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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26. 2020

먼저 잠든다고 덜 사랑하는 건 아니야.

내 신경은 온통 너였어..


그때, 아기가 돌이 되기 전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이 육아를 시작하면서 아기를 안고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하다 보니 온종일 집안에만 있었는데도 마치 지리산 종주라도 다녀온 것처럼 다리며 어깨며 온몸의 근육들이 뭉치고 아팠다.      

아기에 대해 잘 모르니까 표정만 봐도 딱~하고 알 수가 없으니까, 왜 우는지 어디가 불편한지를 찾느라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하루 24시간 내내 “내 신경은 온통 너. 였. 어”였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땐 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관심조차 주지 않아 밥은 먹었는지, 세수는 했었는지, 먹고 싶은 건 없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날들도 많았다. 그때도 그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벅찰 정도로 아이가 좋고 이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남편보고 빨리 들어오라고 독촉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행동을 야무지고 신속하게 능률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똑같은 걸음을 몇 번씩 하더라도 손 앞에 있는 것들만 대충 잡아 움직이며 ‘나머지 것들은 또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해서 가장 능률적으로 한꺼번에 샤샤 삭~ 해치워버리는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 한적도 많았었다. 나의 이러한 성향은 육아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는 속도와 능률, 센스 같은 덕목들 특히나 나에게 덜 발전된 것들을 많이 갈망했었다. 그런데 한 십 년 하다 보니, 이 구역에서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정리하거나 일을 진행하는데 속도도 빨라지고 능률도 조금 오르는 것 같다. 같이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 남편을 보면, 이제는 내가 남편보다는 더 낫다는 자신감이 들고 어떤 분야든지 한 분야를 꾸준하게 십 년 이상 하다 보면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신혼 초, 남편이 집안일을 하면서 빨래는 정말 못 개 갰다며 나보고 이것만 도와달라고 했다. 

“나도 당신처럼 빨래 개는 게 지겹고 답답하고 어려워. 내가 결혼 전 빨래 개는 학원에 다닌 것도 아닌데 당신보다 잘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해. 나도 싫은데 억지로 참고하는 거야, 그러니 당신도 참고 조금 더 노력해봐”

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 부부는 모두 각자 노력한 덕분에 빨래는 정말 빠르고 신속하게 잘 갠다.      


남편이 퇴근하고 우리 집 육아와 가사의 세계로 출근하면 나는 퇴근 준비를 한다.



샤워하고 늘어지고 분유 얼룩이 진 옷을 갈아입고 한결 말끔해진 기분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남편 옆에서 아이를 바라본다. 내 품에 안긴 아기도 더없이 사랑스럽지만, 남편에게 안긴 아기를 옆에서 바라보는 내 마음은 샤워의 개운함과 약간의 홀가분함이 더해져 바라보는 대상을 더욱더 사랑스럽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밤 9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잠이 쏟아졌다. 우리 딸의 눈은 아직도 초롱초롱하고 낮에 잘 보이지 않던 아빠가 보이니 새로운 놀이의 장이 열릴 것을 기대하고 한껏 들뜬 표정이다. 낮에 새로 선보인 개인기를 남편에게 소개해주면서 나는 슬금슬금 누울 자리를 정리한다. 나도 함께 부녀의 놀이마당에 합류하고 싶지만, 이미 나의 오늘 사용할 에너지는 소진되어 나는 이제 충전 모드로 전환을 해야 또다시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 명. 감.으로 잠이 든다.      


아이도 이때는 무조건 잘 먹고 잘 자는 게 삶의 목표이겠지만 늦은 엄마는 더욱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튼튼한 엄마가 되어 더욱 튼튼한 울타리를 제공해주는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육아라고 여겼다. 나의 이기심이 아니라 이제 막 부모가 된 우리의 가장 효율적인 가족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방법이라고 남편을 다독였다.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는 기초적인 명제 앞에 나는 최선을 다해 행복하고 건강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아기보다 먼저 잠이 드는 무심하고 매정한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는 내일 아침에도 너를 환한 얼굴로 다시 안아주기 위해 엄마의 다 닳은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중이라고 먼저 깊은 잠으로 빠져들면서 열심히 놀고 있는 남편과 딸에게 고마웠다.      


어쩌다 아이가 열이 나는 밤이면, 초보 부모는 긴장된 마음으로 한껏 예민해져 아이 곁을 지키고 있다가도 자는 시간이 오면 으레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그런 날일수록 정신적으로 더욱 예민해지고 긴장하니 솔직히 잠은 더 쏟아졌다.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걱정이 너무 돼서 눈물도 나올 것 같은데도 머리는 자꾸 침대 바닥에 닿는다. 보다 못한 남편이 눈 좀 붙이라고 나중에 무슨 일이 있으면 깨워주겠다고 한다. 나는 남편의 그 한마디가 세상에서 제일 고맙고 든든했었다. 그러면 바로 아기 옆에 새우잠이라도 든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과도했던 나의 걱정과 예민함도 평정심을 찾아 쌔근쌔근 잠이 든 아기를 찬찬히 보살펴 간호할 수 있고, 나 대신 새벽을 밝혀준 남편에게도 밝은 얼굴로 고마운 인사를 전할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이야 새벽에 잠이 깨서 서너 시간 서성일 수도 있고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하면서 몇 시간을 통째로 날려 보낼 수도 있지만, 10년 전 그때는 새벽의 서너 시간의 단잠은 나에겐 세상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으며 그 시간을 배려해준 사람을 평생 은인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 그 시간을 배려해주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평생 원수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니, 나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는다. 나의 한계, 즉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사는 동안 수많은 도전에 내몰리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 그리고 죽도록 노력하면 비로소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마음이 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마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에 대한 사전인지 조사가 끝난 덕분인지, 나는 전담 육아, 독박 육아라는 말만 들어도 자동으로 꼬리를 내린다. 매일매일 소진되는 나의 체력과 매일 새로운 문제에 부딪혀야 하는 정서적 긴장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매일 밤 9시면 잠이 드는 것으로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매일매일 눈부신 하루를 만들어 냈다고 기억한다.     


그때부터 훈련된 나의 순간 기절 수면법은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가끔 침대에 누워 딸이랑 남편이 얘기한다. “아빠, 엄마 벌써 잠들었어? 어쩌면 이렇게 빨리 잠들 수가 있지? 신기해”      


딸아, 너도 알고 있지? 너보다 먼저 잠이 든다고 너를 덜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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