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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26. 2020

수다 베틀에 물들다

초등학교 들어온 후 엄마 모임에서 수다 베틀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사실적인 내용을 아주 재미있게 잘 표현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결혼 전, 나는 "수다"라는 형식의 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즐기지도 못하는 편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방식은 끝장 토론이었다. 상대방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끝장을 내는 결국은 ‘내 말이 맞잖아’라고 끝나는 나만의 열린 대화의 광장.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닫힌 광장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입학했다는 사실은 단지 딸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었다. 엄마인 나도 똑같이 유아기를 졸업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의 엄마가 된 것이다. 아이와 함께 " 이인삼각의 걸음"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살다 보니 내가 몇 살인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딸은 물론이고 나 또한 입학 초기에는 매사에 서툴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처음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을 때 돌아가며 차례로 나이와 누구 엄마라고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 순서까지 오는 내내 다들 78년생 또는 80, 82년생들이었고 다들 “와 우리 다 동갑이네”라며 좋아하거나 "언니, 언니" 부르며 친숙해지는 분위기였다. 

‘아…. 뭐야 다들 자기들끼리 동갑이잖아’ 점점 소심해진 나는, 나도 모르게 주눅 든 목소리로 조그맣게 자기소개를 했다. 

예전의 내 나잇살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조그마한 목소리 웬 말이냐?


난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분명히 70년생이라고 말했었는데 누군가 되묻는다.


"아, 언니는 76년 생이예요?”

'누가 몇 년생인지가 뭣이 중한데……'. 나를 보며 웃으며 되물어보는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아뇨. 70년생이요. 내년에 오십 살이에요. 좀 늦게 결혼했어요. 앞으로 모두 친하게 지내봐요”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정확하게 모두 다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저 구석 자리에 앉은 언니가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언니라는 사실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아…. 그렇구나’라고 지나갈 것 같은데, 그 순간 나는 왜 그렇게 쭈뼛거렸는지, 그날 그 자리에서 내 나이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던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지 않았을까.     


아이들 학원이며 학교생활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겨우 한글만 속성으로 깨치고 입학한 우리는 이제 학교에서 뭔가 많은 것을 배우려 단단히 벼르고 왔건만, 이미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한 번 더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구석에 앉아 난생처음으로 들어보는 여러 가지 학습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느덧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누군가 집에서 감자탕 끓이는 법이라는 놀랍고도 친숙한 정보에 정신이 퍼뜩 들어 열심히 들었었다. 퇴근한 남편이 묻는다.

“오늘 학부모 모임 처음으로 갔을 텐데 뭐 좀 좋은 정보 같은 거 들은 거 있어?” 

“어, 좋은 정보를 알아왔어. 집에서 감자탕을 쉽게  끓이는 방법을 알아왔어. 그런 걸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데”

놀란 눈으로 나를 뒤돌아보는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함께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남편도 딸아이가 겨우 속성으로 자기 이름을 쓸 줄 알고 입학한 것이 걱정돼서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하는지 열혈 엄마들의 학습 정보를 내심 기대했었나 보다. 이렇게 시작한 초등학교 엄마 모임은 다른 엄마들의 얘기를 경청하며 궁금한 것을 중간중간 질문을 하며 거의 모든 이야기를 수렴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딸을 낳고 나서는 지금까지 나보다는 최소 여덟 살 이상 젊은 엄마들이랑
모임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내 동창들 모임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십 살이 넘은 우리 또래의 관심은 신체적 노화로 인한 갱년기 증상이나 아내와 엄마의 자리가 빈자리로 변하면서 찾아오는 빈집 증후군 또는 자녀들의 대학 진학에 관한 얘기들을 많이 한다. 나는 열 살 꼬맹이 쫓아다니느라 갱년기를 느낄 시간이 없고, 아직은 우리 집엔 늘 아이의 웃음소리가 있으니 빈집 증후군도 아니고 아이가 대학 가려면 아직 10년 이상의 시간이 있어야 하니 친구들이 정신적으로는 마치 인생의 선배나 되는 듯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     


반면 아이 학교 엄마들 모임에 가면 초등학생들의 다양한 학습방법과 학원 선택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남편과 시댁 이야기 등의 주제들로 채워진다. 여기에는 나의 현실적인 주제와 관심이 잘 들어맞는다. 누가 무슨 얘기를 해도 모두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여주고 맞장구를 쳐준다. 언제나 든든한 내 편처럼 무조건 편들어준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따져보고 양쪽의 의견을 서로 비교해보는 다양한 검증 방식이 아닌, 대놓고 편파적으로 편들어 주기랄까? 그런 건 어쨌든 모르겠고, 우리 편은 모두 착한 사람이라는 전제하에서 그리고 나도 살다 보면 다 겪는 일이라니 척 봐도 안다는 수준으로 편들고 위로하고 다독거리다 보면 어느새 서너 시간은 훌쩍 넘는 유쾌한 수다 베틀이 이어지게 된다.     


젊을 때는 친구와 선배들과 인생에 대해 침 튀기며 이야기하며 넌 틀렸고 내가 맞다는 식으로 열을 내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무조건 대놓고 내 편만 드는 아부형 인간 또는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의 회색 인간은 꺼지라고 내쳐 소리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그렇게 대놓고 핏대 높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해본 기억이 언제였던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이젠 철이 좀 들었다고 이제야 세상을 뭘 좀 안다는 식으로 칭찬 아닌 칭찬을 해주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나만의 욕 보따리를 쌓아 올리는 탑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그러한 나의 욕 보따리를 풀어서 억울한 나의 속내를 완전히 편협된 나만의 시각으로 시원하게 풀어내고 함께 욕을 해주는 완전한 내 편을 만나면 힐링도 그런 힐링이 없다.      


예전엔 카페에 무리 지어 앉은 엄마들이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 사회에서 엄마 그리고 아내라는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때때로
수다 베틀의 대놓고 무작정 편들어주는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런 위로는 남편이나 자식이나 시댁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형식의 위로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할 말도 없고 어색해서 구석에 그냥 앉아 듣기만 하던 나는 어느새 점차 수다 베틀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들이 하는 이야기에 동화되고 내 이야기도 마구마구 하게 되고 나는 모임 첫날 쭈뼛거리던 구석 자리 쭈구리 언니가 아닌 그저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이 시대 엄마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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