 셀럽들과 함께 하는 사적인 자리에도 종종 나를 불렀다. 셀럽 무리에 섞여 오픈카를 타고 강남거리를 달리거나 시끄러운 클럽에서 잭콕을 마시는 것에 난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가 하자고 하는 건 뭐든 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나는 점점 방치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새 장난감에 금세 질렸다.


  어떤 써포트도 케어도 기회도 없이 시간은 악랄하고 성실하게 흘렀다.

  나는 혼자 연습하며 실력을 키웠고,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다.

  별 관심도 없는 국문과에서 성적 장학금을 받으며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다.

  할 일을 하며 버티면 곧 좋은 기회가 올 거라는 순진한 착각에 빠진 채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다.

  2년이 흘렀고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믈넷 겨울, 나는 대학을 옮기자고 결심했다.




이전 03화 JYP도 울고 갈 시스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