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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08. 2023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제가 PMS가 너무 심해서, 잘 듣는 약 있을까요?”



PMS는 이제 친숙한 용어가 되었다. 

생리 전에 경험하는 호르몬에 따른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를, 

병의 증상처럼 표현해 낸 말이다. 

우울함이나 불안 등의 정서를 나타내기도 하고, 

공격성을 보이거나 축 늘어지는 등 행동의 변화가 있다. 

사람에 따라 두통, 몸의 부종이나 심한 통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은 최소한의 진통제 말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철분과 마그네슘 앰플을 함께 드리거나 

작약감초탕, 계지복령환 등을 더하기도 한다. 



“어떤 증상이 제일 불편하세요?”

“제가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요. 웬만한 진통제로는 잘 듣지 않는데…”



사실 나는 생리통보다는 정서적인 우울감을 심하게 경험하는 편이었다. 

그마저도 첫 아이를 갖고 모유 수유를 하고, 

또 바로 둘째, 셋째 아이를 배고 수유하느라 

근 10년 가까이 월경 없이 지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지나오고, 

한동안 겪지 않던 생활을 하려니 매우 불편하다. 

그냥 그렇다고, 아이를 또 낳는 것 대신 

치러야 하는 비용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간혹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생리통이 심했지만, 

출산 후 생리통이 없어졌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다. 

어른들께서 표현하시기엔, 

아이를 낳고 몸이 더 건강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신다.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인정과 역할이 분명해지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몸부림이 

해소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 이런 이야기도 한두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성을 사귈 때, 여자친구가 생리 주기가 가까워지면 

관계에 더 적극적으로 변한다든가, 

월경 전 두통이 심했는데 

성관계 후 두통이 사라졌다는 얘기 말이다. 


좋으나 싫으나 여성이라는 몸을 가진 채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 주기에 맞춰 부닥치는 불편함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가 믿는 어떤 보상이나 인정을 얻을 수 있다면, 

고통이 덜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조금 위험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실재하는 현상이다. 


생리하는 기간에는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을 만큼 

통증이 무척 심각하여 

학교나 회사 등을 조퇴해야 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본다. 


이런 것을 그냥 체질로 정해놓고 보게 되면, 

중요한 진실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탐색해 본다. 

세상이 여성에게 어떻다고 믿고 있는지, 

여성으로서의 자신이 무엇을 원한다고 생각하는지, 

자기가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혹시 있는지 말이다. 


이분에게도 여성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상황과 관련된 생각들을 

살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용기 내어 물었다.



“혹시 결혼하셨을까요?”

“네.”

“실례지만, 아이도 있으세요?”

“아니요. 아이는 없어요.”



마흔을 넘겨 보이는 분 같아서 여쭈었는데, 

아이는 없으시다고 하신다. 

점점 더 질문이 조심스러워진다. 

상황을 파악해 보려는 나의 의도와 다르게, 

결혼하면 아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평가에 시달림이 있으셨을까 봐 염려되었다. 

다행히 불쾌해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를 갖고 싶어 했던 것은 맞지만, 

잘 생기지 않았다고 하신다. 

남편은 인공수정을 시도해 보자고 했지만, 

이분은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고 하셨다. 

아마도 자기 몸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크거나, 

자연스러운 것을 더 선호하시는 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시고 계시면, 혹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일은 못 하고 있어요. 한 일 년 정도 일하다가, 

뭐 무거운 거 들고 하다 보니까 허리가 잘못되고, 

이게 자전거 타고 넘어지면서 완전히 온몸의 컨디션이… 밸런스가 무너지고.”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이에요?”

“그…4년 전에”

“그것 때문에 통증이 계속 있으신 거예요?”



결혼 후 쭉 가정주부로 계시다가

4년 전쯤 바깥일을 하시면서 허리 통증이 시작되신 경우였다. 

허리 통증이 생리 시기와 겹치면, 

짜증이 나서 어떻게 하실 줄을 모르시겠다고 한다. 

생리가 가까워지면 통증이 심해질 거라는 

걱정 때문에 벌써 마음이 쓰여서 

정말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는 상황이라 한다. 

그래서 통증 때문에 계속 누워서 잠을 자는 방식으로 버티셨는데, 

그러다가 고관절 통증까지 심해지셔서 

불면증도 앓고 계신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탄이 절로 나왔다. 

허리와 고관절에 극심하게 통증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 

게다가 매달 생리통까지 주기적으로 겹치며 고통이 더해진다. 


그럼, 이분은 평소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계실까 궁금해졌다. 

아이도 없으시고, 일상을 유지하는 가사 외에, 

사회적으로의 자기를 느낄만한 역할을 

따로 하고 있지도 않으신 것 같았다. 

이분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걸까. 

온종일 아픔을 견디는 것으로 시간을 채우시는 걸까? 

망설여졌지만, 물어야 할 것 같다. 



“일을 지금 안 하시고 계신 상태고… 그러면 자기 존재감을 뭐로 느끼세요…? 

만약에 내가 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게 된다면 뭐라고… 생각이 드시나요?”

“살 이유가 거의 업… 흐흑…”



순식간에 눈시울이 빨개지며, 울컥하신다. 

마음의 생채기가 건드려졌나 보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말았다. 

밝은 인상과 달리, 아픔이 매우 깊을 것 같다. 


요즘에야 딩크족이 흔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70년 대생들 또래에서는 

어떤 시선을 느끼며, 무슨 생각들을 하면서 삶을 살아왔을까. 

아이를 원하는 남편과 인공수정을 거부했던 그녀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지긋지긋한 고통과 매일 씨름하는 삶이 얼마나 버거울까. 

그녀는 매우 여린 사람 같았다. 



“그렇죠. 그런 게 마음이 진짜 아프고 힘든 거거든요…”

“갑자기 그런 얘기하시니까… 어떡해…”

“제가 그냥 진통제 드리고 말아도 되는데, 

이게 더 근본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씀드리게 되는데요… 

통증보다 집중할 게 생기면, 

통증으로 나를 느낄 필요가 좀 줄어들 수도 있거든요. 

기분이… 좀… 괜찮으세요?”

“모르겠어요. 왜 눈물이 나지…”



잠시 그녀가 울 수 있도록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피로회복제를 하나 꺼내 건네며, 

그녀에게 의자에 앉지 않겠냐고 권했다. 

그녀가 눈물을 쏟고 조금 개운해졌으면 좋겠다. 



“그냥 약만 다… 그런 게 다…”

“그렇죠… 그냥 약으로 계속 덮고, 

다른 약으로 갈아타고, 약 용량 늘리고, 

잘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약사님께서 그게 뭐지… 말씀해 주시는데… 

그냥 그러니까 아무리 주위에서 걱정을 해줘도… 

그렇게 심리 상담을 해주시니까 제가 그렇게 갑자기…”



이런 걸 상담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삶에 대한 마음이 건드려지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렇게 느꼈나 보다. 

그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허리 통증도 계속 심하다 보니까 

저는 진짜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계속 아픈데, 

교수님께서 너무 약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이게 약하고 그거 뭐지…”


“근력 운동 하라고 하세요?”

“운동보다도, 너무 아파 죽겠는데, 

통증과 타협을 하라고. 약에만 의존하지 말고. 

막 그런 식으로 그냥…”


“통증과 타협하라는 게 무슨 말이었을까요…?”

“약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그러니까 약을 좀 줄여가면서 어떻게든 헤쳐 가보라는 건데…”


“어떻게요…?”

“답이 없잖아요. 진짜 답답한 얘기만 해. 

또 병원 가면 또 다른 데서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식으로. 

병원, 지금 이제 한 3년 동안 계속 몇 군데를 옮겨서 

OO도 가보고 OOO 병원에서 또 수술했죠. 

OO 병원에서도 다 해봐도 그런 게 없어. 

그러니까 지금 올 초부터 제가 병원을 아예 끊어버렸어요. 

그냥 이렇게 끊어버리고 약국에서 이제 약 괜찮은 것만, 

그냥 이제 좀 센 거 있잖아요. 

저한테 좀 맞는 거 이제 찾아서 지금 그나마 견디고 있는데… 

그러니까 답을 찾을 수가 없어 계속. 

답을 찾을 수가 없어. 

병원의 진짜 전문적인 분들도 그렇게 얘기하시니까. 

저는 진짜 허리 디스크 때문에 이제 아프면서 

이게 3년 넘게 계속 그러다 보니까는 

되게 진짜 죽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기존의 치료나 의사에 대해 서운함과 원망도 있으신 것 같았다. 

더 자세하게 물어봐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았는데, 

나도 아직 서툴고 당황 중이었고, 

중간에 다른 손님들도 대응해드려야 하다 보니 

대화의 맥이 자꾸 끊겼다. 




그녀가 어떤 사람일까 찬찬히 살펴보지만, 

쉽게 느낌이 오지 않는다. 

내면이 화려한 사람일 것 같기도 하고,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서로 협력하며 의지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실 것 같은 분위기다. 

직접 WPI 검사를 권유해 보기로 했다.



“저랑 심리 검사 하나 해보실래요?”

“그런 것도 있어요?”

“그냥 단순히 성격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살면서 어떤 점 때문에 힘들게 되는지 한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접 WPI 검사를 권유해 본다. 

검사 결과는 내성적이고 수줍은 로맨티시스트 성향과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휴머니스트 성향이 함께 나왔다. 

드문 유형인데, 

다행히 최근 상담 실습 기회를 가지면서 

들여다봤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디얼리스트 성향은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이 속한 문화적 가치와 규범들을 정서로 깊이 새기고, 

그 안에서 애정과 우정, 신뢰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으로 보였다. 

새롭고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면서도,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정해진 무엇이 있으면 추진력을 가질 수 있지만, 

혼자서는 남모를 고민이 많아 결정이 쉽지 않다.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하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4년 전에 잠깐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던 상황을 상상해 본다. 

갑자기 어딘가에 소속되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도 낯설어하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업무에 대해서도 

당혹스러움과 좌절감을 느끼셨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적으로 섬세한 부분들은,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다른 특성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감성적으로 무척 예민하시고, 

정서도 풍부하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보기엔 활발하고 사교적인 사람 같은데, 

사실은 부끄러움도 많고,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시고요.” 


“네. 아프기 전에는 굉장히 활발했는데.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요.”

“선생님 자신도 내가 외향적인 사람인지 내향적인 사람인지 

많이 헷갈리실 것 같아요.”



자신의 전문성이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도 낮았다. 

그녀의 표현으로 미루어보아 관계를 넓혀가며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공이나 재능을 살린 다른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던 상태로, 

바로 일찍 결혼하셨고, 

마흔이 넘어서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는 일을 

1년간 하시다가 허리 디스크가 터져버렸다. 


그녀는 왜 갑자기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경제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시작된 것이었을까?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을까? 

만약에 그녀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극심하게 지속되는 통증이 뜻하는 바를 상상해 본다. 

어쩌면 그녀의 사회적 욕구와 동시에 있었을지 모를 

현재에 머무르고 싶은 안정적이고 싶은 마음과의 

격렬한 충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약사 일을 하는 것이 두렵고 싫어서, 

재빨리 결혼을 한 후 아이를 열심히 낳고 키우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에게는 아이들에 대한 책무와 염려를 연결시킨 무기력감이, 

그녀에게는 허리 디스크와 PMS가 바로 

애매한 상황을 견뎌야 하는 혼란과 고통의 결과 같았다. 

마음을 분명히 정하지 못하면 계속 다치고 만다.



“지금은 자존감이 안 돼…”



다시 그래프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비교적 통념에 충실한 성향이고, 

그 틀을 잘 지키고자 한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대외적인 노하우, 

생활의 기준 등은 갖추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예민한 감수성에 비해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그와 관련한 인식이 매우 떨어져서 나타난다. 

주변 사람들의 신뢰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았다. 


불임의 문제와 일을 할 수 없는 허리 통증이 

그런 생각과 함께 맞물려 있는 것일까.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무도 자기에게 공감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렇게 그녀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그녀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일까, 

아니면 현실에서 실제로 받는 압박일까. 


20대에는 십자수를 하면서 보냈던 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고 하신다. 

그리고 노래가 좋아서, 

아프기 직전까지도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면서 행복했다고 하신다. 


그날 이 정도밖에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그녀가 어디선가 다시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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