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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찬 Oct 19. 2020

아임 파인, 땡큐 - 부제(단풍국 워킹홀리데이) #15

#15 KEEP PORTLAND WEIRD

KEEP PORTLAND WEIRD


 미서부 로드트립이 끝난 후 난 혼자 남아 내 여행을 계속했다. 내 다음 목적지는 바로 포틀랜드.

킨포크의 고장, 힙한 도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 등의 포틀랜드를 감싸는 화려한 수식어들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공항에서부터 반겨주는 표지판부터 심상치가 않다.

내가 포틀랜드에 도착한 때는 이미 해가 다 지고 난 후였다. 해가 진 후에는 위험하니 택시를 타는 게 최선의 방법이지만 나는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숙소를 찾아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날씨가 조금 쌀쌀하다고 느꼈는데 그것보다 더 위에 있는 포틀랜드로 오니까 공기가 더 서늘해서 외투를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비가 내린 지 얼마 안 된 모양인지 도로 바닥이 젖어있었다. 포틀랜드에 대한 첫인상은 차갑고 추운 도시였다.


긴장하며 캐리어를 끌면서 구글맵을 켜고 숙소를 찾았다. 싸늘한 거리와 달리 여행자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한 호스텔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 쪽 끝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리셉션에서 방 안내를 받고 물어보니 오늘 호스텔에서 버스킹 공연이 있다고 날짜 잘 맞춰서 왔다며 환영해줬다. 궁금해진 나는 곧장 짐을 풀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노랫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서 천막을 쳐놓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천막을 쳐놓은 이유는 밖에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옆의 카운터에서 맥주를 팔길래 얼른 맥주 한 잔을 사 왔다. 비와 음악과 맥주라니 가히 환상적인 조합이 아닐 수가 없다. 비가 와서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고 여기 있던 사람들도 그 분위기를 더 즐겼다.


서로 소통하며 즐겁게 노래를 불렀고 처음에 있던 내 맥주 한 잔은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고 결국은 다섯 잔까지 마신 후에야 공연이 마무리가 되었다.

오랜만에 혼자 떠난 여행인 데다가 포틀랜드의 첫인상이 차가웠던 탓에 긴장을 많이 했는데 이 순간 이후로 이 도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포틀랜드에 가는 목적이 쇼핑인 사람들도 꽤 많이 있다. 그 이유는 포틀랜드에는 세금이 없기 때문에 “무세금이라니 그게 말이 돼?” 이 곳에서는 말이 된다. 물건을 사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든 가격표에 있는 가격 그대로만 내면 된다. 가격표에 있는 가격과 실제 내야 할 금액이 달라서 항상 많은 돈을 내고 동전 거스름돈을 왕창 받았었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포틀랜드는 브루어리가 유명한데 주류세가 없으니 맥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포틀랜드에 올 이유가 된다.

그리고 내가 포틀랜드에 반하게 된 결정적인 문구가 있다.

‘KEEP PORTLAND WEIRD’ 의역하자면 포틀랜드를 이상하게 내버려 둬라

즉, 바꾸려들지 말고 포틀랜드의 그대로인 모습을 내버려 둬라. 정도의 뜻인데 이게 이 도시가 지향하는 가치라고 생각하니 도시의 자유롭고 힙한 분위기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포틀랜드에서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동네는 따로 있다. 그곳은 바로 알버타 디스트럭트라는 곳인데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각양각색의 벽화들이 눈에 띈다. 이것만으로도 벌써 예술가의 동네라는 느낌이 든다. 도로 양 옆으로 많은 소품샵, 음식점, 펍 등이 늘어서 있는데 걸어가며 하나씩 구경해보니 똑같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가게마다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활기를 내뿜고 있어서 한 군데씩 방문해봤는데 주인들의 개성도 각기 다 달랐다. 마치 나를 오래 알았던 친구처럼 대했던 가게 주인도 있었던 반면, 손님이 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주인도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가게에 들어가며 주인장들과 한 마디씩 나누며 거리를 한 번 왔다 갔다 하니까 시간은 훌쩍 지나 벌써 해 질 때가 되었다.

사실 포틀랜드에서 노을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LA에서 봤던 보랏빛 노을과 노을의 색감이 비슷했다. 다만 선선한 날씨 탓인지 그때의 느낌과는 좀 차이가 있었는데 LA의 노을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면 포틀랜드의 노을은 왠지 모르게 조금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혼자 보는 노을이라 느낌이 묘해서 해가 지고 나서도 한참을 바라보다 자리를 옮겼다.

3박 4일간의 포틀랜드 여행이 끝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원래 누구랑 같이 여행 가는 것보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더 선호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여럿이서 여행 다니다가 막상 혼자 남겨져보니 ‘나는 누군가와 같이 하는 여행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좋은 순간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는 말, 어렴풋이 머리로만 공감하고 있었는데 직접 느끼며 제대로 공감할 수 있게 해 준 여행이었다. 고마워 포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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