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시작하기 전, 마흔두 살이 꽤 괜찮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내 나이보다는 얼굴이 어려 보인다는 동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다. 아마 내 나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서 피부 노화의 진행속도가 못 따라가서 그런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나이에 이 정도 피부나 얼굴도 젊어 보인다고 하면 도대체 내 나이에 어울리는 얼굴은 얼마만큼 주름이 있어야 하는 거냐?’라며 거울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등산을 시작한 이후 나의 삶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꾸준한 등산 덕분에 근력과 폐활량이 놀랍도록 좋아졌으며 남편 권유로 시작한 클라이밍 덕분에 성인이 된 이후 꾸준하게 나를 따라다니던 아래 뱃살과 팔뚝 살 등 군살도 많이 빠지게 되었다.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고 살면서 구축한 나만의 정체성에는 ‘단순하게 살자’가 제1순위로 자리 잡고 있다. 가능하면 모든 사물과 인간관계에 관하여 단순하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반응하며 살고 싶었다. 괜스레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애써 굴려 가며 내 앞에 앉은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려고 애쓰지 말고 상대방이 말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나도 있는 그대로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부풀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내 생각에는 나의 첫 미국 생활에서 얻은 나만의 경험도 한몫했다. 어차피 영어를 잘하거나 준비를 오래 해서 떠난 게 아니었기에 내가 쓸 수 있는 어휘는 극히 한정적이었다. 초등생 수준의 단어를 조합해서 어른들의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뜻이 분명하지 않고 상황에 맞지도 않는 말들을 남발했었다.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나의 단순한 대화가 상대방의 의도나 뜻을 명확하게 해 주고 나아가 나의 의견도 분명하게 군더더기 없이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저급 영어를 구사하는 폐단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는 하다.
태어나면서 눈치라는 것이 좀 서툰 사람이었지만 살면서 애써 이 분야를 발전시키려고 애쓰지 않고 살고 있다. 내가 먼저 무언가를 어떻게 하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대신 상대방이 무언가를 원한다고 말을 하면 그건 그때 닥쳐서 생각해보고 나서 대처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듣는 자의 태도로 언제나 귀를 먼저 열고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간혹 상황이 긴박하거나 눈치코치가 필요한 때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아쉬움과 질타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뭐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그것도 감내할 수밖에.
중년의 여인에게서 기대되는 진중 하거나 배려 깊은 말보다는 초등생에게서나 볼 수 있는 솔직한 단답형의 대화를 구사하며 산이나 들로 쏘다니는 딸을 볼 때마다 우리 엄마는 ‘그 많은 나이는 다 어디로 갔냐? 나이를 헛먹었다.’라며 탄식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도 정말 내가 나이를 헛먹고 세월을 비껴가는 내내 청춘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나는 결코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니었다
오래도록 꿈꿔왔고 내내 기다리던 아기를 권투 선수 록키의 얼굴을 하고 품에 안았다. 아기가 꼬물거리고 눈을 뜨고 나를 봤다가 다시 감고 젖을 물고 잠이 든다. 이 간단한 동작을 하는 동안 나의 어깨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병원에 입원한 동안, 잠시 수유를 위해 5분에서 10분 정도 안았을 뿐인데 어깨와 손목이 왜 이러냐?
집으로 돌아온 우리 딸, 남편은 절대 안지 말라는 나와 많은 지인의 지시를 어기고 휴일 내내 안고 있으며 아이의 등에 센서를 부착시키고 다음 날 출근했다. 딸은 그날 이후 절대로 바닥에서 자지 않았다. 바운서 같은 온갖 수면을 위한 육아용품에서도 자지 않았다. 딱 품 안에서만 잠을 자는 고귀한 성품으로 바뀌어 버렸다. 거기다 밤낮이 바뀌어 버린 딸은 나를 딱 3일 만에 기진맥진하게 했었다.
이제껏 비축해온 나의 체력과 동안 매력 그리고 세월을 비껴갔다고 느꼈었던 그 모든 것들은 딱 3일 만에 모두 남김없이 소진, 매진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난 결코 나이를 헛먹지 않았구나,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는 세월의 한 중심에 서서 세월을 온몸으로 다 맞고 있었구나!’라며 한편으로는 제대로 나잇값을 하는 자신을 스스로 대견하다고 치켜세워줬다.
나에게는 세월에 제대로 늙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칭찬 스티커를 남발하는 무척이나 관대한 나이지만, 남편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애초에 등 센서를 장착한 사람이 책임을 지도록 했다. 남편은 밤새도록 아기를 안고 비몽사몽 출근을 해서 어디 구석에 숨어 졸 수도 있고 일에 구멍이 생기더라도 상사에게 욕을 들어도 그건 나중에 얼마든지 복구시키거나 극복할 수 있지만, 아이와 단둘이 낮 시간을 보내는 나는 아이 모르게 잘 수도 없고 졸아도 안 되며 지금 이 시기에 육아에 구멍이 생긴다는 것은 아이 생명과도 연계가 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남편이 밤새 아기를 보고 회사에 가서 조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아이가 크고 나서 엄마들 모임에 가보면 젊은 엄마들일수록 그리고 배려심이 많은 엄마일수록 밤과 낮 24시간 내내 풀타임으로 육아를 감당했었다는 무용담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물론 이와 더불어 남편에 대한 험담으로 그때의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하면서 그땐 뭘 몰랐었다고 뒤늦은 아쉬움을 남기도 한다. 하지만 나 같은 늦은 엄마는 섣불리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거나 주변의 호의에 대하여 ‘전 괜찮아요.’라는 사양은 하지 않는다.
이미 괜찮지 않게 시작을 하였고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라는 현실 앞에서 주변의 작은 도움이라도 서슴지 않고 보태야 한다며 주변을 독려했다.
베이비 시터나 엄마 찬스를 쓰지 않고 혼자 아이를 키워야 했기에 가족이나 친구들의 방문 때에는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와 잠시 앉았다 가는 것보다는 시간차를 두어 아이를 보러 와달라고 방문 전에 미리 전화 예약을 하는 시스템을 혼자 구축했다. 아무리 철없는 이모라도 혹은 무뚝뚝하고 연로하신 아버님도 되도록 혼자 방문하셔서 나 대신 잠시라도 아이를 안고 있거나 바라만 보고 있는 그 작은 짬에도 나는 작은방에 들어가 잠시 뻑뻑한 어깨와 아픈 허리를 스트레칭할 수 도 있고 또 싱크대에 쌓인 분유통을 세척할 수 도 있고 잠시 창문을 열고 신선한 바깥공기를 맡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철없이 살아온 것 같고 그렇다고 뚜렷하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지만, 앞으로 펼쳐질 부모로서의 인생 2막과 이제 막 시작하는 우리 딸의 인생 1막이 함께 잘 어우러질 찬란하고 멋진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이제껏 나름대로 주어진 시간에 열심히 때로는 묵묵히 참아내며 그 시간을 버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때론 충분히 박수받을 일이라고 이다음에 우리 딸이 크면 얘기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