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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2. 2023

JYP도 울고 갈 시스템


IDOL

  나의 틴에이저 시절은 우상숭배로 가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 말 그대로 ‘아이돌 IDOL’이라는 고등학생 가수가 등장했다. 당시엔 미성년가수가 희귀했고, 나와 몇 살 차이 안나는 학생들이 TV에 나와 춤추고 노래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소녀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꿈을 보았다. 그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 학교를 땡땡이치고 방송국 앞에 줄을 섰다.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꺄아 꺄아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이름을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 무리 속에서 나는 미동도 없이 홀린 듯 무대를 응시했다. 화려한 조명과 심장을 때리는 커다란 음악소리에 매료되었다. 생전 처음 겪는 엄청난 자극이었다.


  돌이켜보면 가수 ’아이돌‘ 에게 쏟은 감정은 단순한 팬심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그들에게로 쏟아지는 애정의 에너지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무대 위에 내가 서있길 원했다. 저 환호와 관심과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것이 ‘나’ 이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원하고 있었다.



숨겨왔던 꿈

  그들은 반짝하고 사라졌고, 곧 H.O.T가 세상을 정복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 하는 것으로 (나의 작은)학교를 정복했다.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니 점점 더 신이 났고 유노윤호도 울고 갈 열정부자였던 나의 춤 실력은 쾌속발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댄스가 시시하게 느껴질 무렵 스트릿 댄스를 추는 크루에 들어갔고 힙합이라는 장르를 습득했다. 그렇게 고교 3년 내내 장래희망 조사란에 ‘댄서’라고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진학과 함께 내 꿈은 ‘가수’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가수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꿈이었다. 외모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꿈을 꽁꽁 숨긴 채 살아가던 중 춤으로 인기를 얻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2차 성징을 겪으며 할아버지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외모에서 조금씩 엄마 아빠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콧대의 윤곽이 드러나고, 열심히 붙인 쌍꺼풀액의 위력인지 속쌍꺼풀이 생겨났다. 어느 순간 나는 꽤 예쁘장한 축에 속하기 시작했다. 센터까지는 못되어도 실력 있는 메보나 메댄 정도는 소화할 수 있는 매력 있는 외모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외모에 자신감이 생기자 봉인은 해제됐다. 나는 좀 더 용기 있게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다.


  마침 당시에는 박정현, 박화요비, 박효신 등 실력파 알앤비 가수들이 출몰했다. 마침 모두 박씨였고, 나도 박씨였다. 어처구니없는 평행이론을 근거로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배운 적도 없었지만 그들의 난이도 높은 노래들을 곧잘 불렀다. 용돈은 몽땅 노래방에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실력이 늘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가 심수봉 뺨치는 노래실력의 꿀보이스였다.) 그렇게 유전자가 밀어주고 운명이 이끄는 대로, 나의 하루를 춤과 노래로 가득 채웠다. 학교에선 엎드려 자고 방과 후엔 노래방에 가고 댄스연습실에서 밤을 새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고등학교 3학년의 한 해는 자진하여 공부를 병행했다. 명문대를 나온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없다는 의무감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모처럼 훌륭해야만 한다는 강박의 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자식은 똑똑하다’는 생각을 종교처럼 확신하고 있는 부모에게서 풍기는 무언의 압박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자진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으로 치면 JYP에서나 가능한 연습생용 시스템을 혼자 구축한 것이다. (JYP에서는 연습생의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연습정지를 주고, 이후 개선되지 않으면 퇴출된다고 하다.) 3학년 1학기 마지막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다. 3번으로 찍고 자던 시절은 끝났다. 나는 꼴등에서 10등 안으로 진입했다. 여름방학엔 문화부 장관배 힙합 대회에 나가 전국 1등을 했다. 그리고 계속 야자를 했다. 집에 오면 (소음방지를 위해) 옷장에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노래연습을 했다. 춤, 노래, 공부 뭐 하나 놓치지 싫었다. 꽉꽉 채운 1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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