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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26. 2020

공동육아, 그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창대했다

어쩌다 만나는 동창들은 아이를 키운 지 오래돼서 나의 당면 과제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정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물어보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간 여러 법이 바꿔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라거나 아니면 "우리 아이 다닐 땐 이랬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라고 말끝을 흐리기 일쑤였다. 그래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만고강산의 진리이며 가장 최선의 답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곳을 다니지 않았다. 그때는 유치원 다니는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우선은 다섯 남매인 우리 집은 우리 아이들끼리만 어울려 놀아도 상호 사회화를 배우고 익히기에 충분했으며, 골목엔 언제나 아이들의 술래잡기 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아마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인 것 같다. 


지금은 막 걸음마를 뗀 아이부터 거의 모든 아이는 아침이면 노란색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골목엔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는 하루가 시작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이처럼 이상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한 후, 아이와 나는 햇빛 좋은 날 동네 공원 산책을 하고 놀이터에서 시소와 미끄럼틀도 타고 놀았지만, 아이가 조금 더 크고 나니 동네 놀이터에 함께 놀 친구가 없었다. 내가 그리 붙임성이 좋아서 어쩌다 마주치는 엄마들에게 말을 잘 붙이는 스타일도 아니었으니, 다들 어느 어린이집으로 가는지 어디가 좋은지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다 어린이집으로 가니까 우리도 어디를 가야 친구랑 놀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막연히 하루하루 딸이랑 집에서 놀고 있었다.


내가 공동육아를 선택한 아주 단순하고도 미미한 이유는..


몇몇 어린이집에 등원에 관한 문의를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인원이 다 차서 대기해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는 ‘아차, 늦었다’ 싶은 마음에 잔뜩 조바심이 난 나는 동생의 권유로 그 당시 바로 등원이 가능한 공동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공동육아를 택한 아주 단순하고도 미미한 이유이다. 이후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의 말씀처럼 말로는 이루 다 전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부모 협동 공동육아의 구성원으로 사는 삶이 펼쳐졌다.      


모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그러하듯이, 함께 아이를 잘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모인 스물 남짓의 가정이 함께 할 공간을 마련하고 우리와 뜻이 같은 선생님을 모시고 아이들은 하루 종일 신나게 뛰어논다. 한가로운 호수에 떠있는 백조들. 그 아래선 열심히 젓고 있는 발처럼 우리 부모들은 물심양면 밤낮으로 지원을 하는 곳이다. 이곳은 그런 엄청난 열정이 없으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여러 장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등원 초기에는 배경지식이 별로 없었으니, 나는 부푼 기대나 열정도 없이 그저 다들 보내는 어린이집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었다.      


내가 자랄 땐  자연스럽게 했던  일들을 지금은 굳이 비싼 돈을 써가며 해야 하는
현실에 아이러니한 생각마저 들었다 


나만 미미하게 시작하였을 뿐 다른 엄마들은 인터넷 검색 혹은 책에서 읽었다든지 또는 소개를 받고 멀리 서라도 찾아온 공동육아 방식의 육아법을 지지하는 부모들이었다. 요즘같이 영어 유치원과 조기교육의 중요성이 사회 전반에 공감대를 펼친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매일 아침 동네 나들이를 다니고 근처 숲길을 걷고 떠들고 웃고 터전 앞마당에서 흙 놀이를 손톱이 새까매지도록 하다가 저녁 먹을 때쯤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가는 시간에도 서로를 보고 더 놀게 해달라고 떼쓰고 누구네 집에 가서 같이 저녁 먹고 더 놀면 안 되냐며 성화를 부린다. 옛날 같았으면 자연스럽게 할 일들을 지금은 굳이 비싼 돈을 써가며 한다는 아이러니한 생각도 들었었다. 봄볕에 여름 태양광선에 가을볕에 겨울 햇살에 아이들 얼굴은 점점 새까맣게 물들어 간다. 졸업하고 나서 만나는 초등학생 언니나 오빠의 얼굴은 다시금 하얗게 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부색만으로도 저토록 얼굴이 귀티 나게 보일 수 있냐며 우리 어른들끼리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놀고먹는 호수에 떠 있는 우아한 백조 모습이라면,
우리 부모들은 물속에서 정신없이 구르고 젓는 발차기처럼
여러 가지 살림살이와 지원을 해야만 했었다.


 스물 남짓 가구의 부모들이 함께 모여 회의하고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어른이 된 부모들 모두에게도 쉽지 않은 배움의 시간이었다. 한 예로 미세먼지가 이슈화되던 초기, 터전에 새롭게 공기청정기를 다느냐 마느냐로 우리의 회의 시간은 열정적으로 타올랐다. 늘 창문을 열어놓고 환기를 시키고 마당놀이나 나들이를 하는 환경에서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튼다는 것은 처음엔 선뜻 받아들이기 쉬운 부분은 아니었으며 공기 청정기의 효능과 어린이집의 환경 그리고 생활방식을 함께 고려해서 결정하기엔 각자의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그냥 일반 어린이집 같으면 원장님이 구매 여부를 결정하면 끝이 날 것을, 우리는 까만 밤이 하얗게 타들어 가도록 각자의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느라 열띤 토론의 장을 열고 있었다. 처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땐,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지겹도록 계속 얘기하는 것이 무척이나 소모적으로 느껴지고 허리도 아프고 졸리기도 했었지만, 점차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 부모 협동 공동육아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한 의미를 헤아릴 수 있었다. 부모가 우리 아이의 보육 주체로 참여하여 모든 아이의 주변 환경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회의 자리에서는 모든 순간이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시간이었음을 지나고 나니 이해가 되었었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동육아 4년의 조합 생활은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민주적인 생활 방식을 습득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부모들부터 아이들까지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늘 첫머리에 나오는 소개 글 말고 누군가 나에게 공동육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이를 키우려 왔다가 엄마인 내가 더 많이 배우고 크고 졸업하는 곳 그리고 같은 지향점을 위해 모인 사람들인 줄 알고 왔다가도 싸우다 정든다는 말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소개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도 많은 어린이집 중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택하는 가족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데 그것을 지지해주는 부모는 시간적, 경제적, 육체적으로 할 일들이 많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했던 4년여의 세월은 우리 딸에게도 눈부신 시간이었겠지만 나와 남편도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은 틀림없었다. 부딪치는 인간관계 속에서 조율과 배려를 배우고 티 없이 맑고 맑은 아이 웃음소리에 진정한 즐거움을 알게 되고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린이집을 졸업하던 날,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아이들은 그저 웃고 까불고 난리인데 부모들은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들 모두 섭섭한 마음에 울고 미안한 마음에 울고 고마운 마음에 서로 손잡고 펑펑 울었다. 

함께 생활한 부모 중 물론 내가 최고령 조합원이었던 것은 새삼스럽지 않았으나
 지금도 그들은 내가 육아를 시작하며 사귄 내 생애 최고의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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