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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2. 2023

소속


공중분해

  졸업이 와버렸다. 밴드 멤버들은 내가 정식멤버가 되길 원했다. 나는 회사에서 아무런 케어 없이 방치된 상태였기 때문에 멤버들이 나의 사장을 만나 얘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놓아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는 계륵이었다. 처박아 두고 잊어버린 장난감을 누군가 꺼내와 가져가려 하자 다시 흥미가 생겼던 걸까. 그녀는 나를 양보하지 않았다. 몇 년 간을 꿈쩍 않더니 갑자기 ‘너 나랑 앨범 안 낼 거냐’ 며 눈에서 레이저를 쐈다. 나에게 사장이기 이전에 존경하는 스승이었다. 단칼에 거절할 수도 없었고, 이제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희망을 가졌다.


  그렇게 다시금 눌러앉은 회사는 몇 달 후 그녀의 매우 사적이(라기엔 뉴스에 출현할 만한 범법) 스캔들로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헛웃음이 났다. 학교도, 밴드도, 회사도 아무런 울타리도 없이 나는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말 그대로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스물일곱 살 먹은 오리알. 알을 깨고 나가기에 너무 늦은 나이 같았다.





영혼도둑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악을 해야만 했다. 이제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였다.


     고등학교 댄싱부 - 대학 힙합동아리 - 엔터테인먼트 - 예술대학교 - 인디밴드


  어쩌면 나는 끊임없이 소속할 곳을 찾아 헤맸는지도 모른다. 쉴 새 없이 떠드는 바쁘고 시끄러운 마음을 안전하게 묶어둘 곳이 필요했던 걸까.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스스로 소속을 만들기로 했다.


  래퍼 1명, 비트메이커 1명, 보컬 겸 프로듀서 1명(=나)으로 구성된 힙합팀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찾은 사람들은 예술대학 동기가 아닌 첫 대학교의 힙합동아리 동기였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 무대 위에서 최고의 행복을 공유했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했다. ‘블랙 아이드 피스’ 같은 혼성힙합팀을 만들어 음원깡패가 되자며 의기투합했다. 데모를 만들고, 데모 CD를 부치고, 무대에 서고, 연습을 하고, 어쩌다 하게 되는 축가조차 최고의 퀄리티로 했다. 24시간 연습실을 구해 n분의 1로 월세를 내고 세 명이 8시간씩 나누어 썼다. 나는 새벽타임을 쓰게 되어 밤낮이 바뀌었지만 자정의 빈 도로 위를 자전거를 타고 매일 달리며 자유를 느꼈다.


  팀 이름은 ’소울 씨프 Soul Thief’ 였다. ‘당신의 영혼을 훔쳐가겠다’는 팀명의 포부에 걸맞게 우리의 음악은 희망적, 감성적이었고 꿈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꿈을 독려하고 성장을 이야기하고, 우정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모두 취업을 하는 나이였지만 우리 셋은 알바로 먹고살며 음악작업을 했다. 가난하고 무모했지만 꿈을 놓지 않았다. 음악의 퀄리티도 높았고 대중성도 있었다. 우리를 알아봐 주는 회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데모 CD를 들고 타이거 JK를 만나러 의정부 작업실 앞에서 죽 치고, 다듀를 만나러 홍대 어드메를 어슬렁거렸다. 힘들었지만 낭만도 있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종종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은 팀을 찢어 놓았다.


  팀 결성 3년 차,

  우리의 메인 래퍼는 방을 뺐고, 다단계를 시작했다.


  내가 서른 살이 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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