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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08. 2023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을 때

개와 늑대의 시간



‘띠링띠링’


누가 들어오려나 쳐다보니, 

20대 젊은 여성이 문을 못 열고 있다. 


문이 고장이 난 걸까? 

그렇지만 조금 전만 해도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던 문이었다. 


무슨 일일까 자세히 보니, 

그 여성은 문을 밀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문에 떠밀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힘을 어디에다가 줘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 큰 성인이 

가게 문을 열 힘이 없다는 것이 신기해서 

한참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좀 도와드릴까요?”


희귀병이라도 걸려서 

근육에 이상이 있는 사람인 걸까? 


다시금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를 서글픔과 처연함이 가득하다. 

나이는 분명 20대일 것 같은데, 

이미 다 늙어버린 사람의 모습 같았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 네… 좀 뭐 좀 여쭤보려고… 

렌즈 관리액 말인데요. 

단백질 제거 기능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눈, 각막에도 

단백질 성분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이게 눈에 들어가면, 

각막의 단백질도 손상되는 거예요?”


“아… 음…“




사실 나도 예전에 

슬쩍 지나가면서 궁금했던 적이 있었지만, 

딱히 찾아보지는 않았던 부분이다. 


생화학 교과서의 그림들과 

계면활성제 등이 떠오르는데, 

뭐라고 확실히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는 내가 너무 창피해서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었는데, 

그런 태도 때문에 

더더욱 모른 채로 머문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냥 투명하게 모르면 모른다고 해버린다.


“글쎄요? 한번 찾아볼까요?”


그 사람이 나에게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그 순간을 배움의 시간으로 활용하면 된다.


“아, 각막세포가 재생이 빠르대요. 

그래서 식염수로 한번 헹구고 넣으면 더 좋긴 한데, 

너무 번거로우니까 이 정도는 그냥 쓰나 봐요.”




알게 된 사실에 대해서 궁금함이 많고, 

종종 관련해서 생각을 이어 나가며 

불안감을 가지는 분인가 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예민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아까 문을 열지 못한 건 

어떻게 된 일일까.


“렌즈 관리액 사용하시면서 찝찝하셨어요?”

“네… 눈이 자주 아파서. 

제가 일회용 렌즈를 이틀씩 사용하거든요.”




아마도 학생처럼 보이니 

렌즈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두 번씩 사용하게 되나 보다. 


그런데 그녀가 가지고 있는 걱정은 

정확히 무엇에 대한 불안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이 사용법을 적절히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운 것일까. 

제품의 안전과 관련한 세상에 대한 불신일까. 

아니면, 

자신의 취약한 신체에 대한 우려일까. 

셋 다일까?


예민하고 관념적인 사람이, 

자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태라고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무기력한 나머지 

가게 문을 밀고 들어올 힘조차 

내지 못했던 것일까.


“눈이 안 좋아지면… 어떨 것 같아요?”

“눈이 더 나빠져서… 책을 못 읽을까 봐 겁나요.”

“책이요? 책을 못 읽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글쎄요…”


“학생이에요? 전공이 뭐예요?”

“저… 저도 약…“


뜬금없이 책을 못 읽을까 봐 겁이 난다기에, 

책 읽는 것을 재밌어하는 학생인가 보다 싶어서 

전공을 물어봤는데, 

후배였다!


그런데 이 떨떠름한 반응은 뭘까? 

자신을 약대생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있어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말을 꺼내고 나서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무척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마음에 들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은 옷을 걸치고 외출한 사람처럼.


“와! 전공 어때요, 맘에 들어요?”

“저… 저는 이거…”

“왜요? 약대 가고 싶어서 간 거 아니에요?”

“저도 모르겠어요… 흐흑”


갑자기 그녀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 안에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았다. 

뭔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며, 

자신에게서 떼어내고 싶어 하는 듯이 느껴졌다.


“어디 다른 과 가고 싶었던 곳 있어요?”


“… 철학과?”

“문과네요? 그러면 왜 안 갔어요?”


“모르겠어요. 

그냥 그것도… 

거기 가면 저랑 비슷한 사람이 많을 것 같긴 한데… 

그리고 졸업하면 뭐 하죠? 

저는 어떤, 철학적, 논리적 개념을 다룰 자신도 없어요… 

자질도 없고 가망도 없는데 

가방끈 붙들고 있으면, 

엄마도 저도 더 세상으로부터 소외될 것 같고…”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섣불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충분히 관심 있는 것들을 탐색하며 

융합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새로운 개념을 알고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잘하는 수학 과목으로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이과에 갔고, 

중간에 아빠가 편찮으시면서, 

아빠를 평생 믿음직하게 

돌봐줄 환경을 세팅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의대도 못 갔고,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으며, 

그냥 점수에 맞춰서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집을 떠나 

자신이 태어난 곳에 와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마음으로 

약대를 오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어릴 때부터 

과학을, 약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럼, 그녀는 어쩌자고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스스로 만들었으면서 

왜 이 상황을 또 못 받아들일까.




“저는 저의 성취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제가 기대하는 저에 대해서도, 

저는 다 망했어요. 


더 최악인 게 뭔 줄 아세요? 

제가 최선을 다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영어를 못하면서도 영어 공부는 안 하고, 

아빠가 혼자 집에 누워있을 걸 알면서도 

밖에서 음악을 듣고 놀다가 들어가요. 


철학과요? 

겨우 시간이 맞는 철학 수업 하나를 확인하고 

교수님께 허락도 받았는데, 

수업 중간에 들어가야 하고, 

팀 활동으로 진행되는 게 쑥스럽다며 

점점 빠지게 됐어요. 


혼자서 도서관에서 읽어봐도 

진도도 안 나가고, 

내가 뭐를 하고 있는 건지, 

뭐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뭔가를 이룰 만큼 

저에게 엄격하지도 못하고, 

재능도 없고, 

능력을 키우려고 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어요. 


이런 제가 앞으로 더 산다고 한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저라는 재료부터가 썩었는데, 

저로서 뭐가 될 수 있겠어요. 

이런 저에게 지원하며 

고통받은 엄마 아빠만 불쌍한 거죠. 


저는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어요.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도 없어요. 

그리고 더 미치겠는 건, 

시간을 되돌려도 

제가 그때와 똑같은 나로 살았을 거라는 거예요! 

저는 저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는 태도 앞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가 살겠다는 건지 

죽겠다는 건지, 

후회한다는 건지 

계속 그렇게 살겠다는 건지도 헷갈렸다. 


다리가 부러진 채, 

날개도 꺾인 채, 

진흙밭에 던져진 새 같았다. 


어떤 위로와 격려를 보내도 

모든 것은 진흙에 파묻혀 

그녀에게 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 스스로 머리를 

진탕 속에 집어넣지는 않고 있었지만, 

도무지 빠져나올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약사 면허증이 하나 있으면 좋잖아요. 

노후 대비도 되고… 

급할 때 일도 할 수 있고… 

약대를 다닌다고 해서 

꼭 약사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저 학교 다닐 때는 영화 찍고 싶으셔서 

일부러 약대 오신 분도 계셨었는데… 

자기 하고 싶은 거 안정적으로 하고 싶으시다고… 

그런 얘기 많이 들어보기는 했죠…? 

어때요?”




어쭙잖게 겉도는 말들로 

그녀의 상황을 긍정해 볼 수 있도록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기대가 큰 사람들은 

종종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다.

자신의 행적과 관심, 생활 에너지가 

온통 한 곳에 꽂힌 채, 

아주 단순해지기를 갈망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쉽게 민감해지고 

혼란스러워하는 성향 탓에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기가 기대하는 

완벽한 환경에 대한 기준을 핑계 삼으며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그녀에게 

나의 말들이 스며들지는 못했으리라.




“맞아요. 그런 얘기들 많이 하죠. 

일단 약대 나오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된다고.”


그녀의 대답은 어딘가 한 겹 붕 떠서 

체념하는 듯, 

관조하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제는 잠이 안 와서, 

드라마를 봤어요. 개와 늑대의 시간”


“이준기 나오는 거요? 국정원?”


“네. 저는… 약사님이 얘기해 주신 대로 

그렇게 지내면… 

저를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어릴 적 부모를 청방 조직 보스에게 잃고 

국정원 요원이 된 <개와 늑대의 시간>의 주인공. 


그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청방 조직 소탕에 실패하게 된다. 

이후 국정원 언더커버 요원으로서 

또다시 복수를 시도하려는 순간, 

청방 보스가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주저하게 된다. 


증오의 대상에게 복수를 하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도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어버릴 터. 


혼란에 빠진 주인공은 

추격전을 벌이다 상처를 입고 

그만 기억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주인공은 

부모의 복수를 하려던 마음, 

여자친구를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 

자기가 어떤 마음을 가진 누구였는지 

모두 잊은 채, 


역설적으로 

자기가 파괴시키려 했던 

청방 조직의 충성스러운 일원이 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관련된 동료들이 

하나둘씩 다치고 죽어가도, 

자기 마음을 잃어버린 그는 

더 이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 채, 

그에게는 

맹목적인 충성만이 남았다. 


기억을 되찾은 후에도 

누가 내 편인지, 

누가 적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끝끝내 복수하려 했던 청방 보스마저도, 

그에게 어떤 

의미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개와 늑대의 시간, 

하루에 두 번, 

빛과 어둠이 바뀌는 시간. 


어스름한 풍경 속에서 

저 멀리 다가오고 있는 것이

내가 키우던 개인지 

나를 물어뜯을 늑대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시간을 말한다.




혼란에 빠진 그녀는 

십여 년 후 

사람들에게 개로 보이게 될까, 

늑대로 보이게 될까. 


그녀는 자기가 

개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늑대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약사라는 안정적인 타이틀을 쥔 채로 

그녀는 자신의 야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 


얼굴에 가면이 붙기 시작하면, 

과연 무사히 떼내어버리는 것이 가능할까. 




자기는 그 어느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는 그녀는, 

아마 약국 문을 

힘껏 열고 나갈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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