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의 모유 수유를 2년씩 꽉 채웠다.
고지식한 면이 있는 나는,
첫아이를 품게 되었을 때부터
서점에 깔린 육아 서적들을 훑으며,
책에 적힌 대로
아이들에게 옳다고 여겨지는 방향의 믿음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이 과정에서 포기나 실패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야 했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집념을 키웠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불안과 강박과 집착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 시절 나는 내 인생의 문제를 눈 감기 위해,
엄마라는 자의식을 갖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전 세대의 피상적인 돌봄에 치우친
불완전한 양육을 용서하지 못했다.
아이를 주군을 모시듯,
신을 숭배하듯 약간의 광기를 담아서 대했다.
아이의 욕구는 당시 나에게는 절대 선이었다.
잠에 들었을 때는 제외하고
매 순간 아이의 안색을 살폈다.
꿈에서의 부름조차 응하겠다는 다짐에
늘 곁에서 함께 잠을 잤다.
나의 행동과 생각들은 모순과 합리화로 가득했었다.
가령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엄마로서 생활하는 모습을
정작 아이에게 보이고 있으면서,
여자아이가 큰 세상을 맘껏 누비며 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누르며,
세상에 대한 이론과 지식을 찾아다니며
거대 담론들에 취해 있었다.
정신적 보살핌을 우선시하면서도,
동시에 신체를 소모하는 돌봄 역시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상적인 엄마를 설정한 후
끊임없는 자기 포기와 자기 철회를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에게
인공품을 먹이거나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친환경으로 꾸며도
아이의 아토피는 사라지지 않았었다.
아이는 아마 자신을 돌보는
엄마의 불안을 함께 감당하고 있었으리라.
자연주의에 대한 환상과 모성에 대한 칭송,
자녀의 권리를 위한 사회과학의 설교에
완벽한 육아는 더 부추겨진다.
그렇게 자신을 갈아 넣는 육아의 밑바탕에는
대리 성취와 보상에 대한 신중한 욕망이 포진되기도 한다.
외견상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여겨져 선호되던 것들이
유구한 시간이 흘러 의미를 잃고,
보편적인 풍속과 당위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는다.
그것들은 때때로 각자의 사정에 따라
권위를 지키는 교조적 통제로,
실존적 문제를 회피하는 자학으로,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반발심을 모두 누르고,
격렬한 감정을 모두 소진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들이 과연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을까 하는
회한이 남는다.
내가 겪어왔던 방황과 아픔 속에서,
첫아이는 나에게 너무나 절대적인 구원자처럼 존재했었다.
사회가 권장하던 통념과 주변의 인정,
소소한 행복들과 나의 왜곡된 믿음이 버무려져
육아에 대한 지독한 몰입이 나타났던 게 아닐까 싶다.
“저기, 입 맛 돋게 하는 약도 있나요?”
반사적으로 비타민 B군과 아미노산이 조합된 영양제들과
시프로헵타딘이라는 포만감을 덜 느끼게 해주는 약이 떠오른다.
성급한 충동을 살짝 누르고,
누가 드실 것인지, 어떤 상황인지 묻는다.
“애 젖을 먹어야 하는데 도통 밥을 먹질 않아서, 큰일이야”
출산한 지 3주 된 딸의 조리를 해주고 계신 어머님이셨다.
조리원에 가지 않고 바로 친정집에서 조리를 시작하셨는데,
점점 생기를 잃고 우울해하며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한단다.
한순간 쏟아냈던 기력을 추스르고,
벌어진 관절이 여물기를 기다리며,
밤낮없이 두세 시간 간격으로 핏덩이를 안아 올려
먹이고 재우고 하는 시간을 알고 있다.
신체적인 자신감을 잃고,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좌절감을 견뎌야 한다.
어른 손바닥보다 겨우 조금 큰
꼬물락거리고, 좋은 냄새가 나는 경이로운 존재.
솜털 속에 폴딱이는 숨구멍과
오물거리는 귀여운 입술을
품에 안고 흠뻑 취해 보지만,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진 못한다.
사회적 지위와 경력에 대해 초조함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 정리를 미루고 있던 친정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을 함께 감당하게 되기도 한다.
잠투정을 겨우 달랜 후,
나비잠의 평온 속에서도
한 가지 뚜렷한 위기감이 덮치곤 한다.
이 불가역적인 존재 곁에서,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모유 수유의 강박적 그물에서 벗어난 나는 이제,
비교적 여유를 가지고 탐색을 해볼 수 있다.
가장 먼저 꼭 수유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어머님도 산모분도 그걸 원하신다고 하셨다.
그다음 그게 가능한 상황인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아기가 빨아들이는 모유의 양이 적절한지,
과연 누가 무슨 수로 어떻게 그것을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유축을 해보거나
아기의 체중이 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뿐이다.
산모는 정말 해보겠다고,
할 수 있다고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있을까.
“국물을 먹어야 젖이 나올 텐데, 애가 있는데 먹지 않으니 어쩌면 좋아.”
“따님이 원래 국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국물 잘 안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국 싫어해, 이전에도 국은 입에도 안 댔지.”
국물을 입에도 안 대던 사람이,
오로지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싫은 음식을 반복해서 먹어야 한다.
그것마저도 허용이 되지 않아서
식욕을 촉진하는 약을 찾는 상황에
순간, 숨이 막혔다.
아기라는 낯선 타인의 급격한 등장과
동시에 자기를 말살하라는 요구가 시작되는 것 같았을 것이다.
더 지속되면 산후 우울증이나 신경 기능장애라며
정신과를 찾아가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젖소가 된 기분이겠어요. 하하”
“어! 그 말을 하더라니까. 자기가 젖소가 된 것 같다고!”
예전에 산모들끼리 주고받았던 농담을 흘려보았다.
하지만 아직 걱정을 지우지 못한 어머니는,
차마 같이 웃지 못하고 속상해하신다.
사람이 아닌 일개 짐승으로
전락해 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 딸과
반드시 국물을 먹어야 젖이 나온다고 믿는 어머니.
어떻게든 해결해드리고 싶어서
병중 환자나 회복기, 수유기에
드시기 편한 앰풀 세트를 꺼내왔다.
“일단 뭐라도 먹어야,
산모도 건강하고 아가도 먹을 게 생기잖아요.
활력 비타민이에요.
밥 먹기 전에 이거 먼저 주세요.
한 모금씩밖에 안 돼서 먹기도 편해요.
그런데 이 약이 효과를 보려면,
국을 더 이상 주지 마세요.”
“국을 쳐다도 보기 싫대.”
“그럼요! 애 낳고 벌 받는 기분이었겠어요 ㅎㅎ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요즘은 굳이 국물 안 먹어도 돼요.
찜도 좋아요.
애 낳기 전이랑 똑같이 먹는 나라들도 많대요.”
지리적 문화적 특징 탓에 강조되어 오던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분명 한때 자연스러웠고,
유용했던 지혜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조화되어 획일적인 명령처럼 다가올 때,
누군가에겐 견딜 수 없는 불쾌감과
마음이 찢어질 듯한 고통의 체험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강력한 성장의 경험이 그렇게 퇴색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동안 조리해 주시고 아기 재우느라
같이 잠도 못 주무시고 어머니도 진짜 힘드셨겠어요.
같이 하나씩 드세요.”
“어후, 진짜 내가 죽겠어.
애는 안 먹지.
또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거기도 왔다 갔다 해야 되지.”
“아이고, 세상에. 병간호하러도 가셔야 해요?
어머니가 병나시겠네! 이거라도 좀 드세요.”
“아니야 됐어, 지금도 얼른 가봐야 돼.”
자전거에 앰풀 상자를 싣고 황급히 그녀가 떠나간다.
자기 욕구보다 관계에 더 큰 의미를 두며
가족을 돌보며 매여있을 그녀를 보내고,
내 마음에 헛헛한 균열이 생긴다.
따뜻한 책임감과 냉정한 소망 한 조각.
가족!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