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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08. 2023

그 남자의 진짜 사나이가 되는 법





“대상포진이세요?”


어르신께 항바이러스 약이 처방 나오면 

대부분 대상포진이다. 


출산의 고통이나 

통풍의 고통 강도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람마다 다르다. 


이 어르신도 통증은 없다고 하신다. 

그냥 피부에 뭐가 자꾸 나서 오셨다고. 


내가 앓았던 경우에도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진통제 2알씩 처방받으셔도 

너무 아프시다고 호소하시는 분도 계신다. 


같은 바이러스의 작용이라도 

너무나 당연하게 

제각각 반응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잘 알려져 있듯이 수두 바이러스와 같다. 

어릴 적 수두전을 치르다가 살아남은 

약간의 바이러스 녀석들이 

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우리 몸이 쇠약해진 틈을 타 

신경을 따라 2차전을 시도한다. 


바이러스를 우리 몸에서 

완전히 박멸할 필요도 없고, 

그럴 방법도 없기에 

그냥 살면서 한두 번쯤 경험하고 지나가는 일이다. 


어릴 적 수두를 앓으면 

며칠 아프고 만다는데, 

요즘은 예방접종을 하니까 

수두를 앓는 아이도 보기 드물다. 


성인 수두 환자의 경우 

어릴 때 앓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던데 

나는 주로 초기에 처방받을 때만 접하고, 

진행 경과를 볼 일이 잘 없어서 잘 모르겠다.


처방전을 주시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신다.


“예방접종을 했는데도 그러네”


어르신은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이미 받으신 상황이었다. 


예방이 최선이라는 현대 의학이다 보니 

병원에서 효도 백신이라면서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권유하기도 한다. 


예방접종은 우리 몸을 

살짝 미리 반응시켜 두었다가 

전투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면역체들이 높은 화력을 발휘하여, 

증상을 가볍게 하여 모르고 지나가게끔 한다.


기본적으로 잘못된 부분은 없는데, 

이미 어릴 적 수두를 앓고 

신경절에 남은 바이러스와 

얌전히 공존하여 잘살고 있는 사람도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굳이 하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고령에 대상포진으로 

정말 크게 고생하시는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그것이 이미 몸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잡한 내재적 요인 때문인지, 

바이러스 단독으로 

파괴력이 그렇게 드라마틱한지는 의문이다.


실재하는 위험과 막연한 두려움에 대해, 

우리는 백신으로 안심 값을 지불한다. 

확률은 잘 모르겠다. 

누구도 인생을 

똑같은 조건으로 두 번 살아볼 수 없지 않은가?! 


백신을 맞는다고 꼭 안 걸리고, 

백신을 안 맞는다고 

다 걸리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요즘 신경 쓰실 일이 좀 많으셨나 봐요.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그러던데…”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면역력이 올라간다거나 떨어진다는 말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내 몸 안에 공존하던 바이러스를 

상대하던 균형이 헝클어지고, 

내 삶의 다른 영역에 기운을 쏟고 있다는 것일까.


“바이러스약이 좀 비싸서 

오늘 약값이 좀 나왔어요”


“원래는 보훈병원에 다녀서 공짜인데, 

직장이 여기라서 한번 와봤어”


“아… 혹시 월남전 참전용사세요?”




나는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태어나서 

전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그저 서로 죽고 죽이게 되는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상황이라는 것밖에는. 


전혀 모르는 주제로 대화가 진행될 때,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깊은 상처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을 때, 

나는 솔직히 말을 잇기가 두렵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심코 무언가를 잡아당겼다가, 

무엇이 터져 나올지 무섭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다독다독 챙겨 넣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자신이 없다.




“그런데 전쟁에 참여한다고 해서 

다 전투를 치르는 건 아니야. 

가끔 게릴라전이야 있지.”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여 꺼내 놓다 보면, 

자기 행동에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모순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쳐졌던 사람들은 

그럴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의 조각들이다.


“외국 놈들이랑 싸우면 외형상 구분이 되잖아. 

그런데 월남전도 그렇고 

여순, 제주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야. 

인종이 비슷하면, 구분이 안 돼.”




노근리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과 같은 영화가 스친다.

 

마을의 주민들에게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미군이, 

전선을 넘으려는 자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에 따라 

총구를 겨눠온다.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검은 머리에 피부 노란 동양인, 

구분할 수가 없었겠지.


“그래서 다 죽이는 수밖에 없어.”




대중운동에 신은 필요 없어도 

악마는 필요하다고 했던가. 


나는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한 때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전쟁의 공포를 이용해서 

권력과 돈을 챙기는 

나쁜 사람들처럼 여기기도 했었다. 


그렇게 기존의 제도에 저항하고 싶어 하는 

나의 충동을 인정해 주고, 

이데올로기적 도덕적 우월감을 믿으며 

안심하며 지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건 간에,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미리 정해놓고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는 세상에 대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본다. 


어릴 때처럼 순수하게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을 내면화할 수가 없다. 

진실과 연대가 

함께하기 어렵다는 것을 무수히 목격했다. 


특권계층의 억압이라 느끼던 것들도, 

이제는 그저 그들의 자연스러운 

자기 삶에 대한 책임과 욕망으로 이해해 본다.


이제는 내 눈앞에서 

자기 경험과 

그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으시는 

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그저 듣는다. 

그러셨구나. 

그랬겠구나. 

그렇게 됐겠지… 


바이러스든, 적군이든, 

피아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서 

편을 나눠서 전투를 치러야만 한다면, 

치르기로 했다면, 

철저히 예방과 준비를 하고, 

다 죽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문제 해법에 대한 효용성과는 다른, 

감정적 안전을 위한 것이다.


연거푸 예방접종에 대해 언급하신다.


“예방접종을 맞았는데도… 어떻게…”

“이거 신경 비타민인데 회복에 좋으니까 같이 챙겨 드세요.”




배신감일까, 

이해되지 않는 혼란스러움이실까. 

억울하고 허망하신 모양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성급한 위로를 해보려 

얼른 서랍을 열어서 비타민 두 줄을 챙겨 봉지에 넣는다.


“그래도 다행히 접종을 미리 하셔서… 

그나마 덜 힘들게 지나가시나 봐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믿고 가시게 하는 편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이러는 편이 

쾌유하시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백신이 소용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거들어 드려야 했던 것일까?




몇 달 뒤, 

감기약 처방을 들고 

어르신은 다시 약국을 찾으셨다.


"대상포진은 이제 다 나으셨어요? 좀 어떠세요?"

"아직 그대로야"

"네???"


석 달쯤 지났는데, 

아직도 몸에 염증반응이 있다고 하신다. 


분명, 어떤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계시는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이건 분명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다는 신호인 것 같아요."


"신경 쓸 일이 있긴 하지."

"그게 뭘까요? 한번 말씀해주세요."


"사생활이라…"

"에이, 사생활이 아닌 게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한번 후련하기라도 하게 털어놓고 가세요."


나는 재촉을 했고, 

어르신은 못 이기는 척 말씀을 이어가신다.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졌어. 

그 사람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도 식물인간 상태였고. 

그래서 병원비가 다 내 앞으로 떨어졌어. 

그게 2천만 원이나 돼."


"세상에!"


"돈은 문제가 아닌데,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드네."


졸지에 중한 상태의 

두 여인의 치료비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난감하실까. 

보장도, 

기약도 없다.


"선생님 삶은 어쩌고요."

"그래도 사람이 힘들 때, 옆에 있어 줘야지."

"선생님도 선생님대로 사셔야죠…"

"……."


대상포진으로 표현되던 것은 

아마 이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이 어르신에게 

호흡기 바이러스까지 덤벼든 상태다. 


더 많은 말을 가슴에 묻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나도, 그의 선택에 뭐라 감히 대꾸를 하지 못한다. 


"힘들다고 도망가면, 남자도 아니지!"


약국 문을 열고 나가면서 

가슴 아픈 한 마디를 남기신다. 


대상포진도 낫고, 

그의 아픈 마음도 편안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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