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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2. 2023

예대생


강박과 고립의 서막

  당시 서울예대의 실용음악과 보컬 경쟁률은 400대 1을 넘었다. 그 좁은 문을 입시준비 없이 한방에 통과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수년간의 무대경험이 입시준비 그 자체가 되었고 행운의 여신이 각 잡고 윙크를 날려 준 모양이었다.


  데뷔시켜 줄 조짐은 1도 없는 회사 하나 믿고 나이만 먹을 순 없었다. 대학에서 성적장학금까지 받아놓고 보니 이왕 할 거 음악을 공부하면 시간도 덜 아깝고 미래대비가 될 것 같았다.


  실용음악에 시옷도 모르던 나는 하루아침에 예대생이 됐다. 학교생활은 별천지였다. 춤이든 노래든 평생독학해 온 나로서는 외계행성 같았다. 학원에서 체계적으로 기초를 다지며 음악을 배우고 수년간 전문적인 피드백을 받아 온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와는 뭔가 ‘종’ 이 다른 느낌. 게다가 파트별로 잘하는 사람들만 모아놨으니 실력이 어마무시했다. 나는 잔뜩 긴장하고 말았다. 이대로 뒤처질 순 없다, 일단 살아남자.


 전공은 보컬이었지만 이론과 연주까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게 욕심났다. 그래서 남들은 입시학원에서 수년간 배우고 온 것을  혼자 힘으로 따라가기 위해 한계 이상으로 노력했다. 내 안의 강한 강박이 또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집중하고 정복해야 할 무엇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밴드보컬

  모든 실기와 발표에 전투적으로 임했다. 음악을 전쟁처럼 하기 시작했다. 그 포상으로 실질적 과탑이 되었다. 동기들보다 나이도 많고, 무대경험도 많은데 닥치고 열심히까지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막 성인이 된 1학년들은 술과 연애로 캠퍼스의 낭만을 채우며 젊음 탕진잼이 한창인 틈을 타, 혼자 변태처럼 연습했으니까.


  어쨌든 그 덕에 선후배와 교수님들 사이에서 실력자로 소문이 나자 오디션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회사가 있었고, 계약에 묶여있는 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어여삐 봐주신 교수님의 소개로 선배들이 만든 밴드의 객원보컬을 하게 되었다. 인디밴드였고, 정식멤버가 아니었기에 계약은 문제 되지 않았다. 애시드 재즈를 하는 밴드로 내가 추구하던 장르와는 갭이 조금 있었지만 합주도 공연도 재밌었고 멤버들도 너무 좋았다. 나는 좀 더 기동성 있게 일하기 위해 (+ 왠지 모를 낭만) 학교 앞에서 홍대 앞으로 자취방을 옮겼다. tv에 나올 것 같은 홍대 라이프가 시작됐다. 데뷔의 목마름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점점 고립되고 있던 나에게 한줄기 숨구멍이었다.




방황

  한편으로는 음악적 방황이 시작됐다. 힙합 알앤비 밖에 모르던 내게 학교는 훨씬 더 넓은 음악의 스펙트럼을 경험시켜 주었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나는 이기기 위한 음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잘해야 해. 최고가 돼야 해. 인정받아야 해. 모든 장르를 소화해야 해. 1등이어야만 해.라는 강박에 빠져있었다. 서서히 음악의 즐거움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오디션 제안만큼 많이 들어온 것이 입시레슨과 코러스세션 제안이었다. 나는 돈 버는 재미에 빠졌고, 돈 쓰는 재미에 빠졌다. 오랜 친구였던 반지하를 벗어나 신축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DSLR과 필름카메라를 사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현실도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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